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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2)

당시삼백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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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
〈香積寺를 지나며〉
王維
왕유
不知香積寺
향적사가 어디인지 모르면서
數里入雲峰
구름 봉우리 속으로 몇 리를 들어간다
古木無人徑
고목 사이에 사람이 다니는 길은 없는데
深山何處鐘
깊은 산 어디선가 종소리 들려온다
泉聲咽
샘물 소리는 가파른 바위에서 목메어 울고
日色冷靑松
햇살의 빛은 푸른 소나무를 차갑게 비춘다
薄暮空潭曲
어스름 저녁, 텅 빈 못 굽이에서
禪定에 들어 毒龍을 제어한다
[通釋] 향적사가 어디 있는지 모르면서 구름 봉우리 속으로 몇 리를 들어가니, 고목이 무성하여 사람이 다니던 길은 보이지 않건만, 깊은 산 어디선가 절의 종소리가 들려온다. 길을 가다 만난 샘물은 가파른 바위 사이에서 목메어 울 듯 소리를 내고, 햇살은 푸른 소나무를 차갑게 비추고 있다. 해질 무렵, 텅 빈 못 굽이에 앉아 있자니 禪定에 들어 마치 毒龍을 복종시키듯 마음의 욕망이 사라진다.
[解題] 이 작품은 독특한 회화적 구성과 禪趣가 절묘하게 결합된, 왕유의 대표작이다. 향적사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다만 淸淨하고 幽深한 外景을 통하여 향적사의 정취를 암시적으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산수자연의 아름다움과 禪的 정취를 내용은 물론 표현 방식에 있어서도 일치시킨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情景交融의 오묘한 경지를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를 받는다.
[集評]○ 成按此篇 起句極超忽
[集評]○ 내가 이 시편을 살펴보니, 起句가 극히 高妙하다.
謂初不知山中有寺也 迨深入雲峰 於古木森叢人蹤罕到之區 忽聞鐘聲而始知之
처음에 산속에 山寺가 있는지 모른다고 하였는데, 구름에 덮인 산속 깊이 들어가 고목이 빽빽이 얽혀 있어 사람의 자취가 이르지 않은 구역에 이르러서야 홀연히 종소리를 듣고 비로소 산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四句一氣盤旋 滅盡針線之跡 自非盛唐高手 未易多覯
4구가 한 기운으로 연결되어 있어 針線의 자취가 모두 사라져 보이지 않으니, 盛唐의 高手가 아니라면 쉽게 볼 수 없는 것이다.
泉聲二句 深山恒境 每每如此 下一咽字 則幽靜之狀 恍然 著一冷字 則深僻之景 若見
‘泉聲’ 2구는 깊은 산에 있는 일상적 세계로서 어디나 이와 같을텐데, ‘咽’ 한 글자를 놓으니 幽靜한 形狀이 오묘해지고, ‘冷’ 한 글자를 붙이니 深僻한 경치가 눈에 보이는 듯하다.
昔人所謂詩眼 是矣
옛사람이 말하는 詩眼이 이것이다.
或謂上一句喩心境之空靈動宕 下一句喩心境之恬憺淸涼 則未免求深反謬耳
혹 위의 一句가 심경의 空靈動宕함을 비유한 것이며, 아래 一句는 심경의 恬憺淸涼함을 비유한 것이라고 한다면, 심오함을 구하려다 반대로 오류에 빠짐을 면치 못한 것이다.
毒龍宜作妄心
毒龍은 마땅히 妄心이 되어야 한다.
譬喩猶所謂心馬情猴者 若會意作降龍 實事用失其解矣 - 淸 趙殿成, 《王右丞集箋注》 卷7
비유하는 바가 소위 ‘’라는 것과 같지만 만약 용을 항복시키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실제의 일로 잘못 이해한 것이 된다.
○ 周弼曰 五言律 其中四句 須前聯情而虛 後聯景而實
○ 周弼이 말하기를 “오언율시에 있어서 중간 네 구의 앞 聯은 情을 그려서 虛가 되고 뒤 聯은 景을 그려서 實이 되어야 한다.
實則氣勢雄健 虛則態度諧婉 輕前重後 劑量適均 無塞窒輕餒之患
實하면 기세가 웅건하고 虛하면 형태가 조화롭게 되어 앞은 가볍고 뒤는 무거워 균형이 맞아 막히거나 가볍게 될 우려가 없게 된다.”고 하였다.
如王維過香積寺詩 古木無人逕 深山何處鐘 泉聲咽危石 日色冷靑松 前聯虛後聯實也 宗唐詩者 多尙此體
예컨대 王維의 〈過香積寺〉 시의 ‘古木無人逕……日色冷靑松’은 앞 연이 虛가 되고 뒤 연이 實이 되어 唐詩를 法으로 삼는 자들은 모두 이 體를 따른다.
若前聯景而實 後聯情而虛 前重後輕 多流於弱
만약 앞 연이 景을 그려서 實이 되고 뒤 연이 情을 그려서 虛가 된다면 앞이 무겁고 뒤가 가벼워 대부분 허약함으로 흐르게 된다.
蓋發興盡 則難於繼矣 - 淸 蔡鈞, 《詩法指南》 卷1
대개 興이 發했던 것이 사라지면 계속 이어나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역주
역주1 香積寺 : 당나라 때 건립된 사찰로, 현재 陝西省 西安市 남쪽에 터가 남아 있다. 《大淸一統志》 卷180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향적사는 長安縣 남쪽 神禾原 부근에 있다. 《長安志》에는 ‘開利寺가 현의 남쪽 30리 皇甫村에 있는데 당나라 때의 향적사이다. 永隆 2년(618)에 건축하였으며 송나라 太平興國 3년(978)에 개명했다.’ 하였다.[在長安縣南神禾原上 長安志開利寺 在縣南三十里皇甫村 唐香積寺也 永隆二年建 宋太平興國三年改]”
역주2 危石 : 높고 큰 암석을 뜻한다.
역주3 安禪制毒龍 : ‘安禪’은 심신이 평안하게 선정에 들어감을 말한다. ‘毒龍’은 佛家에서 佛法에 대항한 괴물을 지칭하는데, 후에 욕망이나 망념을 상징하는 개념으로 쓰였다. 楊愼의 《藝林伐山》 〈譬喩經〉에 “五根[불가에서 눈, 귀, 코, 혀 몸 등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지칭하는 용어로 이것이 인간이 욕망을 추구하게 되는 근본임을 뜻한다.]의 禍는 독룡보다 심하다.[五根之禍 劇於毒龍]”라고 하였다.
역주4 心馬情猴 : 마음이 말처럼 내달리고 원숭이처럼 안절부절못함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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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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