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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2)

당시삼백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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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至德二載 甫自京 乾元初 從左拾遺 與親故別 因出此門 有悲往事〉
〈至德 2년(757)에 나는 서울의 金光門을 나와 샛길로 鳳翔에 돌아갔다. 乾元 元年(758)에 左拾遺에서 華州掾으로 폄직되어 친구들과 이별하였는데, 이로 인해 이 문을 나오니 지난 일에 대한 슬픔이 있었다〉
杜甫
두보
이 길은 예전에 귀순하던 길
西郊正繁
서쪽 교외엔 반군들이 들끓었지
至今
지금까지도 간담이 서늘하여
應有未招魂
그때의 혼백을 아직도 불러오지 못했네
歸京邑
가까이 모시면서 서울로 돌아왔는데
移官豈至尊
벼슬을 옮김이 어찌 황제의 뜻이겠는가
無才日衰老
재주 없는 이 몸 날로 노쇠해져서
駐馬望
말을 멈추고 千門을 바라본다
[通釋] 지난날 安史의 난을 일으킨 반군들이 점령한 장안을 떠나 황제가 계시던 봉상으로 귀순할 때 이 길을 지나갔는데, 그때 서쪽 교외에는 반군들이 들끓고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간담이 서늘해져서 그때 놀라 달아난 혼백을 아직도 불러오지 못하고 있다. 황제를 곁에서 모시는 좌습유가 되어 서울에 돌아왔는데, 이번에 華州司功으로 폄직하는 것이 어찌 황제의 뜻이겠는가. 스스로 자신의 재주 없음과 노쇠해짐을 탄식하며, 자기도 모르게 말을 멈추고 황제가 계신 궁전을 바라본다.
[解題] 杜甫는 至德 2년(757) 봄에 안사의 난을 일으킨 반군들이 점령하고 있던 장안을 목숨 걸고 탈출하여 肅宗이 있는 봉상으로 도망쳤는데, 이때 금광문을 지나갔다. 그 후 좌습유가 되어 장안으로 돌아왔지만, 다음해인 乾元 元年(758) 6월에 房琯을 구하려고 상소했다가 華州 司功參軍으로 폄직된다. 이때 화주로 가면서 다시 금광문을 지나게 되는데, 현재와 지난날을 떠올리면서 자신의 감정을 읊은 것이 이 작품이다.
[集評]○ 此詩不無怨 然不怨不厚 - 明 鐘惺, 《唐詩歸》 卷21
[集評]○ 이 시는 원망함이 없지 않다. 그러나 군주의 부덕함을 원망한 것은 아니다.
○ 不無少望 然淡淡直敍 怨而不怒 諷刺體之聖也 - 淸 何焯, 《義門讀書記》 卷53
○ 작은 소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담담하게 直敍하였다. 원망하면서도 노하지 않았으니, 諷刺體의 최고봉이다.
○ 公疏救房琯 詔三司推問 以張鎬力救 勅放就列 至次年 與房琯嚴武俱貶 坐琯黨也 此公事君交友生平出處之大節
○ 공(두보)이 房琯을 구하려는 소를 올려서 〈임금이〉 三司에게 推問을 명하였는데, 張鎬가 그를 힘써 구하였기에 풀어주라는 칙명을 받아 벼슬길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해에 방관‧嚴武와 함께 폄직을 당하였으니, 방관의 당으로 연좌된 것이다. 이는 공이 임금을 섬기고 벗과 교유하며, 평생의 출처를 지킨 大節이다.
曰移官豈至尊 不敢歸怨于君也
‘벼슬을 옮김이 어찌 황제의 뜻이겠는가.[移官豈至尊]’라고 한 것은 임금에게 원망을 돌린 것이 아니다.
當時讒毁 不言自見 又以無才自解 更見深厚
당시에 참소를 당하고서도 자신의 견해를 말하지 않고, 또 자신이 재주 없다는 것으로 스스로를 해명한 데서 더욱 그 심후한 덕을 볼 수 있다.
