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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1)

당시삼백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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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哀江頭〉
〈강어귀에서 슬퍼하다〉
杜甫
두보
少陵의 촌 늙은이 소리 삼키고 흐느끼며
春日潛行
봄날 곡강 굽이를 몰래 거니네
江頭宮殿
강가 궁전 많은 문 모두 다 잠겼는데
爲誰綠
가는 버들과 새 부들은 누굴 위해 푸른가
생각하면 지난날 霓旌이 南苑에 내려왔을 때
苑中景物生顔色
정원 속 만물은 생기가 났었지
소양전의 제일가는 미인이
同輦隨君侍君側
임금수레에 같이 타고 따르며 곁에서 뫼시었고
輦前帶弓箭
수레 앞 재인은 활과 화살 차고
白馬嚼齧黃金勒
백마는 황금 재갈을 물었다
翻身向天仰射雲
몸 돌려 하늘 향해 구름을 쏘니
正墜雙飛翼
화살 하나에 바로 나란히 날던 새 떨어졌다
明眸皓齒今何在
밝은 눈동자 흰 치아 가진 이 지금은 어디에 있나
피에 더럽혀져 떠도는 혼 돌아오지 못한다오
맑은 위수 동쪽으로 흐르고 검각산은 깊은데
떠나고 남은 자 서로 소식 없구나
人生有情淚沾臆
인생살이 정이 있는지라 눈물이 가슴 적시는데
강물과 강꽃은 어찌 끝이 있으리오
黃昏塵滿城
해질 녘 오랑캐 발굽에 성은 먼지 가득해
성 남쪽에 가려다가 성 북쪽을 멀리 바라보네
[通釋] 소릉의 촌늙은이가 터져 나오는 울음 삼키며 봄날 전쟁 중인 장안을 탈출해 몰래 곡강 굽이에 왔다. 강가의 궁전은 아무도 없어 수많은 문 다 닫혀있는데 봄이 되어 피어난 가는 버들과 새 부들은 누구를 위해 푸른빛을 띄고 있는가.
지난날 생각해보건대 멀리서 보면 무지개처럼 환하게 빛나는 깃발을 앞세우고 황제 수레가 곡강 남쪽에 있는 南苑에 내려갈 때 정원 가운데 있는 만물은 더욱 생기를 띄며 환한 모습을 보였다. 소양전 안에서 황제 총애 받았던 제일가는 미인은 황제의 수레를 같이 타고 황제 곁에서 따르며 뫼시었다. 수레 앞에서 황제를 호위하던 才人은 활과 화살을 차고 있었고 백마는 화려하게 장식하고 황금 재갈을 물었다. 재인이 재주를 보이며 말 위에서 몸을 돌려 하늘 향해 구름으로 활을 쏘자 곧바로 화살 하나에 나란히 날던 새가 떨어졌다.
그때 황제와 같이 있었던 또렷한 눈동자와 흰 치아를 가진 아름다운 사람,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먼 馬嵬에서 피에 얼룩져 떠도는 혼이라서 돌아오지 못하는구나. 맑은 위수는 동쪽으로 흐르고 검각산은 깊고 험한데 황제는 저기로 떠나고 양귀비는 여기에 남아 서로 소식이 없구나. 사람이란 감정이 있는지라 이 이야기 듣고 눈물이 가슴을 적시니 강물이 끝없이 흐르고 강가의 꽃이 해마다 피어나듯 두 사람의 이야기는 영원히 사람들의 가슴을 적실 것이다. 해질 녘 오랑캐 발굽에 장안성은 아직 먼지로 가득한데도 성 남쪽을 가면서도 성 북쪽도 가보고 싶을 뿐이다.
[解題] 이 시는 두보가 至德 2년(757) 봄 장안이 함락된 후 지은 것이다. 장안이 함락되기 이전 환락을 누리던 모습과 양귀비의 죽음을 애도하는 극적인 대비를 통해 덧없이 지나간 한 시대의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哀’字가 시 전체를 감싸는 詩眼이라 할 수 있다.
정치를 풍자한 시로 읽기도 하지만 당 현종과 양귀비의 고사를 슬프게 다루고 있어 백거이의 〈長恨歌〉와 견주어지기도 한다.
[集評] ○ 哀江頭江水江花 猶感時花濺淚 恨別鳥驚心之類
[集評] 〈哀江頭〉의 ‘江水江花’는 (두보의 다른 시 〈春望〉의) ‘시절을 느껴 꽃에도 눈물 흘리고, 이별이 한스러워 새에게도 마음이 놀란다.’는 것과 같은 종류로,
皆因人情之甚悲 而借無心之物 以極言之也 - 朝鮮 李德弘, 《艮齋集》 〈古文前集質疑〉
모두 사람의 아주 슬픈 감정을 무심한 事物을 빌어와 극진히 말한 것이다.
