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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1)

당시삼백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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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石〉
〈산석〉
韓愈
한유
山石行徑微
산의 바위는 험준하고 가는 길 좁은데
黃昏到寺蝙蝠飛
황혼에 절에 이르니 박쥐들이 날아다니네
升堂坐階新雨足
法堂에 올라 섬돌에 앉으니 방금 내린 비 넉넉하여
芭蕉葉大梔子肥
파초 잎은 커지고 치자 꽃은 살이 쪘네
僧言古壁佛畫好
스님이 오래된 벽의 佛畫가 좋다고 말하기에
來照所見
등불 들고 와 비춰보니 보기 드문 그림이라
鋪牀拂席置羹飯
상 펴고 자리 털어 국과 밥을 차렸는데
疏糲亦足飽我飢
거친 밥이지만 또한 虛飢를 채우기에 넉넉하다
夜深靜臥
밤 깊어 조용히 자리에 드니 벌레소리 끊기고
淸月出嶺光入扉
청명한 달은 고개 위로 솟아 사립문에 비춰든다
天明獨去
날이 밝자 혼자 떠나니 길을 찾지 못하여
出入高下
높고 낮은 언덕길 오르내리며 雲霧자욱한 길 두루 다니네
山紅澗碧紛
붉은 산 푸른 시내 현란한 색깔인데
時見松櫪皆十圍
때때로 보이는 소나무와 상수리나무 열 아름이나 되네
當流赤足蹋澗石
시내를 만나면 맨발로 개울돌 밟고 건너니
水聲激激風
물소리는 콸콸, 옷에서는 바람이 이네
人生如此自可樂
인생이 이만하면 즐길 만하니
豈必爲人
어찌 반드시 구속되어 남에게 얽매일까
애닯구나 동행하는 우리 친구들이여
安得至老不更歸
어찌하여 다 늙도록 돌아가지 못하는가
[通釋] 산의 바위는 험준하여 울퉁불퉁 고르지 못한 모습이고 산길 역시 매우 좁은데, 황혼무렵 절에 다다르니 박쥐들이 날아다닌다. 法堂에 올라 섬돌에 앉아있으려니 방금 전 흠뻑 비가 내려 파초 잎도 커지고 치자 꽃도 무성해졌다. 절의 스님이 오래된 벽의 佛畫가 좋다고 하기에 등불을 들고 와서 비춰보니 과연 세상에서 보기 드문 그림이다. 상을 펴고 앉을 자리를 턴 다음 스님이 국과 밥을 차려 내오는데, 거친 밥이지만 주려있는 나의 배를 채우기에는 충분하다. 밤이 깊어지자 침상에 조용히 누웠는데 이때 모든 벌레는 울음소리를 멈추었고, 청명한 달이 고개 너머로 떠올라 그 빛이 사립문에 비춰든다. 이른 아침 홀로 떠남에 길은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여 분간하기 어렵고, 굽이굽이 들어갔다 나왔다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며 구름 안개 낀 산길을 두루 다닌다. 산은 붉고 시내는 푸른데 햇볕이 사방에서 내리쬐어 그 빛깔은 더욱 현란하다. 때때로 보이는 소나무와 상수리나무는 그 크기가 열 아름이나 될 만큼 장대하다. 흐르는 물속에 발을 담근 채 물 속의 돌들을 밟는데, 콸콸 물 흐르는 소리 들리고 미풍이 불어와 옷깃을 날린다. 인생이 이만하다면 즐길만하니 굳이 구속되어 다른 이의 굴레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나와 뜻을 함께 하는 친구들이여. 어째서 늙어서까지도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가.
[解題] 이는 貞元 17년(801) 韓愈가 徐州에서 洛陽으로 오는 도중 惠林寺라는 절을 둘러보고 쓴 시이다. 그는 해질녘에 절에 도착하여 밤에 留宿하고 날이 밝자 홀로 다시 여정을 떠나면서 목격한 주위의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묘사하였는데, 이를 통해 자신이 평소 지니고 있던 한적한 생활에 대한 동경과 仕宦 생활에 대한 불평한 심기를 표출하기도 하였다.
이 시의 제목인 〈山石〉은 시구 가운데 몇 자를 취하여 제목으로 삼는 방식을 따른 것이다. 시의 내용은 주로 山寺를 유람하는 정경을 묘사한 것이지만, 그 가운데 내포된 主旨는 ‘人生如此自可樂 豈必局束爲人鞿’라는 시구 속에 담겨 있다.
시 전체는 의미상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처음의 네 구는 초여름 황혼 무렵에 한차례 비가 지나간 후, 그림처럼 펼쳐진 절 풍경을 묘사한 것이다. 중간의 여섯 구는 밤에 절에서 留宿하며 경험한 초여름 밤의 청명한 情景을 묘사하였다. 마지막 열 구는 절을 나온 후 주변의 自然景色을 묘사하였는데, 강렬한 색채 대비 등을 통해 그 묘미를 더하기도 하였다. 흐르는 물에서 濯足하면서 自然을 몸소 느끼는 가운데, 인생의 樂을 찾는다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集評] ○ 退之七言詩 如穎師琴雉帶箭之類 巧追精琢斤斧 無憾然
[集評] 韓退之의 七言詩에 〈穎師琴〉과 〈雉帶箭〉 같은 부류는, 공교하게 다듬어지고 정밀하게 닦여져서 조금도 유감이 없다고 하겠다.
其不犯手勢陶鑄自成者 其有山石一篇
그러나 그 공력을 들이지 않고 자연적으로 이뤄진 것은 오직 山石 한 편뿐이다.
自頭至終 只如山行日記 隨遇寫出 而筆力雄渾 不見罅縫 惟能者能之 而不可學得也

