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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1)

당시삼백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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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蜀道難〉
〈촉도의 험난함〉
李白
이백
危乎高哉
와아! 높고도 높구나
蜀道之難難於上靑天
蜀道의 험난함이 푸른 하늘 오르기보다 더 어렵구나
蠶叢과 魚鳧가
開國何茫然
開國한지 얼마나 아득한가
그 이래 사만 팔천년
진나라 변방과도 사람 왕래 없었네
서쪽 태백산으로 鳥道가 있어
可以橫絶
아미산 봉우리를 가로질러 건널 수 있었네
땅이 무너지고 산이 꺾이고 장사가 죽자
然後天梯
그 후 하늘사다리며 잔도가 고리처럼 이어졌네
위로는 여섯 용이 해를 끌고 되돌아가는 높은 봉우리
下有衝波逆折之回川
아래로는 부딪치는 물결 거꾸로 꺾여 소용돌이 치는 강
黃鶴之飛尙不得過
黃鶴이 날아서도 넘어가지 못하고
猿猱欲度愁攀緣
원숭이 건너려 해도 기어올라 매달릴 것 걱정하네
靑泥고개는 얼마나 꼬불꼬불한지
百步九折縈巖巒
백 걸음에 아홉 번 꺾여 바위 봉우리를 휘감았구나
參星을 어루만지고 井星을 지나 우러러 숨죽이고
坐長歎
손으로 가슴 쓸며 앉아 길게 탄식한다
西遊何時還
그대에게 묻노니 서쪽에서 노닐다가 어느 때에 돌아오려나
畏途巉巖不可攀
두려운 길 우뚝 솟은 바위 부여잡을 수도 없는 걸
但見悲鳥號古木
다만 보이는 것이라곤 슬픈 새 고목에서 울부짖으며
雄飛繞林間
수컷은 날고 암컷은 따르며 숲 사이를 도는 모습
또 달밤에 두견새 울어
愁空山
빈산에 시름만 가득하네
蜀道之難難於上靑天
蜀道의 험난함이 푸른 하늘 오르기보다 더 어려우니
使人聽此凋朱顔
사람이 이 말 들으면 붉은 얼굴 시들리라
連峰去天不盈尺
이어진 봉우리 하늘과 거리가 한 자도 못되고
枯松倒倚絶壁
마른 소나무 거꾸로 매달려 절벽에 기대 있구나
飛湍瀑流爭
날듯 흐르는 여울 쏟아지는 물줄기 시끄러운 소리 다투고
轉石萬壑雷
벼랑에 부딪치는 물소리 구르는 바위, 온 계곡에 우레소리
其險也如此
그 험하기가 이 같으니
嗟爾遠道之人胡爲乎來哉
아아 먼 길 나선 그대, 어이해 왔단 말인가
崢嶸而崔嵬
검각산 우뚝 높이 솟아 있어
一夫當關萬夫莫開
한 사람이 관문 막으면 만 사람도 열 수 없다네
所守或匪親
지키는 사람 혹 친한 이 아니라면
化爲
변해 이리와 승냥이가 되리라
朝避猛虎
아침에는 사나운 호랑이 피하고
夕避長蛇
저녁엔 긴 뱀 피해도
磨牙吮血
이빨 갈고 피 빨아
殺人如麻
삼처럼 사람 죽이니
雖云樂
錦城이 즐거운 곳이라고는 하나
不如早還家
일찍 집에 돌아가느니만 못하리
蜀道之難難於上靑天
蜀道의 험난함 푸른 하늘 오르기보다 더 어려워
側身西望長咨嗟
몸 기울여 서쪽 바라보며 길게 탄식하누나
[通釋] 와아! 높고 높게 솟아있어 蜀道의 어려움이 푸른 하늘 오르기보다 더 어렵구나. 전설의 고대 왕 蠶叢과 魚鳧가 開國한지 얼마나 오래되었는가. 개국한 이래 5만여 세월 동안 진나라 사람과도 서로 교통이 없을 정도였다. 서쪽으로는 태백산에 새들만 날아다닐 수 있는 길이 간신히 나 있어 아미산 봉우리를 가로질러 건널 수 있을 뿐이다.
