至今畵圖 可識者乃其面耳 不識魂猶南歸 深夜月明 若聞環佩之聲焉
千歲猶存琵琶 猶存胡中之語 蓋寫此怨恨于曲中 而人當自解也 -明 王嗣奭,《杜臆》卷8
盖聳起則爲山 跌下則爲壑 聳起則又爲山 無量劫來 天地如此浩浩也
于其間有楚 楚山楚水 起伏無數 遙遙直走千里萬里 而後有荊門 而後荊門有村 而後村中有明妃
三四承上村字 言明妃當日雖生長此村 而後不復爲村有者 爲入漢宮也 乃至明妃旣入漢宮 幷不復爲漢宮有者 則爲去紫臺也
況元帝以漢天子擇美婦人 則後庭春風之面 何難一一盡見 一一盡識
探帝之意 不過爲後宮充斥 欲盡識其面 其數何啻千萬
因此一省之故 乃至生奸生房闥而帝弗疑 迹混丹靑而帝不顧
美如明妃 抱恨絶域 雖以天子之勢 欲再識春風之面 卽亦豈能歸其環佩哉
不但生不能歸 試聽其琵琶怨恨之曲 分明甘作胡語 雖千載而下永不願爲漢婦矣
○ 詠懷古跡五首 前庾信宋玉 後蜀主孔明 豈古跡竟無 詠懷絶少 而以明妃厠其中耶
蓋以明妃天地所鍾靈 至今傳頌 而漢帝止從畫圖一識面 終死胡中
中四 述事申哀 筆情繚繞 一去怨恨之始也 獨留怨恨所結也
畵圖識面 生前失寵之怨恨可知 環佩歸魂 死後無依之怨恨何極
後來諸家總不能及 -淸 李子德,《杜詩鏡銓》卷13
餘皆平平 至楊憑馬駝絃管向陰山 風斯下矣 -淸 沈德潛,《唐詩別裁集》卷14
次句謂如此山水名邦 而淸淑之氣 獨鍾于女子 至今江頭行客 猶說遺村
三四謂一去胡沙 愈行愈遠 而芳魂戀闕 墓門草色長靑 表明妃之志也
五六謂漢帝僅于畵中一見 悔莫能追 環佩空歸 安得更承恩澤 哀明妃之遇也
其遺音感人者 幸有馬上琵琶 流傳舊樂 掩抑冰弦 如訴出絶塞飄零之苦 差足爲明妃寫怨矣 -現代 兪陛雲,《詩境淺說》
〈옛 자취를 읊으며 심회를 적다 세 번째 시〉
그림으로는 봄바람 같은 얼굴 알 수가 없었기에
[集評]○ 昭君村으로 인해 왕소군을 슬퍼하였다.
소군은 당대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궁에 들어가서 시기를 받았다.
공(杜甫) 역시 나라의 뛰어난 선비로 조정에 들어가서 질투를 받아 정말 서로 같은 처지였으니, 소군을 슬퍼하여 자신을 슬퍼한 것이다.
‘紫臺’는 江淹의 賦에 나오는 말을 쓴 것으로 ‘紫禁’과 같은 말이다.
‘連’은 오늘날 ‘㜕’이라고 쓰는데 혼사를 맺는다는 뜻이다.
북쪽의 사막으로 시집간 뒤에 무덤이 남아 홀로 푸르니, 그녀가 비록 죽어도 옛 고향 땅을 잊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그림은 그녀의 얼굴만을 알 수 있을 뿐, 그녀의 혼이 남쪽으로 오고 싶어 하는지는 알 수 없는데, 이 시에서는 깊은 밤 달 밝을 때면 마치 그녀의 환패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月夜’는 ‘夜月’이 되어야 하니, ‘春風’과 대구가 될 뿐만 아니라, 달은 밤과 함께 와야 의미가 더욱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천년 후에도 비파가 남아 있고 오랑캐 땅의 언어가 남아 있으니, 대개 그녀의 원망이 노래에 담겨 있음을 사람들은 스스로 이해할 것이다.
