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唐詩三百首(2)

당시삼백수(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시삼백수(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呈劉容〉
〈九日 望仙臺에 올라 明府 劉容에게 바치다〉
崔曙
최서
漢나라 文皇帝가 만든 높은 누대
此日登臨曙色開
오늘 올라보니 새벽이 열리는 때라
雲山皆北向
三晉의 雲山은 모두 북으로 향해 있고
風雨自東來
二陵의 風雨는 동쪽에서 몰려온다
誰能識
關門令 尹喜를 누가 알아보리오
去不回
물가의 仙翁은 떠난 후 돌아오지 않았네
且欲近尋
우선은 가까이에서 彭澤令을 찾아
陶然共醉
거나하게 국화주 마시며 함께 취하려 하네
[通釋] 漢 文帝가 일찍이 지어놓은 望仙臺에 오늘 내가 올라보니 막 새벽이 열리려는 때이다. 三晉 일대의 구름 낀 산은 모두 북쪽을 향해 있고, 함곡관의 비바람은 동쪽에서 몰려온다. 지금 누가 至道에 통달하였던 關門令 尹喜 같은 사람을 알아보겠는가. 河上公도 한번 가버리고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내 차라리 가까이에서 팽택령을 지냈던 도연명 같은 이를 찾을 것이니, 그와 함께 국화주 마시며 거나하게 취해보리라.
[解題] 重陽節에 登高하여 친구에게 痛飮하기를 청하는 시인데, 내용이 상투적이지 않고 이 시만의 특색을 지니고 있다. 시 전체에 隱逸의 사상이 있어 遊仙詩에 가깝다. 劉容은 生平이 자세하지 않다. 首聯에서는 詩題를 드러냈고, 頷聯에서는 望仙臺에 올라 바라본 形勢와 景物을 묘사하였다. 頸聯에서는 함곡관을 통하여 老子와 尹喜가 關 서쪽으로 나가서 신선이 된 일을 연상하였고, 또한 河上公이 羽化登仙했던 일에 생각이 미쳤다. 그들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도 지금은 만나볼 수 없기에, 末聯에서 도연명으로 끝을 맺어 劉明府에게 함께 국화주를 마시자고 청한 것이다. 전환이 자연스러우면서 동시에 한 호흡으로 전체를 관통하여 筆力이 有餘하다고 평가되는 작품이다.
조선 후기 金昌翕의 《三淵集拾遺》 卷25 〈靜觀齋先生言行錄〉에 “시골에 사는 萬戶 邊氏가 매를 뒷산에 풀고 선생께 한번 보기를 요청하니, 선생은 웃으며 좋다고 대답하였다.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어서 나오니, 門人들도 그를 따랐다. 두 차례 매를 풀자 앞 숲에서 꿩이 날아올랐다. 바야흐로 서리가 내려 가을기운이 맑고 낙엽이 쓸쓸히 지는 때라, 선생은 배회하며 이리저리 둘러보고 지팡이에 기대어 소리 높여 시를 읊었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唐人의 시 ‘漢文皇帝有高臺’였다.[村人邊萬戶者 放鷹後岡 要先生一看 先生笑應曰可 携杖緩步而出 門人亦隨之 放鷹兩次 雉起于前林 時霜秋氣淸 落木蕭瑟 先生徘徊遊目 倚杖高詠 竊聽所詠 乃唐人詩漢文皇帝有高臺也]”라는 기록이 있어, 최서의 이 시가 애독되었음을 보여준다.
[集評]○ 一氣轉合 就題有法 - 淸 沈德潛, 《唐詩別裁集》
[集評]○ 한 호흡으로 전환하고 합해지니, 포착하여 시를 짓는 데 법이 있다.
역주
역주1 九日 : 음력 9월 9일 重陽節을 가리킨다.
역주2 望仙臺 : 《太平寰宇記》에 “하남도 섬주 섬현의 망선대는 縣 서남쪽 13리 지점에 있다. 漢 文帝가 대를 쌓아 河上公을 바라보았다. 하상공이 이미 하늘로 올라갔기 때문에 이 대를 쌓아 그를 바라보면서 제사한 것이다.[河南道陝州陝縣 望仙臺在縣西南十三里 漢文帝築以望河上公 公旣上昇 故築此臺以望祭之]”라 하였다.