전설에 따르면 땅이 무너지고 산이 꺾이고 장사가 죽으면서 그 후 하늘사다리며 잔도가 고리처럼 이어져 촉 지역과 딴 지방이 연결되었다. 그제야 蜀道의 험한 모습을 알게 되었는데 위로는 여섯 마리 용이 해를 끌고 가다가 되돌아서는 높은 봉우리가 있고, 아래로는 부딪치는 파도가 휘돌며 거꾸로 꺾여 소용돌이치는 강이 있다. 이곳은 黃鶴도 날아서 지나가지 못하고 원숭이조차 건너고 싶으나 붙잡고 매달릴 수 있는 것이 없어 근심할 지경이다. 靑泥고개는 또 얼마나 꼬불꼬불한지 백 걸음 걸어가노라면 아홉 번은 꺾인 길이 바위와 봉우리를 휘감고 있다. 이 고개를 지나야 蜀으로 가는데 촉 지방에 있는 參星을 어루만지며 秦지역에 있는 井星을 스쳐 지나며 하늘을 우러러 숨을 죽이고 손으로 가슴을 쓸어 어루만지며 앉아 길게 탄식한다.
길 떠난 그대에게 묻노니 서쪽에서 노닐다가 어느 때에 돌아오려나. 가기가 두려운 길인데다 우뚝 솟은 바위는 부여잡을 수도 없으니 말일세. 다만 슬픈 새가 고목에서 울부짖으며 수컷은 날고 암컷은 따르며 숲 사이를 도는 모습만 보일 뿐이고, 또 달밤에는 자규새가 울어 빈산 더욱 시름겹게 하는 소리만 들려 올 뿐. 蜀道의 어려움이 푸른 하늘 오르기보다 더 어려우니 사람들이 이 말 들으면 젊어 붉은 얼굴조차 창백해지고 시들어지겠지.
이어진 산봉우리는 하늘과 거리가 한 자도 못되게 가깝고 마른 소나무는 거꾸로 매달려 절벽에 기대어 있다. 나는 듯이 흐르는 여울과 쏟아지는 물줄기는 다투어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벼랑에 부딪치는 물소리며 구르는 바위 소리가 온 계곡에 우레처럼 울린다.
이렇게 험한데 아아! 먼 길 나선 그대, 왜 이곳에 왔는가. 검각산이 우뚝 높이 솟아 있어 한 사람이 관문 막으면 만 사람도 열 수 없다. 지키는 사람이 혹 친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리와 승냥이로 변해 사람들을 해치리라. 아침에는 그 곳에 사는 사나운 호랑이를 피하고 저녁에는 긴 뱀 피하더라도 이빨을 갈고 피 빨아 삼처럼 수많은 사람을 죽여버릴 만큼 험한 땅. 錦城이 즐거운 곳이라고 말하지만 차라리 일찍 자기 집에 돌아가느니만 못하지. 蜀道의 어려움이 푸른 하늘 오르기보다 더 어려운지라 몸 기울여 서쪽 바라보면서 길게 탄식만 하누나.
[解題] 〈蜀道難〉은 古樂府의 題目을 따온 것으로 이백의 나이 31세, 開元 19년(731) 長安에 오기 전에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에는 賀知章과 관련된 유명한 이야기가 전한다. 이백이 蜀을 떠나 장안으로 가면서 객사에 묵었는데 하지장이 그의 이름을 듣고 먼저 방문해서는 글을 지어 달라 청하였다. 〈蜀道難〉을 꺼내 보여주자 채 읽기를 마치기도 전에 수 없이 칭찬을 하며 이백을 ‘유배 온 신선’[謫仙]이라 부르고 허리에 차고 있던 金龜를 술과 바꾸어 취하도록 마셨다고 한다.(孟棨, 《本事詩》 〈高逸第三〉)
이백의 名篇으로 꼽히지만 수많은 評者들에 의해 해석이 분분한 시이기도 하다. 예컨대 ‘所守或匪親 化爲狼與豺’라는 구절을 두고 당 현종이 안녹산의 난을 피해 蜀으로 가려할 때 가서는 안 된다고 諫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하고, ‘問君西游何時還’이란 구절에 근거해서 蜀으로 가는 벗을 보내며 쓴 시로 보기도 하며, 세상살이의 험난함, 혹은 벼슬살이의 어려움을 비유하는 시로 보기도 하고, 험한 길 떠나는 사람의 愁心을 빌어 憤世의 情이 있다고 읽기도 한다.