○ 明妃를 읊은 것은 천고에 재주를 품고 있으면서도 불우한 자를 위해 매우 애통해하며 안타까워한 것이다.
전반부에 대한 풀이:형문에 明妃村이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먼저 ‘群山萬壑赴荊門’의 구를 보면, 그 집을 묘사한 것이 큰 용이 굴을 향해 가는 법을 썼으니, 대단히 기이하다.
대개 위로 솟으면 산이 되고 아래로 내달리면 계곡이 되었다가 솟으면 다시 산이 되는데, 끝없이 이어지니 천지는 이와 같이 넓고 넓은 것이다.
그 사이에 초나라가 있고, 초나라의 산과 강이 수없이 기복을 일으키며 아득히 천리만리를 곧바로 달려 나가니, 그 뒤에 형문이 생겼고, 그 뒤에 형문의 마을이 생겼고, 그 뒤에 마을에서 명비가 태어난 것이다.
그러한즉 명비는 천지간의 기운이 특별히 모여 태어난 것임을 알 수 있다.
지금 명비는 떠나갔지만, 그 마을은 아직 남아 있다.
‘尙有村’이라고 한 것은 다만 마을만 남아 있다는 뜻이다.
3‧4구는 ‘村’자를 이어, 명비가 당시에 비록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랐지만 그 후에 마을에 있지 못하고 한나라 궁실로 들어갔고, 명비가 한나라 궁실에 들어간 뒤에는 또 한나라 궁실에 있지 못하고 황궁을 떠났음을 말하였다.
무릇 명비로서 단순히 황궁을 떠나갔다면 그 자취를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명비가 황궁을 떠나 마침내 북녘의 사막으로 갔기 때문에, 그 종적을 물을 수 없게 되었다.
오호라, 그녀의 뼈는 이미 썩고 무덤만이 아직도 푸르니 절세가인이 여기서 사라졌다.
당년에 어렵게 생장한 것에 견주어보면 너무나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후반부에 대한 풀이:위 구절을 이어 아래 문장으로 전환한 시로, 종래 재주 있는 신하를 버린 군주의 일면을
로 묘사한 것이다.
진정한 才人은 확고한 식견으로 인하여 귀하게 되니, 그림을 보고 준마를 찾는 일 따위는 없다.
하물며 元帝가 한나라의 천자로서 아름다운 부인을 택할 때, 後庭의 봄바람 같은 얼굴들을 하나하나 모두 보고 하나하나 알아보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는가.
그런데도 미천한 화공의 손에 맡겨 선택하였으니, 비루하다 할 만하다.
원제의 마음을 헤아려보면 후궁을 충원하는 것에 불과하니, 그 얼굴을 모두 보고자 하였다면 그 수가 어찌 천만 명뿐이겠는가.
그런데도 그림을 보고 불러들여 은총을 내렸으니 임시방편을 탐했을 뿐이다.
이와 같이 일을 줄임으로 인하여 간교함이 궁궐의 내전에서 생겨났는데도 원제가 의심하지 않았고, 그림이 잘못되어도 원제는 돌아보지 않았던 것이다.
明妃와 같은 아름다운 여자가 恨을 안고 먼 오지로 떠나갔으니, 비록 천자의 권세를 가지고 봄바람 같은 얼굴을 다시 보고자 하여도 어찌 능히 그녀가 찼던 환패를 돌아오게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달 아래 혼이 되어 허망하게 돌아왔다.[空歸月下魂]’라고 한 것이다.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연주한 비파의 원한 맺힌 곡을 들어본다면 분명 오랑캐 말로 노래하였지만, 천년이 지난 뒤에도 영원히 한나라의 여인이 되고 싶어 하지 않았겠는가.
어찌 그 당시 얼굴을 알아주지 않은 연유로 여기에 이른 것이 아니겠는가.
‘省’은 ‘省事’(수고를 덜다)의 ‘省’이다.
