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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3)

당시삼백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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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居易(772~846)
字는 樂天이며, 號는 醉吟先生‧香山居士이다. 洛陽 부근의 新鄭에서 출생하였다. 李白이 죽은 지 10년, 杜甫가 죽은 지 2년 후에 태어났으며, 동시대의 韓愈와 더불어 ‘李杜韓白’으로 병칭된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5세 때부터 시 짓는 법을 배웠으며, 15세가 지나자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하였다고 한다. 대대로 가난한 관리 집안에 태어났으나, 貞元 16년(800) 29세로 進士에 급제하였고, 32세에 황제의 親試에 합격하였으며 그 무렵 지은 〈長恨歌〉가 유명하다.
元和 2년(807) 36세로 한림학사가 되었고, 이듬해에 左拾遺가 되어 유교적 이상주의의 입장에서 정치‧사회의 결함을 비판하는 작품을 썼다. 〈新樂府〉 50수는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원화 6년 40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이듬해에 어린 딸마저 잃자 인생에 있어 죽음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불교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원화 9년 태자 左贊善太夫에 임용되었으나 일찍이 사회를 비판하는 그의 詩歌의 대상이 되었던 관료들의 반감을 사 九江의 司馬로 좌천되었다. 그곳에서 〈琵琶行〉(816)을 지었다. 원화 13년 忠州刺史가 되었으며 임기를 마치고 長安에 돌아오자 권력 다툼을 피해 長慶 2년(822) 자진해서 杭州刺史가 되었다. 杭州의 風光에 촉발되어 詩作하는 가운데 문학적 知己로서 元稹과 만나게 되어 《白氏長慶集》을 편집하였다.
太和 3년(829) 58세가 되던 해 洛陽에 영주하기로 결심, 太子補導官이라는 명목만의 직책에 있으면서 시와 술과 거문고를 三友로 삼아 ‘醉吟先生’이란 호를 쓰며 유유자적했다. 태화 5년 원진 등 옛 친구들이 세상을 떠나자 洛陽 교외 龍門의 여러 절을 자주 찾았고, 그곳 香山寺를 보수 복원하여 ‘香山居士’라는 호를 쓰며 불교로 기울어졌다. 그 뒤 정부의 불교탄압정책을 풍자하는 작품을 통해서 자기 시대의 종말을 예감하고 인생의 마무리로써 75권의 전집을 編定, 그것이 완성된 이듬해 생애를 마쳤다.
긴 생애 동안에 그의 문학은 자주 변모하였지만 그 속에 일관하고 있던 것은, 문학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며 생활의식이나 생활감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각이었다. 그에 따라 ‘流麗平易’한 문학의 폭을 넓혀 一代를 통해 두드러진 개성을 형성하였다.
생존시에 이미 그의 시는 민중 속에 파고들었으며 멀리 외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의 시는 신라시대에도 일찍부터 전해져 널리 애송되었으며 일본에서 그의 영향은 압도적이다.
저서로 《白氏文集》이 전하며 작품 수는 3,800여 수에 이른다. 《唐詩三百首》에는 〈長恨歌〉, 〈琵琶行 幷序〉, 〈賦得古原草送別〉, 〈自河南經亂 關內阻飢 兄弟離散 各在一處 因望月有感 聊書所懷 寄上浮梁大兄 于潛七兄 烏江十五兄 兼示符離及下邽弟妹〉, 〈問劉十九〉, 〈后宮詞〉 등 모두 6수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당시삼백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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