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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3)

당시삼백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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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稹(779~831)
字는 微之이며, 河南 河內(지금의 河南省 洛陽市) 사람이다. 排行이 아홉째인 까닭에 元九라고 불렀다. 8세 때 부친을 여의고 鳳翔의 외가에서 자랐다. 24세에 吏部試에 응시하여 이듬해 秘書省校書郞에 제수되었다. 이해에 京兆尹으로 있던 세도가 韋夏卿의 딸 韋蕙叢과 혼인하여 금슬이 매우 좋았는데 河南에서 벼슬살이하는 도중 부인이 세상을 떠났다. 이때 쓴 悼亡詩가 유명하다. 이후 53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30여 년간의 관직생활은 좌천과 영달이 반복되는 순탄하지 않은 삶이었다. 강직한 성격에서 비롯된 그의 直言과 몇몇 사건은 권력층에 있는 사람들과 마찰을 일으켰다. 당시는 환관의 권력이 강화되면서 적잖은 폐단이 노출되던 때였다. 원진은 젊은 시절에는 이들 환관과 충돌해 5년간 江陵으로 좌천되기도 했는데, 40대가 지나면서 오히려 裴度로부터 환관과 가까이 지내 국정을 어지럽힌다는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그는 《詩經》과 漢魏 古樂府의 諷諭와 美刺의 정신을 이어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작품에 전념했다. 이를 新樂府라 한다. 古文운동의 영향을 받기도 했으며, 자신보다 7세 연상인 白居易와 친하게 지내면서 평이한 작품을 쓸 것을 주장해 元和體의 시풍을 세웠다. 예술 성취에서는 백거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있다.
《元氏長慶集》이 전하며, 대표작으로는 〈樂府古題〉 19수, 〈新題樂府〉 12수, 〈連昌宮詞〉 등이 있다. 《唐詩三百首》에는 〈遣悲懷〉 3수, 〈行宮〉 등 4수가 수록되었다.

당시삼백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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