만약 實字로 해석한다면 어찌 ‘空歸’와 대구가 될 수 있겠는가.
○ 〈詠懷古跡〉 五首는 앞에서 庾信과 宋玉을, 뒤에서 蜀主와 諸葛孔明을 읊었는데, 어찌 古跡이 끝내 다하고 감회를 노래할 것이 없어서 明妃를 그 사이에 끼워넣은 것이겠는가.
대개 명비는 천하의 영기가 모여서 생겨난 사람으로 지금까지도 칭송되는데, 漢나라 元帝가 그림으로만 한 번 보고 말아서 끝내 오랑캐 땅에서 죽고 말았다.
마침내 馬嵬의 亂이 일어나도록 하지 않았는가.
두 사람 중 누구를 위해 더 傷心해야 하는가.
이 시 전체에 言外의 탁월한 식견이 담겨 있다.
○ 昭君村으로 인하여 명비를 노래했으니, 고향을 그리워한 원한을 안타깝게 여긴 것이다.
결구의 ‘怨恨’ 두 글자는 전체 시의 귀결처이다.
첫 시작을 진중하게 하여 마을이 남아 있다는 설을 드러내어 따로 한 구절을 만들었다.
가운데 네 구에서 사실을 기술하고 슬픔을 펴낼 때, 붓 끝에 담긴 정이 곡진하다, ‘一去’는 ‘怨恨’의 시작이고, ‘獨留’는 ‘원한’의 끝맺음이다.
‘畵圖識面’이라 했으니 생전에 임금의 은총을 얻지 못한 원한을 알 수 있고, ‘環佩歸魂’이라 했으니 죽은 뒤에 의지할 곳이 없는 원한이 어찌 다할 수 있겠는가.
마지막 구절은 변방의 노래를 빌려 이 점을 분명하게 드러내었다.
○ 다만 명비에 대해서 이야기하였을 뿐 처음부터 끝까지 의론과 관계된 말이 한마디도 없으나 함축되지 않은 것이 없다.
○ 소군을 노래한 시 중 이 작품이 절창이다.
나머지는 모두 비슷한 수준인데,
의 “말과 낙타, 현악기와 관악기가
을 향한다.”는 風格이 떨어진다.
○ 명비를 읊은 시는 많으나 沈歸愚(沈德潛)는 이 시를 절창으로 치켜세웠다.
그녀의 일생을 포괄하여 처량하고 비통하게 표출했기 때문이다.
첫 구에서 형문의 지세를 읊으며 ‘赴’ 한 글자를 사용한 것은 침착함에 공력이 들어가 있다.
다음 구에서 이와 같은 산수의 명승지에 淸淑한 기운이 오로지 이 여인에게 모였다고 하였으니, 지금까지도 강가를 오고 가는 나그네들은 남아 있는 이 마을에 대해 말한다.
천하의 강토에 남아 있는 미인의 자취로는 西施가 태어난 苧羅村과 천추의 아름다움을 다툴 만하다.
3‧4구에서는 오랑캐의 사막으로 한번 떠나간 뒤 가면 갈수록 멀어져 꽃다운 혼이 궁궐을 그리워하여, 묘지의 풀빛이 오래 푸르다고 하였으니 이는 명비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5‧6구는 漢帝가 그림으로 한번 본 뒤 후회해도 소용이 없는데, 환패만이 부질없이 돌아왔으니, 어찌 다시 은총을 받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여 명비의 운명을 슬퍼하였다.
마지막 구에서 한나라 궁궐이 오래전에 연기처럼 사라져 명비가 묻힌 무덤도 오랜 세월 변방에 버려져 있는데,
그녀가 남긴 노래가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다행히 말을 타고 가면서 타던 비파 소리가 옛 가락에 전해 내려와 그 침울한 소리가 마치 멀리 떨어진 변방에서 떠도는 고통을 하소연하는 듯하다고 하였으니, 명비를 위하여 그녀의 원한을 충분히 그려냈다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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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영회고적 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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