하지만 가파른 劍閣과 蜀의 험한 지형을 묘사하면서 그의 분방한 상상력을 한껏 발휘한 작품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集評] ○ 延祐丙辰 予奉使祀峨眉山 道趙魏周秦之地 抵岐山之南 踰大散關 過褒城驛 登棧道 入劍門以至成都
[集評] 延祐 (元 仁宗의 연호) 병진년(충숙왕 3년, 1316)에 내가 命을 받들어 使臣이 되어 峨眉山으로 제사지내러 갔었는데, 趙‧魏‧周‧秦의 옛 지역을 거처 岐山 남쪽에 이르렀으며 다시 大散關을 넘고 褒城驛을 지나서 棧道를 건너 劍門으로 들어가 成都에 이르렀다.
又舟行七日 方到所謂峨眉山者
여기서 또 뱃길로 7일을 가서야 비로소 이른바 아미산에 도착하였다.
因記李謫仙蜀道難 西當太白有鳥道 可以橫絶峨眉巓之句
이 일로 인해 李謫仙(李太白)의 〈蜀道難〉에, “서쪽으로는 태백산에 鳥道만 있어, 아미산 봉우리를 가로질러 건널 수 있네.”라는 詩句가 기억났다.
太白在咸陽西南 峨眉則在成都東北 可謂懸隔
태백산은 咸陽 서남쪽에 있고 아미산은 成都 동북쪽에 있으니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할 만하다.
然而自咸陽數千里至成都 或東或西 不一其行 又自成都東行北轉六百餘里 然後至峨眉
왜냐하면 함양으로부터 수천 리를 가야 성도에 이르는데 동쪽으로도 가고 서쪽으로도 가므로 그 길이 한결같지 않으며, 또 성도에서 동쪽으로 가다가 다시 북쪽으로 돌아 6백 여 리를 간 뒤에야 아미산에 이르기 때문이다.
雖山川道路之迂 度其勢 二山不甚相遠 人跡固不相及 鳥道則可以橫絶云耳 - 高麗 李齊賢, 《櫟翁稗說》
비록 山川을 따라 도로가 우회하고 있으나 그 地勢를 헤아려보면 두 산 사이가 그리 멀지 않으므로 참으로 사람은 왕래할 수 없지만 鳥道라면 횡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 妙在起伏 其才思放肆 語次崛奇 自不待言 - 宋 劉辰翁, 《唐詩品匯》
(시의) 오묘함은 기복에 있으니, 그 재주와 생각은 분방하게 뻗어나가고 언어는 차츰 우뚝 솟아 기이해져 저절로 말이 필요치 않다.
○ 首二句以嘆辭而發其端 末二句以嘆辭而結其意
첫 두 구절은 감탄하는 말로 그 실마리를 드러내었고 마지막 두 구절도 감탄하는 말로 그 뜻을 맺었다.
首尾相應 而關健之密也
首尾가 서로 照應하고 시의 짜임새가 치밀하다.
白此詩極其雄壯 而鋪敍有條 起止有法 唐詩之絶唱者
이백의 이 시는 그 웅장함을 다 했으면서도 시의 배치와 서술에 조리가 있고, 일어서고 멈추는데 법도가 있으니 唐詩의 絶唱이다.
杜子謂其長句之好 蓋亦意醉而心服之者歟 - 明 朱諫, 《李詩選注》
두보는 그 長句가 좋다고 했는데 아마 또한 뜻에 醉해 心服한 것일 게다!
역주
역주1 噫吁戲 : 경탄하는 소리이다. 景文公 宋庠의 《筆記》에, “蜀사람들은 사물이 경이로운 것을 보면 그때마다 와아하고 말했다. 이백이 〈蜀道難〉을 지으면서 따라 썼다.[蜀人見物驚異 輒曰噫嘻嚱 李白作蜀道難 因用之]”라고 하였다.
역주2 蠶叢及魚鳧 : ‘蠶叢’과 ‘魚鳧’는 모두 전설에 나오는 고대 蜀國의 국왕이다.
역주3 四萬八千歲 : 4만 8천년은 정확한 기간을 말하는 게 아니라 세월이 유구함을 과장해서 표현한 말이다.