이 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山行日記처럼 만나는 바에 따라 써낸 것인데, 필력이 雄渾해서 결함이나 수식한 흔적이 보이지 않으니, 오직 능한 자만이 할 수 있을 뿐, 배워서 될 수는 없는 것이다.
後來元之元好問 知此意曰 拈出退之山石句 始知渠是女郞詩 盖知言矣 - 朝鮮 李瀷, 《星湖僿說》 卷29, 〈詩文門‧退之山石句〉
뒤에 와서 元나라 元好問이 이 뜻을 알고서, [拈出退之山石句 始知渠是女郞詩]”라고 하였으니, 대개 아는 말이라 하겠다.
○ 山石詩最淸峻 - 宋 黃震, 《黃氏日鈔》 卷59
〈山石〉 詩는 가장 淸峻하다.
○ 山石是宿寺後補作
〈山石〉은 절에 머문 후 보충해서 지은 작품이다.
以首二字山石標題 此古人通例也
첫 구의 ‘山石’ 두 글자로 표제를 삼은 것은 옛 사람들의 통례이다.
山石四句 到寺卽景 僧言四句 到寺後卽事
‘山石’ 4구는 절에 이르러 卽景(눈앞의 경물)을 읊은 것이요, ‘僧言’ 4구는 절에 이른 후에 卽事(눈앞의 일)를 읊은 것이다.
夜深二句 宿寺寫景 天明六句 出寺寫景
‘夜深’ 2구는 절에 묵으며 寫景(경치를 묘사)한 것이며, ‘天明’ 6구는 절에서 나와 寫景한 것이다.
人生四句 寫懷結
‘人生’ 4구는 심회를 묘사하면서 맺은 것이다.
通體寫景處句多濃麗 卽事寫懷 以談語出之
시 전체를 통해 寫景한 부분은 농려함이 많고, ‘卽事’와 심회를 풀어낸 부분은 담담한 어조로 드러내었다.
濃淡相間 純住自然 似不經意 以實極經意之作也 - 淸 汪佑南, 《山經草堂詩話》
농려하고 담담한 사이에 순전히 자연스러운 것을 주로 하였으니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듯하지만 기실 매우 주의를 기울인 작품이다.
역주
역주1 犖确 : 산의 바위들이 험준하고 울퉁불퉁하여 고르지 못한 모양이다.
역주2 : 여기서는 등불[燈火]을 가리킨다.
역주3 : ‘稀少하다’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佛畫가 매우 훌륭하여 보기 드물다는 의미가 된다. 한편 ‘모호하다’ 혹은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라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역주4 百蟲絶 : 벌레 울음소리가 모두 멈추었다는 뜻이다.
역주5 無道路 : 이른 아침에 낀 안개로 인해 길을 분간할 수 없음을 이른다.
역주6 窮煙霏 : 雲霧가 자욱한 산길을 두루 다녔다는 의미이다.
역주7 爛漫 : 햇볕이 사방에서 내려쬐어 색채가 현란한 모습이다.
역주8 : ‘吹’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9 局束 : 구속받는다는 뜻이다. ‘局促’이라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10 : 본래는 말에 메는 굴레 혹은 재갈인데, 여기서는 ‘얽매인다’는 뜻이다.
역주11 吾黨二三子 : 자신과 志趣가 서로 들어맞는 친구들이다. 《韓昌黎集外集》 〈洛北惠林寺題名〉에, “韓愈, 李景興, 侯喜, 尉遲汾이 貞元 17年 7月 22日 溫落에서 고기를 잡고 이곳에서 묵다가 돌아갔다.”라 하였고, 〈贈侯喜〉에 ‘晡時堅坐到黃昏’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黃昏到寺蝙蝠飛’라는 구절과 같은 景物이므로 시에서 지칭하는 二三子는 바로 이경흥과 후희, 위지분 등임을 알 수 있다.
역주12 한퇴지의……알겠네 : 女郞의 시란 곧 여인같이 온순한 풍의 시를 뜻한다. 元나라 때 시인인 元好文의 〈論詩絶句〉에, “宋나라 秦觀의 시에 ‘정이 있는 작약은 봄 눈물을 머금었고 기력 없는 장미는 저녁 가지에 누웠다.’라고 하였는데, 한퇴지의 〈산석〉시를 뽑아 내니, 이것이 여랑의 시임을 비로소 알겠다.[有情芍藥含春淚 無力薔薇臥晩枝 拈出退之山石句 始知渠女郞詩]”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즉 송나라 秦觀의 시를 한퇴지의 〈산석〉시와 비교해 보면 한퇴지의 시는 장부에 해당하고, 진관의 시는 여랑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韓昌黎集 卷3》
참고자료
[참고자료] 정약용의 《다산시문집》 제6권 〈삼월이십칠일승소접부충주주중잡음三月二十七日乘小艓赴忠州舟中雜吟〉에, “모르겠노라 산석山石의 글귀가, 어찌 여랑의 시와 같겠는가.[未知山石句 何似女郞詩]”라는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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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66 산석 446

당시삼백수(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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