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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3)

당시삼백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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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一〉
李白
春風拂
若非頭見
會向月下逢
[集評]○ 李白淸平調詞曰 雲想衣裳花想容 春風拂檻露華濃 若非群玉山頭見 會向瑤臺月下逢
按唐詩解云 明皇於武妃薨後 見雲而想其衣裳 見花而想其貌 當春風滴露之際 哀不勝情矣
若此之女 非群玉之王母 卽瑤臺之佚妃 人間豈易覩乎 謂未得太眞時也
余謂此乃贊美貴妃之辭
想者疑其似也 言貴妃之衣裳似雲 容似花而如春露方濃也 下句比諸仙女 非人間之所有云爾 - 朝鮮 李睟光, 《芝峯類說》 卷10, 文章部(三), 唐詩
○ 此首詠太眞
著二想字妙
次句人接不出 卻映花說 是想之魂
春風拂檻 想其綽約 露華濃 想其芳艶 脫胎烘染 化工筆也 - 淸 黃叔燦, 《唐詩箋注》 卷8


〈청평조 첫 번째 시〉
이백
구름 같은 저고리와 치마, 꽃 같은 얼굴
봄바람이 난간에 스치고 이슬방울 짙어진다
만약 群玉山 꼭대기에서 보지 못한다면
瑤臺 달빛 아래에서 만나리라
[集評]○ 이백의 〈淸平調詞〉에 “雲想衣裳花想容 春風拂檻露華濃 若非群玉山頭見 會向瑤臺月下逢”이라고 하였다.
살펴보건대, 《唐詩解》에 이르기를 “明皇(현종)이 가 죽은 뒤에 구름을 보면서 그의 의상을 상상하고, 꽃을 보고 그의 모습을 상상하였으며, 봄바람에 이슬이 맺는 시절을 만나면 슬퍼서 정을 이기지 못하였다.
이런 여자는 群玉山에 있는 서왕모가 아니면 瑤臺의 佚妃일 것이니 인간 세상에서 어찌 쉽게 볼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이는 太眞(양귀비)을 얻기 전을 말한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양귀비를 찬미한 말이다.
‘想’은 비슷하다고 의심하는 것이니, 양귀비의 의상은 구름과 같고, 얼굴은 꽃과 같은데 봄이슬에 흠뻑 젖은 것 같다고 말한 것이요, 아래 구절은 여러 선녀에게 비유하였으니 인간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 이 첫 번째 수는 태진(양귀비)을 노래한 것이다.
‘想’자를 두 번 쓴 것이 묘하다.
다음 구에는 사람의 접근이 나오지 않으면서 오히려 꽃에 대한 이야기만 반영하고 있으니 이것이 ‘想’의 혼이다.
‘春風拂檻’은 꽃이 부드럽게 하늘거림을 상상하게 하고, ‘露華濃’은 그 향기가 농염함을 상상하게 하니, 畵工의 묘사를 탈피한 造化翁의 필치이다.


역주
역주1 淸平調 : 唐代의 大曲 중의 하나로, 후에 詞牌로도 쓰였다. 청나라 때 편찬된 《御定詞譜》(卷40)에는 “당나라의 大小曲의 명칭은 《敎坊記》에 보인다.……竹枝, 柳枝, 浪陶沙 등의 곡조는 唐의 小曲이고,……淸平調, 水調, 涼州, 伊州 등의 곡조는 唐의 大曲이다.[唐之大小曲名 見教坊記……如竹枝柳枝浪陶沙等調 唐之小曲也……淸平調水調涼州伊州諸調 唐之大曲也]”라고 하였다. 〈淸平調〉는 唐 玄宗이 양귀비와 함께 모란꽃을 구경하면서 李白에게 지어 바치게 한 노래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한다.
역주2 雲想衣裳花想容 : ‘雲想’과 ‘花想’의 ‘想’은 ‘像’과 같은 뜻으로 구름 모양에 양귀비의 치마저고리를 비유하고, 꽃의 모습에 그녀의 얼굴을 비유한 것이다. 여기서 꽃은 모란을 지칭한다.
역주3 : 난간 또는 격자가 있는 창문을 지칭한다.
역주4 露華 : 이슬방울을 꽃에 비유한 표현이다.
역주5 群玉山 : 신화와 전설에 西王母가 거처한다고 전하는 산의 이름이다. 《穆天子傳》에 “신묘년 天子가 북쪽으로 원정을 나갔다가 동쪽으로 돌아올 때 黑水로 돌아왔다. 계사년에는 群玉이라는 산에 도착하였다.[辛卯 天子北征東還 乃循黑水 癸巳 至于群玉之山]”라고 하였고, 군옥산의 주석에 “곧 《山海經》에 이르기를 ‘군옥산은 서왕모가 거처하는 곳이다.’라고 했다.[卽山海云 群玉山 西王母所居者]” 하였다. 《山海經》의 주석에 “이 산은 옥돌이 많아 이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此山多玉石 因以名云]”라고 하였다.
역주6 瑤臺 : 옥으로 만든 누대라는 뜻으로, 서왕모를 비롯한 선녀들이 거처하는 궁전이다. 《太平御覽》에 “곤륜산의 요대는 서왕모의 궁전이다. 이른바 西瑤 위의 臺라는 것으로 天眞의 秘文이 그 속에 있다.[崑崙瑤臺 西王母之宮 所謂西瑤上臺 天眞秘文在其中]”라고 하였고, 屈原의 《離騷》에는 “요대가 높이 솟아 있는 곳을 바라보니, 有娀의 아름다운 선녀가 보인다.[望瑤臺之偃蹇兮 見有娀之佚女]”라고 하였다.
역주7 武妃 : 현종의 后妃인 貞順皇后 武氏(699~737)로 武惠妃라고도 칭한다. 현종의 외삼촌인 恒安王 武攸止의 딸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궁중에서 성장하였는데, 開元 12년(724)에 현종이 정실인 王皇后를 폐위시키고 武氏를 惠妃에 봉하였다. 자신이 낳은 아들 壽王 李瑁를 후원한 李林甫와 결탁하여 太子 李瑛, 鄂王 李瑤, 光王 李琚 등을 모함하여 폐위시켰는데, 이 사건을 일으킨 뒤 38세의 나이로 곧 세상을 떠났다.
역주8 檀板 : 널빤지를 두드려서 박자를 맞추는 악기 이름이다.
역주9 일찍이……있었다 : 李白이 일찍이 당 현종 앞에서 술에 잔뜩 취한 나머지 고역사를 불러서 자기 신을 벗기게 하자, 고역사가 마지못해 그 신을 벗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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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17 청평조 기1

당시삼백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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