○ 曲江 帝與妃遊幸之所 故有宮殿 而公追溯祿山亂自貴妃
곡강은 황제와 양귀비가 노닐던 곳이기 때문에 궁전이 있었는데 시인은 안녹산의 난이 양귀비에게서 비롯되었음을 회상하였다.
故此詩直述其寵幸之盛 宴游之娛 而終以血汚遊魂 所以深刺之也 - 明 王嗣奭, 《杜臆》 卷2
그러므로 이 시는 그 대단했던 총애와 연회의 즐거움을 곧바로 서술하고 ‘피에 더럽혀져 떠도는 혼’으로 끝맺고 있으니, 깊이 풍자한 것이다.
○ 此詩興哀于馬嵬之事 專爲貴妃而作也 蘇黃門曰哀江頭卽長恨歌也 斯言當矣
이 시는 馬嵬의 일에서 슬픔이 일어나 오직 양귀비를 위해 쓴 것이다. 蘇黃門은 “〈哀江頭〉가 바로 〈長恨歌〉이다.”라고 했는데 이 말은 타당하다.
淸渭劍閣 寓意于上皇貴妃也
‘맑은 위수와 劍閣’은 당 현종과 양귀비에게 뜻을 부친 것이다.
玄宗之幸蜀也 出延秋門 過便橋 渡渭 自咸陽望馬嵬而西
현종이 촉으로 갈 때 延秋門을 나와 便橋를 지나 위수를 건너 咸陽에서 馬嵬를 바라보며 서쪽으로 갔다.
則淸渭以西 劍閣以東 豈非蛾眉宛轉 血汚遊魂之處乎
그러하니 맑은 위수의 서쪽, 검각의 동쪽이 어찌 ‘아름다운 눈썹을 한 이’가 ‘피에 더럽혀져 떠도는 혼’이 된 곳이 아니겠는가.
故曰去住彼此無消
그러므로 ‘저기로 떠나고 여기에 남아 서로 소식 없구나’라고 한 것이다.
行宮對月 夜雨聞鈴 寂寞傷心 一言盡之矣
‘행궁에서 달을 보고’ ‘비 내리는 밤에 방울소리 들으면서’ ‘적막함 속에서 상심’하는 모습을 이 한 마디로 다 표현하였다.
人生有情淚沾臆 江水江花豈終極 卽所謂 天長地久有時盡 此恨綿綿無絶期也
‘인생살이 정이 있는지라 눈물 가슴 적시는데, 강물과 강꽃이 어찌 끝이 있으리오’라는 말은 이른바 ‘하늘은 무한하고 땅은 유구하더라도 끝이 있겠지만, 이 한은 영원히 끝나는 날 없으리라’와 같다.
興哀于無情之地 沈吟感嘆 瞀亂迷惑 雖胡騎滿城 至不知地之南北 昔人所謂有情痴也 - 淸 錢謙益, 《錢注杜詩》 卷1
無情한 땅에서 슬픔이 일어 깊이 읊으며 감탄하고 눈이 어두워지고 정신 아득해 오랑캐가 성에 가득한데도 남북 방향을 알지 못하는 데에 이르렀으니 옛 사람이 말한 바, ‘情이 깊어 바보가 된’ 경우이다.
○ 亂離事只敍得兩句 淸渭以下純以唱嘆出之 筆力高不可及 - 淸 王西樵의 말을 淸 楊倫, 《杜詩鏡銓》 卷3에서 인용
난리에 관한 일은 단지 두 구절로 서술하였고 ‘맑은 위수’ 이하는 순전히 감탄으로 썼는데 筆力이 높아 미칠 수가 없다.
역주
역주1 少陵野老呑聲哭 : ‘少陵’은 옛 지명이니 지금의 陝西省 長安縣 杜陵 東南쪽이다. 杜陵은 漢나라 宣帝의 무덤으로 少陵은 杜陵에 비해 작은데 宣帝의 許皇后가 묻힌 곳이다. 두보가 한 때 이 부근에 산 적이 있으므로 스스로 ‘杜陵布衣’, ‘小陵野老’라 불렀다. ‘呑聲哭’은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것으로 가슴이 아프다는 뜻을 부친 것이다.
