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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3)

당시삼백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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駱賓王(627~684?)
字는 觀光이며, 婺州 義烏(지금의 浙江省 義烏縣) 사람이다. 7세 때 〈詠鵝〉라는 시를 지어 어린 시절부터 이미 詩名이 있었다. 王勃‧楊炯‧盧照隣과 함께 初唐四傑로 불렸다.
처음엔 道王 李元慶의 屬官이었는데, 高宗 末年에 武功主簿‧長安主簿가 되었다가 侍御史로 옮겨갔다. 시어사를 맡고 있을 때 則天武后가 점차 전횡을 일삼자 여러 차례 상소를 올려 諷諫하였고, 이 때문에 노여움을 사서 下獄되었다. 석방된 후에는 臨海縣(지금의 浙江省 天台縣)丞으로 좌천되었는데, 관직을 버리고 나아가지 않았다. 中宗 嗣聖 元年(684) 徐敬業이 군사를 일으켜 측천무후를 토벌하려 했을 때, 서경업의 막료가 되어 유명한 〈討武曌檄〉을 起草하였다. 그 檄文을 본 측천무후가 왜 이런 사람을 임용하지 않았냐며 재상을 힐책했다는 기록이 《新唐書》 〈文藝傳〉에 보인다. 서경업의 군대가 패한 후 그는 종적이 묘연해졌는데, 피살되었다는 설도 있고, 강에 투신해서 죽었다거나 혹은 도망쳐서 중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五言律詩의 정립에 공헌하였으며, 당대 관료들의 綺麗한 문풍에 반대했다. 지금 《駱臨海集》이 전한다. 《唐詩三百首》에 수록된 작품으로 〈在獄詠蟬〉이 있다.

당시삼백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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