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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3)

당시삼백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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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揚州의 韓綽 判官에게 부치다〉
杜牧
두목
靑山
청산은 흐릿하고 물은 멀리 흘러가는데
秋盡江南
가을이 다 가도 강남의 풀은 마르지 않는다
明月夜
이십사교 달 밝은 밤
어디서 옥인에게 퉁소를 불게 하고 있을까
[通釋] 청산은 흐릿하게 보이고, 물은 아득히 멀리 흘러가는 양주 땅에 가을이 다 가도, 풀은 시들지 않고 푸르게 빛나고 있으리라. 그 옛날 풍류가 넘치던 아름다운 이십사교에 밝은 달이 뜬 밤이면 그대는 어디에선가 양주의 미녀가 부는 퉁소소리를 감상하고 있겠지.
[解題] 이 작품은 寄贈詩로 두목이 監察御使에 제수되어 양주의 淮南節度使 막부에서 장안으로 돌아온 뒤에 동료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韓綽이란 인물에게 보낸 시이다. 唐代의 양주는 양자강 하류에서 가장 번성한 도회지였고, 소탈하고 분방한 두목은 이곳에서 풍류를 즐겼다.
제1‧2구에서는 강남 경물과 풍토의 특색을 몽롱하면서도 매우 특징적으로 형상화하였고, 3‧4구에서는 양주의 풍류와 환락을 상상하도록 하여 깊은 정취를 느끼게 한다.
[集評] 牧之于揚州綣戀久矣 二十四橋二句 有神往之致 借韓以發之 - 淸 黃叔灿, 《唐詩箋注》
[集評]○ “십 년 만에 양주의 꿈에서 깨어났다.”고 하였으니 양주에 대한 두목의 그리움이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二十四橋明月夜 玉人何處敎吹簫’ 두 구는 신명이 가는 흥취가 있는데 한작을 빌려 시로 지은 것이다.
○ 深情高調 晩唐中節作 可以媲美盛唐名家 - 淸 宋願樂, 《唐人萬首絶句選》
○ 깊은 정과 고아한 음조가 만당시 중의 절창이니, 盛唐의 名家들과 짝할 만하다.
역주
역주1 寄揚州韓綽判官 : 揚州는 현재의 江蘇省 揚州市로서 唐代에는 淮南節度使의 소재지였다. 역대 중국 도회지 중 가장 아름답고 번성하여 풍류가 화려했던 곳이다. 두목은 大和 7년(833)에 淮南節度使 牛僧孺의 막료로 掌書記에 임명되어 대화 9년(835) 監察御使에 제수되기까지 2년간 이곳에서 풍류생활을 즐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韓綽이란 인물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지만 당시 두목과 교유한 동료로 추측된다.
역주2 隱隱 : 흐리고 몽롱한 상태를 뜻한다.
역주3 迢迢 : 멀고, 깊고, 긴 상태를 뜻한다. 여기서는 양자강이 길게 흐르는 모습을 형용한 것이다.
역주4 草未凋 : 풀이 아직 마르지 않았다는 것은 강남이라 가을이 다 지나가도록 풀이 시들지 않음을 뜻한다. ‘未’가 ‘木’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5 二十四橋 : 隋나라 때부터 있었던 다리로 양주 지역의 勝景으로 꼽히는데, 이십사교가 지칭하는 다리와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분분하다. 宋代 沈括은 《夢溪補筆談》에서 “양주는 당나라 시절 가장 번성했던 곳이다. 옛 성곽은 남북으로 15리 111步이고……기록할 수 있는 다리가 24개가 있었다.[揚州在唐時最盛 舊城南北十五里一百一十步 東西七里三十步 可紀者 有二十四橋]”라고 한 뒤 24개의 다리 이름을 기록하여 놓았으며, 淸代 李斗의 《揚州畫舫錄》(卷15)에는 “卄四橋는 吳家에서 벽돌로 만든 다리로 일명 ‘紅藥橋’라고도 하는데 熙春臺 뒤에 있다.……〈揚州鼓吹詞序〉에 이르기를 ‘이 다리는 옛날에 24명의 미인이 이곳에서 퉁소를 불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라고 하였고, 혹자는 이것이 옛날의 이십사교라는 하였는데, 두 가지 설은 모두 틀리다. 이십사교에 대하여 고찰하니, 沈存中(沈括)의 《補筆談》(《夢溪補筆談》)을 보니 양주에 있었던 24개의 다리 이름을 기록해놓았는데, 濁河橋, 茶園橋……山光橋, 下馬橋 등이다. 실제 24개의 이름이 있으니 미인의 설은 대개 견강부회하여 말한 것이다.[卄四橋 卽吳家磚橋 一名紅藥橋 在熙春臺後……揚州鼓吹詞序云 是橋因古之二十四美人吹簫于此 故名 或曰卽古之二十四橋 二說皆非 按二十四橋 見之沈存中補筆談 記揚州二十四橋之名 曰濁河橋 茶園橋……山光橋 下馬橋 實有二十四名 美人之說 葢附會言之矣]”라고 하였다.
역주6 玉人何處敎吹簫 : ‘玉人’은 옥같이 아름다운 사람이란 뜻으로 여기서는 양주의 기녀를 지칭한다. ‘敎’는 ‘使’와 통하는 글자로, 기녀에게 퉁소를 불게 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한작이 양주에서 풍류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여 쓴 구절이다. 혹은 한작을 지칭한 것으로 보아 ‘옥인은 어디에서 퉁소를 가르치고 있을까.’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역주7 十年一覺揚州夢 : 두목의 〈遣懷〉 중 제1구를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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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92 기양주한작판관 383

당시삼백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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