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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2)

당시삼백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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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夏口에서 鸚鵡洲로 와서 저물녘 岳陽을 바라보며 源中丞에게 부치다〉
劉長卿
유장경
無浪復無煙
汀洲에는 물결도 없고 안개도 없는데
楚客相思益渺然
楚客의 그리움은 더욱 끝이 없다
夕陽斜渡鳥
漢口에 지는 해를 새가 빗겨 건너가고
洞庭秋水遠連天
동정호의 가을 물은 멀리 하늘에 닿았으리
孤城背嶺寒吹角
산마루를 등진 외로운 성에 차가운 뿔피리 소리
獨戍臨江夜泊船
강가에 戍樓 하나, 밤에 정박한 배
憂漢室
賈誼가 글 올린 것은 漢나라를 걱정해서였건만
長沙 땅으로 쫓겨와 예나 지금이나 애처롭게 여긴다
[通釋] 夏口를 떠나 앵무주에 도착하니 물결도 없고 안개도 없이 맑고 화창하여 그대 있는 岳陽이 눈에 보일 듯하니 초나라 땅으로 유배되어 가는 이 몸은 그대 향한 그리움이 더 절실해진다. 석양으로 물든 漢口에 새 한 마리가 날아 건너가고, 동정호의 가을 물빛은 하늘과 같이 푸른 색이라 하늘에 닿을 듯하겠지. 산고개를 등진 외로운 漢陽城에는 가을의 서늘한 기운을 타고 뿔피리 소리가 들려오고, 강이 바라보이는 戍樓에는 밤이 되면 정박하려는 배들이 모여들 것이다. 먼 옛날 가의는 漢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上疏했건만 조정의 소인배들이 모함하여 장사 땅으로 쫓겨났으니 옛날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를 위해 마음 아파하고 있다.
[解題] 유장경은 안녹산의 난을 비롯하여 여러 차례의 전란과 정치적 부침을 겪어 潘州의 南巴尉와 睦州司馬로 두 차례 좌천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좌천을 당하여 楚 땅을 지나는 길에 호남성의 앵무주에서 이르러 원중승이란 인물에게 부친 시이다. 앵무주와 악양의 경물을 묘사하는 가운데 이 부근에 있는 장사로 좌천당한 가의를 회고하고 있는데, 이는 政敵의 모함에 의하여 억울하게 좌천을 당한 가의에 유장경 자신의 처지를 비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역주
역주1 自夏口至鸚鵡洲夕望岳陽寄源中丞 : 《明一統志》에 “夏口는 武昌府 荊江에 있으며 沔口를 마주하고 있다.[夏口在武昌府荊江之中 正對沔口]”라고 하였고, “鸚鵡洲는 무창부의 성 남쪽에 있다.[鸚鵡洲在府城南]”라고 하였다. 岳陽은 巴陵 또는 嶽州라고도 칭하는데 湖南省 동북부에 있다. ‘望岳陽’이라고 하였는데, 앵무주는 호북성에 있고 악양은 호남성에 있어 직접 육안으로 볼 수 없으므로 원중승이 있는 악양을 향해 바라본다는 뜻이다. 源中丞은 元中丞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中丞은 御使中丞의 약칭으로 《漢官儀》에 “어사중승은 두 명이 있다. 본래 御使大夫의 丞인데 그 중 한 명이 殿에 있으면서 蘭台秘書를 겸하여 관장한다.[御史中丞二人 本御史大夫之丞 其一別在殿中 兼典蘭台秘書]”라고 하였다.
역주2 汀洲 : 강 속의 沙洲로 여기서는 鸚鵡洲를 지칭한다. 앵무주는 漢末 禰衡이 〈鸚鵡賦〉를 지어 유명해져 역대 시인묵객들이 많은 작품을 지었다. 淸나라 乾隆帝 때 ‘補課洲’로 개명되었다가 嘉慶 年間(1796~1820)에 다시 ‘鸚鵡洲’로 복원하였다.
역주3 漢口 : 제목에서 ‘夏口’라고 칭하였는데, 漢水가 長江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해당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大明一統志》에 “漢口는 大別山 북쪽에 있는데 漢水와 溳水가 합쳐져 장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곳이다.[漢口在大別山北 卽漢水與溳水合流入於大江處]”라고 하였다.
역주4 賈誼上書 : 前漢 文帝 때 황제의 신임을 얻은 가의가 율령‧관제‧예악 등의 제도를 개정하기 위하여 많은 의견을 상주한 사실을 지칭한다. 《漢書》 卷22에 “文帝 때 이르러 賈誼는……한나라가 세워져 지금까지 20여 년이 지났으니 마땅히 제도를 정하고 예약을 일으켜야 제후들이 이를 따르고 백성이 소박해 송사가 줄어들 것이라고 여겨 곧 이에 대한 의론의 초안을 올리니 천자가 기뻐하였다. 그러나 大臣 絳灌 등의 무리가 방해하였으므로 그의 의론은 마침내 실행되지 못하였다.[至文帝時賈誼以爲……漢興至今二十餘年 宜定制度興禮樂然後 諸侯軌道 百姓素樸 獄訟衰息 迺草具其儀 天子說焉 而大臣絳灌之屬害之 故其議遂寢]”라고 하였다.
역주5 長沙謫去古今憐 : 賈誼가 漢 文帝의 신임을 얻어 博士로 등용되었으나, 다른 신하들이 질시하여 長沙太傅로 좌천된 사실과 후대의 시인들이 가의의 불우함에 가슴 아파하여 많은 작품을 지었음을 지칭한다. 《史記》 〈屈原賈生列傳〉에 “천자가 가의에게 公卿의 지위를 주는 일을 대신들에게 의논하니 絳灌, 東陽侯, 張相如, 馮敬 등의 무리들이 모두 방해하며 가의의 단점을 말하기를 ‘낙양의 사람으로 나이 어린 초학자가 오로지 권력을 천단하고자 하여 여러 일에 분란을 일으킨다.’고 하였다. 이로 인해 천자도 뒷날 가의를 멀리하고 그의 의론을 쓰지 않았으며, 곧 가의를 長沙王 太傅로 삼았다.[天子議以爲賈生任公卿之位 絳灌東陽侯馮敬之屬 盡害之 乃短賈生 曰雒陽之人 年少初學 專欲擅權 紛亂諸事 於是 天子後亦疏之 不用其議 乃以賈生爲長沙王太傅]”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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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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