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2望仙臺 :
《太平寰宇記》에 “하남도 섬주 섬현의 망선대는 縣 서남쪽 13리 지점에 있다. 漢 文帝가 대를 쌓아 河上公을 바라보았다. 하상공이 이미 하늘로 올라갔기 때문에 이 대를 쌓아 그를 바라보면서 제사한 것이다.[河南道陝州陝縣 望仙臺在縣西南十三里 漢文帝築以望河上公 公旣上昇 故築此臺以望祭之]”라 하였다.
역주5高臺 :
곧 望仙臺이다. 전하는 말에 하상공이 한 문제에게 《老子》를 주고 떠나자, 한 문제가 높은 대를 지어 그를 바라보았다고 한다.
역주6三晉 :
春秋時代 말기 韓‧趙‧魏 三家가 晉을 나누어 각자 나라를 세웠는데, 이를 ‘三晉’이라 칭한다. 지금의 山西‧河南 및 河北 남쪽 지역이다.
역주7二陵 :
殽山에 남북으로 두 陵이 있는데, 函谷關 동쪽 끝에 있다. 지금의 河南省 洛寧縣 북쪽이다. 《左傳》 僖公 32年에 “효산에 두 능이 있는데, 南陵은 夏后 皐의 묘이고, 北陵은 文王이 비바람을 피한 곳이다.[殽有二陵焉 其南陵夏后皐之墓也 其北陵文王之所辟風雨也]”라고 하였다.
역주8關門令尹 :
함곡관의 關門令인 尹喜를 가리킨다. 尹喜는 天文을 잘 관측하였다. 한번은 함곡관 위에 紫氣가 뻗쳐 있는 것을 보고는 반드시 眞人이 그곳을 지나갈 줄을 미리 알고서 기다렸는데, 과연 靑牛를 탄 老子가 그곳에 지나가므로 노자에게 제자의 禮를 갖추고 글을 지어주기를 부탁하여 노자로부터 五千餘言의 《道德經》을 받았다. 윤희 또한 그를 따라 서쪽으로 갔다고 한다.
역주9河上仙翁 :
河上公이다. 《神仙傳》의 기록에 의하면, 河上翁은 漢 文帝 때 물가에 草庵을 짓고 살았다. 文帝가 《老子》를 읽다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사람을 보내어 묻게 하자 “道는 높고 德은 귀하니 멀리서 물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란 대답이 돌아왔다. 文帝는 그의 초옥으로 친히 거둥하여 “온 천하에 왕과 신하 아닌 이가 없거늘 스스로 굽히지 않는다면 너무 自高한 것 아닌가?”라고 묻자, 하상공은 한참을 허공에 떠 있으면서 말하였다. “나는 위로는 하늘에 이르지 못하고, 가운데로는 인간에 이르지 못하며, 아래로는 땅에 이르지 못하니 어찌 신하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문제가 곧 수레에서 내려 머리를 조아리니, 하상공이 《素書》 1권을 주었다.
역주10彭澤宰 :
晉나라 陶淵明이 일찍이 彭澤令을 지냈는데 훗날 사직하고 돌아가 은거하였다. 《南史》 〈隱逸傳〉에 “도잠의 字는 淵明이다. 팽택령이었을 때 印綬를 풀고 관직을 버렸다. 한번은 9월 9일인데 술이 없어서 밖으로 나가 집 주변 국화꽃 떨기 속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王宏이 보내온 술이 도착한 것을 받아서는 곧바로 마시기 시작하여 취한 후에야 집으로 돌아갔다.[陶潛字淵明 爲彭澤令 解印綬去職 嘗九月九日無酒 出宅邊菊叢中坐久之 逢王宏送酒至 卽便就酌 醉而後歸]”고 하였다.
역주11菊花杯 :
菊花酒이다. 《西京雜記》에 “국화가 필 때 줄기와 잎을 모두 따서 기장쌀과 섞어 술을 빚는데 다음해 9월 9일이 되면 비로소 익어 먹을 수 있다. 그래서 국화주라 부른다.[菊花舒時 幷採莖葉 雜黍米釀之 至來年九月九日始熟 就飮焉 故謂之菊花酒]”는 기록이 있다. 《荊楚歲時記》에는 “9월 9일에 茱萸를 차고 쑥떡을 먹으며 국화주를 마시니 사람을 장수하게 한다.[九月九日 佩茱萸 食蓬餌 飮菊花酒 令人長壽]”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