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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2)

당시삼백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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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秦中에서 遠上人에게 부치다〉
孟浩然
맹호연
한 언덕에 항상 눕고 싶었는데
세 오솔길 만들 돈이 없음이 괴롭다
非吾願
이곳 北土는 내가 원하는 바 아니요
懷我師
東林에 있는 우리 大師를 그리워하네
黃金
황금은 계수나무로 불 때는 데 다 썼고
壯志逐年衰
씩씩했던 마음은 해가 갈수록 쇠약해지니
日夕涼風至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 불어오는데
聞蟬但益悲
매미 소리 들으니 슬픔만 더할 뿐이네
[通釋] 나는 항상 산림을 찾아 은거하고 싶지만 은거할 기반을 마련할 돈이 없다. 지금 여기 북쪽장안에서 떠돌고 있는 것도 생계 때문에 온 것일 뿐 내가 원하던 바는 아니었으니, 마음속으로는 항상 東林寺에 있는 大師, 그대를 그리워하고 있다. 여기 장안의 물가는 너무 비싸서 돈을 쓰는 것이 마치 계수나무로 불을 때는 듯하여 가진 돈을 다 써버렸고, 씩씩했던 의지와 기개는 세월이 흘러가면서 점점 쇠약해져 간다. 저물녘에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데 끊어질 듯 이어지는 매미 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더욱 아파온다.
[解題] 맹호연은 開元 16년, 그의 나이 40세(728)에 장안에 가서 진사시에 응시했지만 낙방했다. 이 시는 낙방한 직후 장안에 머물고 있을 당시, 가을이 오자 客中의 괴로운 상황을 묘사하여 遠上人에게 부친 시이다. 원상인은 東林寺의 승려로 行歷이 자세하지 않다.
당시 작자는 매우 곤란한 처지에 있었다. 벼슬길에 나아가 관리가 되는 것이 그의 진정한 소망이었지만 그를 이끌어줄 사람이 없었고, 물러나 산림에서 은거하고자 한 바람은 부득이한 것이었지만 그 또한 경제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 시는 원상인을 대상으로 쓴 것이지만 ‘東林懷我師’ 句를 제외하고는 원상인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니, 결국 시의 전체 내용은 시인이 자신의 窮苦함을 토로한 것이라 하겠다. 특히 7‧8구는 이른바 感秋, 悲秋의 詩情이면서 시인의 복잡한 심리상태를 사물을 통해 구체적으로 표현한 부분이다.
시종일관 처량하고 괴로운 심사를 드러낸 詩語들이 맹호연의 다른 시들에서 보이는 氣槪 있는 韻致와 風格과는 걸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이 때문인지 《全唐詩》 校註에 “어떤 본에는 崔國輔의 시로 되어 있다.[一作崔國輔詩]”고 하였고, 蕭繼宗의 《孟浩然詩說》의 경우 이 시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仕宦과 隱居 사이의 심리적인 갈등이 맹호연 시의 핵심적인 주제이고, 이 시 역시 그러한 주제의식에서 벗어나 있지 않기 때문에 맹호연의 시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역주
역주1 秦中寄遠上人 : 《全唐詩》에는 시 제목이 ‘秦中感秋寄遠上人’으로 되어 있고, 四部叢刊本 《孟浩然集》에는 ‘遠’자가 없다. 여기서는 章燮本을 따랐다. ‘秦中’은 지금의 陝西省 중부 지역인데 곧 關中이다. 여기서는 唐의 수도 長安을 가리킨다. ‘遠上人’은 이름이 遠인 和尙으로 生平이 자세하지 않다. 上人은 승려의 존칭이다.
역주2 一丘常欲臥 : ‘一丘’는 은거하는 산림을 지칭한다. 丘는 작은 산인데 여기서는 산언덕, 山林의 뜻이다. ‘臥’는 은거한다는 뜻이다.
역주3 三徑苦無資 : ‘三徑’은 은거하는 장소 또는 시골집을 가리키는 것으로, 三徑苦無資는 은거할 기반을 마련할 돈이 없다, 또는 내가 사는 시골집은 너무나 가난해서 생활을 이어갈 수 없다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이는 장안으로 와서 벼슬을 하려는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三輔決錄》에 “蔣詡는 字가 元卿으로 집 안의 대나무 아래에 세 오솔길을 만들고 오직 羊仲과 求仲 두 사람과만 교유하였다.[蔣詡字元卿 舍中竹下開三徑 惟羊仲求仲從之遊]”고 하였다. 《晉書》 〈陶淵明傳〉에 “潛(淵明)이 친구들에게 말하기를 ‘애오라지 지방수령으로 있으면서 은거할 밑천을 마련하고 싶은데 가하겠는가?’ 하였다. 상관이 그 얘기를 듣고 彭澤縣令으로 임명하였다.[潛謂親朋曰 聊欲弦歌 以爲三徑之資 可乎 執事者聞之 以爲彭澤令]”는 기록이 있다. 도연명은 〈歸去來辭〉에서 “세 오솔길에 잡초가 무성해도, 소나무와 국화는 여전히 남아 있네.[三徑就荒 松菊猶存]”라 했다.
역주4 北土 : 北地인데 秦中을 가리키며, 여기서는 장안을 말한다.
역주5 東林 : 東林寺인데 晉代 刺史 桓伊가 高僧 慧遠을 위하여 廬山 동쪽에 지어준 절이다. 여기서는 遠上人이 살고 있는 절을 지칭한 것이다.
역주6 燃桂 : 생활비가 많이 든다는 것을 비유한 말로, 곧 땔나무를 태우는 것이 계수나무를 태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용이 많이 든다는 뜻이다. 《戰國策》 〈楚策〉에 “楚나라의 음식은 玉보다 귀하고 땔나무는 계수나무보다 귀하니, 지금 저는 옥을 먹고 계수나무로 불을 때고 있습니다.[楚國之食貴於玉 薪貴於桂 今臣食玉炊桂]”라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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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29 진중기원상인 159

당시삼백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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