역주3 明府 : 縣令에 대한 존칭이다.
역주4 漢文皇帝 : 漢 文帝인데, 道家의 典籍을 숭상했다.
역주5 高臺 : 곧 望仙臺이다. 전하는 말에 하상공이 한 문제에게 《老子》를 주고 떠나자, 한 문제가 높은 대를 지어 그를 바라보았다고 한다.
역주6 三晉 : 春秋時代 말기 韓‧趙‧魏 三家가 晉을 나누어 각자 나라를 세웠는데, 이를 ‘三晉’이라 칭한다. 지금의 山西‧河南 및 河北 남쪽 지역이다.
역주7 二陵 : 殽山에 남북으로 두 陵이 있는데, 函谷關 동쪽 끝에 있다. 지금의 河南省 洛寧縣 북쪽이다. 《左傳》 僖公 32年에 “효산에 두 능이 있는데, 南陵은 夏后 皐의 묘이고, 北陵은 文王이 비바람을 피한 곳이다.[殽有二陵焉 其南陵夏后皐之墓也 其北陵文王之所辟風雨也]”라고 하였다.
역주8 關門令尹 : 함곡관의 關門令인 尹喜를 가리킨다. 尹喜는 天文을 잘 관측하였다. 한번은 함곡관 위에 紫氣가 뻗쳐 있는 것을 보고는 반드시 眞人이 그곳을 지나갈 줄을 미리 알고서 기다렸는데, 과연 靑牛를 탄 老子가 그곳에 지나가므로 노자에게 제자의 禮를 갖추고 글을 지어주기를 부탁하여 노자로부터 五千餘言의 《道德經》을 받았다. 윤희 또한 그를 따라 서쪽으로 갔다고 한다.
역주9 河上仙翁 : 河上公이다. 《神仙傳》의 기록에 의하면, 河上翁은 漢 文帝 때 물가에 草庵을 짓고 살았다. 文帝가 《老子》를 읽다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사람을 보내어 묻게 하자 “道는 높고 德은 귀하니 멀리서 물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란 대답이 돌아왔다. 文帝는 그의 초옥으로 친히 거둥하여 “온 천하에 왕과 신하 아닌 이가 없거늘 스스로 굽히지 않는다면 너무 自高한 것 아닌가?”라고 묻자, 하상공은 한참을 허공에 떠 있으면서 말하였다. “나는 위로는 하늘에 이르지 못하고, 가운데로는 인간에 이르지 못하며, 아래로는 땅에 이르지 못하니 어찌 신하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문제가 곧 수레에서 내려 머리를 조아리니, 하상공이 《素書》 1권을 주었다.
역주10 彭澤宰 : 晉나라 陶淵明이 일찍이 彭澤令을 지냈는데 훗날 사직하고 돌아가 은거하였다. 《南史》 〈隱逸傳〉에 “도잠의 字는 淵明이다. 팽택령이었을 때 印綬를 풀고 관직을 버렸다. 한번은 9월 9일인데 술이 없어서 밖으로 나가 집 주변 국화꽃 떨기 속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王宏이 보내온 술이 도착한 것을 받아서는 곧바로 마시기 시작하여 취한 후에야 집으로 돌아갔다.[陶潛字淵明 爲彭澤令 解印綬去職 嘗九月九日無酒 出宅邊菊叢中坐久之 逢王宏送酒至 卽便就酌 醉而後歸]”고 하였다.
역주11 菊花杯 : 菊花酒이다. 《西京雜記》에 “국화가 필 때 줄기와 잎을 모두 따서 기장쌀과 섞어 술을 빚는데 다음해 9월 9일이 되면 비로소 익어 먹을 수 있다. 그래서 국화주라 부른다.[菊花舒時 幷採莖葉 雜黍米釀之 至來年九月九日始熟 就飮焉 故謂之菊花酒]”는 기록이 있다. 《荊楚歲時記》에는 “9월 9일에 茱萸를 차고 쑥떡을 먹으며 국화주를 마시니 사람을 장수하게 한다.[九月九日 佩茱萸 食蓬餌 飮菊花酒 令人長壽]”라 하였다.
동영상 재생
1 174 구일등망선대 … 171

당시삼백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