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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1)

당시삼백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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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從軍行〉
〈옛 출정의 노래〉
李頎
이기
白日登山望烽火
한낮에 산에 올라 봉화를 보았는데
黃昏飮馬傍
황혼 무렵엔 交河城 옆에서 말에게 물을 먹인다
風沙暗
어두운 모래바람 병사들의 조두소리
공주를 위해 타던 비파처럼 몹시도 서글퍼라
野雲萬里無城郭
들녘 구름 만 리에 성곽은 없고
雨雪紛紛連大漠
눈은 어지러이 내려 사막으로 이어진다
胡雁哀鳴夜夜飛
오랑캐 땅 기러기 슬피 울며 밤마다 날아가니
胡兒眼淚雙雙落
오랑캐 아이 눈에 맺힌 눈물은 두 줄기로 흐른다
듣건대 옥문관이 막혀있다 하니
應將性命逐
응당 목숨 걸고 경거장군을 따를 수밖에
年年戰骨埋荒外
해마다 戰士의 뼈는 변방의 황야에 묻히는데
空見入漢家
다만 한나라 황실로 들어오는 포도를 보았을 뿐이라네
[通釋] 한낮에 산에 올라 저 멀리 봉화를 보았는데, 황혼이 질 무렵 이미 교하성 근처에 도달하여 말에게 물을 먹인다. 밤이 되자 어두운 모래바람 속에서 출정한 병사들은 오직 순라를 돌며 치는 刁斗 소리만을 듣는데, 그 소리는 마치 한나라 때 오손국으로 시집가는 공주을 위해 타던 비파소리처럼 몹시 서글프다.
들녘의 구름은 만 리까지 뻗어있고 성곽도 없는데, 눈은 어지러이 휘날려 사막까지 이어진다. 기러기조차 잠 못들어 밤마다 슬피 울면서 날고, 그곳에 사는 오랑캐들은 두 줄기 눈물을 흘린다. 그러니 만리타향 떠나온 한나라 병사들의 심정이야 오죽하랴.
듣건대 옥문관을 막고서 퇴각하는 군사는 목을 치겠다고 하였다 하니, 어쩔 수 없이 목숨 걸고 경거장군을 따라 싸우다 죽을 수밖에 없지 않는가. 해마다 전사들의 뼈는 서역 변방의 황야에 묻히는데 다만 황실로 들어가는 포도만을 볼 뿐이라네.
[解題] 이 시는 기존의 악부시 〈從軍行〉의 제목을 차용하여 지었기 때문에 〈古從軍行〉이라고 한 것이다. 〈從軍行〉은 군역이나 출정을 다룬 詩歌로서 晉나라 左延年이 지은 歌辭가 있다. 이 작품은 漢나라 武帝 때 서역 정벌에 나선 병사들의 고난을 묘사하고 있는데, 전쟁으로 인한 암울한 분위기가 변경의 황량한 풍경을 통하여 표현되어 있다.
‘해마다 전사의 뼈는 변방의 황야에 묻히는데, 다만 황실로 들어가는 포도를 보았을 뿐이라네.’라는 마지막 구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사실을 끌어와 수많은 병사들을 희생시키는 정벌 전쟁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다.
[集評] ○ 以人命換塞外之物 失策甚矣 爲開邊者垂戒 故作此詩 - 淸 沈德潛, 《唐詩別裁集》 卷5
[集評] 사람의 생명을 변경 밖의 물품과 바꾼 것은 실책이 심하다. 변경을 개척하려던 자들에게 경계가 될 것이므로 이 시를 지었다.
○ 後二語可諷 - 明 陸時雍, 《唐詩鏡》 卷16
끝의 두 구절의 말은 풍자가 될 만하다.
역주
역주1 交河 : 중국 서역의 옛 지명으로, 지금의 新疆省 吐魯蕃縣 서쪽 지역이다. 《漢書》 〈西域傳〉에, “車師前國은 왕이 交河城을 다스렸는데, 河水가 나뉘어 흘러서 성 아래를 돌아가므로 ‘교하’라고 칭한 것이다.[車師前國 王治交河城 河水分流繞城下 故號交河]”라고 하였다.
역주2 行人 : 일반적으로 길을 가는 사람을 뜻하나, 여기서는 출정을 떠난 병사를 지칭한다.
역주3 刁斗 : 옛날 군대에서 쓰는 취사도구인데, 밤에는 진중에 순라를 돌며 두들겨 시간을 알렸다고 한다.
역주4 公主琵琶幽怨多 : 漢나라 武帝 때 烏孫國과 和親을 도모하기 위하여 江都王 劉建의 딸 細君을 烏孫國王에게 시집보냈는데, 이때 비파를 연주하여 세군을 위로하였다고 한다. 石崇의 〈王昭君辭序〉에, “옛날 공주가 烏孫으로 시집갔는데, 말 위에서 비파로 음악을 연주하도록 하여 그녀가 가는 길에 고향 생각을 위로하도록 하였다.[昔公主嫁烏孫 令琵琶馬上作樂 以慰其道路之思]”라고 하였다.
역주5 聞道玉門猶被遮 : ‘玉門’은 玉門關으로 오늘날 甘肅省 敦煌縣 서쪽에 위치한, 서역으로 통하는 관문이다. ‘被遮’는 길이 막혔다는 뜻이다. 《漢書》 〈大宛傳〉에 漢武帝 元年에, “李廣利에게 명하여 大宛國을 공격하게 하였다. …… 사병들이 굶주려 전세가 불리하게 되자 이광리가 글을 올려 전쟁을 끝낼 것을 요청하니, 武帝가 크게 노하여 군사를 보내 옥문관을 막고 퇴각하는 군사는 바로 목을 베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역주6 輕車 : 군 지휘관의 명칭으로 漢代에 輕車將軍, 輕車都尉 등이 있었다.
역주7 葡萄 : 漢 武帝 때 서역 나라에서 유입된 과일이다. 葡桃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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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75 고종군행 308

당시삼백수(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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