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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3)

당시삼백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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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勃(649~676)
자는 子安이며, 絳州 龍門(지금의 山西省 河津縣) 사람이다. 楊炯‧盧照隣‧駱賓王과 함께 初唐四傑로 불렸다. 어려서부터 詩와 賦를 지었으며, 이른 나이에 幽素科에 급제하여 朝散郞이 되었다. 沛王 李賢이 그의 文名을 듣고 불러 王府의 修撰으로 삼았다. 당시 鬪鷄가 성행하였는데, 왕발이 여러 왕족들의 우열을 닭싸움에 비유하여 〈鬪鷄檄文〉을 지었다가 고종의 노여움을 사 패왕부에서 쫓겨났고, 후에 虢州參軍이 되었다.
훗날 죄를 지은 관노를 숨겨줬다가 발각되었는데, 이로 인해 그의 아버지 王福畤가 연좌되어 交趾(지금의 베트남 하노이 부근)令으로 폄직된다. 아버지를 만나러 交趾로 가는 길에, 南海(지금의 廣東省 廣州市)를 건너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이때 그의 나이 20대 후반에 불과하였다. 이 여정에서 洪州(지금의 江西省 南昌市)를 지날 때에 지은 〈滕王阁序〉가 유명하다. 《王子安集》 30권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16권만이 전한다.
《唐詩三百首》에 수록된 작품으로 〈送杜少府之任蜀州〉가 있다.

당시삼백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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