역주4 不與秦塞通人煙 : 秦나라 즉 지금의 陝西省 中部 지방과도 사람 왕래가 없었다. 秦 惠王이 蜀을 멸한 후에야 中原과 왕래했다. ‘不’은 ‘乃’나 ‘始’로 되어 있는 本도 있다.
역주5 西當太白有鳥道 : ‘太白’은 終南山의 主峰 太白山을 가리킨다. ‘鳥道’는 새들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길로 험준함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역주6 峨眉巓 : ‘峨眉’는 四川省 峨眉縣에 있는 高山이다. ‘巓’은 頂上을 말한다.
역주7 地崩山摧壯士死 : 이 구절은 蜀지역에 길이 뚫린 내력을 전설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秦 惠王이 蜀을 치려할 적에 蜀王이 好色함을 알고 다섯 미녀를 보냈다. 촉왕이 이를 좋아해 장사 다섯 명을 보내 맞이하게 하였다. 장사들은 여자들을 맞이해 돌아오는 도중에 큰 뱀 한 마리가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걸 보았다. 장사 한 사람이 뱀 꼬리를 잡고 당겼으나 끌어낼 수 없자 다섯 장사가 함께 뱀을 끌어 당겼는데 산이 무너져 내려 다섯 壯丁을 모두 壓死시켰다고 한다.
역주8 石棧方鉤連 : ‘石棧’은 棧道와 같은 말이다. ‘方’은 相으로 되어 있고, ‘鉤’는 勾로 되어 있는 本도 있다.
역주9 六龍回日之高標 : 전설에 따르면 羲和는 여섯 마리 용이 끄는 해를 실은 수레를 몰아 하늘을 巡行하는데, 산이 너무 높아 여섯 마리 용은 이 곳에서 돌아간다고 한다. ‘高標’는 蜀山이 아주 높아 羲和가 해를 돌리는 標識가 된다는 의미에서 쓴 말이다.
역주10 靑泥何盤盤 : ‘靑泥’는 고개이름이다. 깎아지른 높은 절벽의 頂上에는 대부분 비가 내리고 구름이 끼어 다니는 사람들이 자주 진흙길을 다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지금의 陝西省 略陽 북쪽에 있는데 蜀으로 가는 요로이다. ‘盤盤’은 길이 구불구불 돌아간 모양을 말한다.
역주11 捫參歷井仰脅息 : ‘參’과 ‘井’은 모두 별자리 이름으로 參은 蜀지역을, 井은 秦지역을 관장한다. 靑泥嶺은 秦에서 蜀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므로 두 지역의 별자리를 가져와 말하면서 고개가 높고 험함을 표현한 것이다. ‘脅息’은 두려워 숨을 죽이는 것이다.
역주12 以手撫膺 : ‘膺’은 가슴[胸]을 말한다.
역주13 : 일반적으로 蜀에 들어가는 벗으로 보고 있다. 혹은 이 문답하는 구절을 나그네가 가슴을 치며 自問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때는 君이 자신을 가리킨다.
역주14 雌從 : ‘從雌’로 되어 있는 본도 있으며 ‘呼雌’로 되어 있는 本도 있다.
역주15 又聞子規啼夜月 愁空山 : 이 문장은 ‘又聞子規啼 夜月愁空山’으로 끊어 읽기도 하나 앞으로 붙이는 것이 좀 더 자연스러워 그에 따랐다. ‘子規’는 一名 不如歸로, 돌아가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니, 험한 蜀 땅으로 가지 말고 되돌아가라는 소리와 같아 수심에 잠긴다는 것이다.
역주16 : ‘挂’라고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17 喧豗 : 시끄러운 소리를 말한다. ‘훤회’로 읽는다.
역주18 砯崖 : ‘砯’은 물이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를 말한다. ‘빙’으로 읽는다.
역주19 劍閣 : 地名으로, 지금의 四川省 劍閣縣 북쪽을 말한다. 大劍山과 小劍山을 이어주는 棧道로 劍閣棧道라고도 한다.
역주20 狼與豺 : 이리와 승냥이로, 사람을 해치는 叛亂者를 비유한 것이다.
역주21 錦城 : 錦官城으로 成都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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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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