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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3)

당시삼백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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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宗元(773~819)
字는 子厚이며, 長安 출생이다. 柳河東‧柳柳州라고도 부른다. 관직에 있을 때 韓愈‧劉禹錫 등과 친교를 맺었다. 개혁적이었던 王叔文의 新政에 관계하였으나 실패하여 변경 지방으로 좌천되었다. 이러한 좌절과 13년간에 걸친 변경생활이 그의 사상과 문학을 더욱 심화시켰다. 古文의 대가로서 韓愈와 병칭되었으나 사상적 입장에서는 대립하였다. 韓愈가 전통주의인 데 반하여, 柳宗元은 儒‧道‧佛을 참작하면서 합리주의의 입장을 취하였다.
〈天說〉, 〈封建論〉 등이 대표작으로 꼽히며 寓言 형식을 취한 諷刺文과 永州에 좌천되어 관리생활을 하면서 그곳의 山水를 묘사한 산문은 山水遊記라는 문체의 탄생을 가져왔다. 그는 이러한 작품을 통해 관료를 비판하고 현실을 반영하는 한편, 자신의 우울과 고민을 술회하였는데, 그 字句의 완숙미와 표현의 간결‧정채함은 특히 뛰어났다. 산수시에 능하여 陶淵明과 비교되었고, 王維‧孟浩然 등과 唐詩의 산수전원시파를 형성하였다. 送別詩‧寓言詩에도 뛰어나 憂憤哀怨의 情을 표현하는 수법은 屈原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저서에 시문집 《柳河東集》 등이 있다. 《唐詩三百首》에 수록된 작품으로 〈晨詣超師院讀禪經〉, 〈溪居〉, 〈漁翁〉, 〈登柳州城樓寄漳汀封連四州刺史〉 등이 있다.

당시삼백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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