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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2)

당시삼백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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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浩然
非吾願
懷我師
黃金
壯志逐年衰
日夕涼風至
聞蟬但益悲


〈秦中에서 遠上人에게 부치다〉
맹호연
한 언덕에 항상 눕고 싶었는데
세 오솔길 만들 돈이 없음이 괴롭다
이곳 北土는 내가 원하는 바 아니요
東林에 있는 우리 大師를 그리워하네
황금은 계수나무로 불 때는 데 다 썼고
씩씩했던 마음은 해가 갈수록 쇠약해지니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 불어오는데
매미 소리 들으니 슬픔만 더할 뿐이네


역주
역주1 秦中寄遠上人 : 《全唐詩》에는 시 제목이 ‘秦中感秋寄遠上人’으로 되어 있고, 四部叢刊本 《孟浩然集》에는 ‘遠’자가 없다. 여기서는 章燮本을 따랐다. ‘秦中’은 지금의 陝西省 중부 지역인데 곧 關中이다. 여기서는 唐의 수도 長安을 가리킨다. ‘遠上人’은 이름이 遠인 和尙으로 生平이 자세하지 않다. 上人은 승려의 존칭이다.
역주2 一丘常欲臥 : ‘一丘’는 은거하는 산림을 지칭한다. 丘는 작은 산인데 여기서는 산언덕, 山林의 뜻이다. ‘臥’는 은거한다는 뜻이다.
역주3 三徑苦無資 : ‘三徑’은 은거하는 장소 또는 시골집을 가리키는 것으로, 三徑苦無資는 은거할 기반을 마련할 돈이 없다, 또는 내가 사는 시골집은 너무나 가난해서 생활을 이어갈 수 없다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이는 장안으로 와서 벼슬을 하려는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三輔決錄》에 “蔣詡는 字가 元卿으로 집 안의 대나무 아래에 세 오솔길을 만들고 오직 羊仲과 求仲 두 사람과만 교유하였다.[蔣詡字元卿 舍中竹下開三徑 惟羊仲求仲從之遊]”고 하였다. 《晉書》 〈陶淵明傳〉에 “潛(淵明)이 친구들에게 말하기를 ‘애오라지 지방수령으로 있으면서 은거할 밑천을 마련하고 싶은데 가하겠는가?’ 하였다. 상관이 그 얘기를 듣고 彭澤縣令으로 임명하였다.[潛謂親朋曰 聊欲弦歌 以爲三徑之資 可乎 執事者聞之 以爲彭澤令]”는 기록이 있다. 도연명은 〈歸去來辭〉에서 “세 오솔길에 잡초가 무성해도, 소나무와 국화는 여전히 남아 있네.[三徑就荒 松菊猶存]”라 했다.
역주4 北土 : 北地인데 秦中을 가리키며, 여기서는 장안을 말한다.
역주5 東林 : 東林寺인데 晉代 刺史 桓伊가 高僧 慧遠을 위하여 廬山 동쪽에 지어준 절이다. 여기서는 遠上人이 살고 있는 절을 지칭한 것이다.
역주6 燃桂 : 생활비가 많이 든다는 것을 비유한 말로, 곧 땔나무를 태우는 것이 계수나무를 태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용이 많이 든다는 뜻이다. 《戰國策》 〈楚策〉에 “楚나라의 음식은 玉보다 귀하고 땔나무는 계수나무보다 귀하니, 지금 저는 옥을 먹고 계수나무로 불을 때고 있습니다.[楚國之食貴於玉 薪貴於桂 今臣食玉炊桂]”라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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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29 진중기원상인 159

당시삼백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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