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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3)

당시삼백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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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之渙(688~742)
字는 季淩으로, 原籍은 晉陽(지금의 山西省 太原市)인데, 高祖 때 絳郡(지금의 山西省 新絳縣)으로 옮겨 살았다.젊은 시절 俠氣가 있어 늘 칼을 차고 술에 취해 다니다가, 뒤늦게 뉘우치고 공부하여 冀州 衡永縣主簿를 역임했다. 후에 모함을 받자 분노하여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서 15년간 머물렀으며, 다시 文安(지금의 河南省 文安縣)縣尉를 지내던 중 얼마 되지 않아 관사에서 사망하였다.성당시대의 대표적 시인인 高適‧王昌齡‧崔國輔 등과 唱和하며 당대에 명성을 떨쳤는데, 특히 변방의 풍광을 묘사하는 데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의 기세가 웅장하고 의경이 광활하며 음조가 조화로워 시 대부분이 곡조가 붙여져 노래로 불렸다고 전하는데, 《全唐詩》에 6수만이 전한다. 《唐詩三百首》에 수록된 작품으로 〈登鸛雀樓〉, 〈出塞〉가 있다.

당시삼백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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