王維詩云 執政方持法 明君無此心 與此同意 而老杜尤爲渾成
이는 王維의 시 “[執政方持法 明君無此心]”와 같은 뜻이지만, 老杜(두보)의 시가 더욱 혼연하게 이루어졌다.
此詩有介子從龍之感 而詞意歸于厚 所謂詩可以怨也 - 淸 顧宸, 《杜詩詳注》 卷6引
이 시에는 介子推가 임금을 따랐던 마음이 있지만, 詞意는 더욱 두터운 데로 돌아갔으니, 孔子의 이른바 ‘시는 원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 詞意婉曲 昔之忠款 今之眷戀皆見 怨而不怒 忠厚之道 - 淸, 《唐宋詩醇》 卷15
○ 시어의 뜻은 완곡하지만, 지난날의 충성과 오늘날의 사모함이 모두 드러난다. 원망하면서도 노하지 않으니 忠厚의 도이다.
○ 首四句明述己忠心苦節 妙在不露 - 淸 楊倫, 《杜詩鏡銓》 卷5
○ 앞의 4구는 자신의 충성된 마음과 굳은 절개를 분명히 서술하였지만, 시의 묘처는 드러나지 않음에 있다.
○ 題曰有悲往事 而詩之下截幷悲今事矣 妙在三四說往事 却以至今爲言 下便可直接移掾 - 淸 浦起龍, 《讀杜心解》 卷3-1
○ 제목에 ‘지난 일에 대한 슬픔이 있다.[有悲往事]’고 하였지만, 시의 하단에서는 지금의 일을 슬퍼하였다. 이 시의 묘처는 3‧4구에서 지난 일을 말하면서 도리어 ‘지금’으로 말하고 있는 것에 있으니, 華州掾으로 폄직된 것과 곧장 연결된다.
역주
역주1 金光門 : 장안 외성의 서쪽에 開遠‧金光‧延平 등 세 개의 문이 있었는데, 이 중 가운데 문이 금광문이다.
역주2 間道 : 샛길을 말한다. ‘問道’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3 鳳翔 : 지금의 陝西省 鳳翔縣이다. 당나라 때 장안 서쪽의 重鎭으로, 西京이 세워졌었다.
역주4 移華州掾 : ‘移’는 벼슬을 옮긴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貶官‧降職의 의미이다. ‘華州’는 지금의 陝西省 華縣이며, ‘掾’은 屬官의 통칭이다. 杜甫는 華州 司功參軍으로 폄직되었다.
역주5 此道昔歸順 : ‘此道’는 金光門에 있는 길을 가리킨다. ‘昔歸順’은 至德 2년에 반군이 장악한 장안을 떠나 황제가 있는 봉상으로 도망친 일을 말한다.
역주6 : 여기서는 安史의 난을 일으킨 반군을 말한다.
역주7 : ‘殘’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8 破膽 : 놀라 두려워하는 모습이다.
역주9 近侍 : 황제를 모시는 近臣으로 여기서는 杜甫가 좌습유가 된 것을 의미한다. ‘近得’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10 千門 : 궁전의 문을 지칭하는데, 여기서는 궁전 자체를 의미한다.
역주11 집정관이……없으리라 : 왕유의 〈被出濟州〉로 전문은 다음과 같다. “미관말직은 죄를 얻기 쉬우니, 황하 남쪽 제주로 폄적되어 떠나네. 집정관이 곧 법을 주재하여도, 明君에게는 이 마음이 없으리라. 여염은 하류 연안에 있고, 정읍은 海雲 깊은 곳에 있네. 언젠가 돌아오더라도, 수많은 시름에 귀밑머리 세었으리라.[微官易得罪 謫去濟州陰 執政方持法 明君無此心 閭閻河潤上 井邑海雲深 縱有歸來日 多愁年鬢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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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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