역주2 曲江 : 원래는 연못이름이니, 지금의 섬서성 장안현 동남쪽에 있다. 제목에 보이는 강은 이 曲江을 가리킨다. 漢나라 武帝 때 이곳에 宜春院을 지었는데 연못물이 굽이치는 것이 마치 강물 같아 曲江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唐나라 開元년간 다시 물길을 트고 못을 팠는데 못 주위에 紫雲樓‧芙蓉苑‧杏園‧慈恩寺‧遊樂原 등 여러 뛰어난 경치가 있어 매년 정월 그믐‧삼월 삼짇날‧重陽節 登高 같은 좋은 날에는 행락객이 구름처럼 모였고, 선비들이 과거에 급제하면 또 이곳에서 잔치를 열기도 했다. 당나라 때 대표적인 景勝地인데 지금은 메워져 육지가 되었다.
역주3 鎖千門 : 당시 장안은 安祿山의 叛軍에 점령되어 궁전에는 아무도 없고 수많은 문이 다 닫혀 있다는 뜻이다.
역주4 細柳新蒲 : 《劇談錄》에 곡강의 여름풍경을 묘사한 글이 있다. “여름이 되면 향초 부들이 푸르게 피고 버들 그림자가 사방을 둘러싸고 푸른 물결에 붉은 연꽃이 있어 선명한 모습이 사랑할 만하다.[入夏則菰蒲蔥翠 柳陰四合 碧波紅蕖 湛然可愛]”
역주5 霓旌下南苑 : ‘霓旌’은 황제의 儀仗用 깃발인데, 채색한 깃발이 길게 뻗어 멀리서 보면 무지개 같음을 이른다. ‘南苑’은 芙蓉苑을 가리키며 玄宗의 行宮으로 곡강 남쪽에 있었다.
역주6 昭陽殿裏第一人 : ‘昭陽殿’은 漢나라 成帝 때의 궁전이다. ‘第一人’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총애를 받는 사람으로, 한나라 때 成帝의 총애를 받던 趙飛燕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당 현종의 총애를 받았던 楊貴妃를 은유하고 있다.
역주7 才人 : 女官으로 당나라 때 才人 7인을 두었는데, 정4품으로 침실‧직물을 관장했다. 여기서는 당 현종과 양귀비를 따르며 侍衛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역주8 : ‘笑’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9 血汚遊魂歸不得 : 天寶 15년(756) 양귀비가 馬嵬에서 죽은 사건을 가리킨다.
역주10 淸渭東流劍閣深 : 현종이 안녹산의 난을 피해 蜀으로 들어가는 경로를 묘사한 것이다. ‘渭’는 渭河로 甘肅省 渭源縣에서 발원해 陝西省 高陵縣에 이르러 涇水와 합쳐진다. 渭水는 맑고 涇水는 탁하므로 세상에서 말하는 ‘涇渭가 分明하다.’는 말은 여기서 유래했다. 渭水는 馬嵬 남쪽을 지나 흐르는데 양귀비는 渭水 북쪽에 장사지냈다. ‘深’은 깊고 험하다는 뜻이다.
역주11 去住彼此無消息 : (한 사람은) 저리 떠나고 (한 사람은) 여기 남아 소식이 없다는 말이다. 《杜詩詳註》에, “馬嵬驛은 京兆府 興平縣에 있고 渭水는 隴西로부터 와서 흥평을 지나간다. 양귀비를 위수가에 草墳하고 上皇(玄宗)은 검각으로 갔으므로 東으로 가고 西에 머물러 둘 다 소식이 없는 것이다.[馬嵬驛在京兆府興平縣 渭水自隴西而來 經過興平 蓋楊妃藁葬渭濱 上皇巡幸劍閣 是去往東西兩無消息]”라 하였다.
역주12 江水江花豈終極 : ‘江水’가 ‘江草’로 되어 있는 本도 있다. ‘어찌 끝이 있으랴’[豈終極]라는 말에는 恨이 끝이 없으리라는 뜻이 숨어 있다.
역주13 胡騎 : 안녹산 叛軍의 騎兵을 말한다.
역주14 欲往城南望城北 : ‘城南’은 당시 두보가 살던 곳을 가리킨다. ‘望城北’은 ‘忘南北’ 혹은 ‘忘城北’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望’을 향하다[向]의 뜻으로 보아 자기가 사는 곳으로 가고 싶으면서도 걱정스런 마음에 북쪽을 향한다로 보기도 하는데, 방향을 잊을 만큼 傷心한 시인의 상태로 보는 것이다. 또 肅宗이 靈武에서 즉위했는데 장안 북쪽에 있으므로 왕의 군대가 와서 서울을 수복하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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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88 애강두 269

당시삼백수(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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