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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3)

당시삼백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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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遣懷〉
杜牧
載酒行
[集評]○ 牧之遣懷詩 余嘗疑此詩必有謂而作
因閱芝田錄
牛奇章帥維揚時 牧之在幕中 多微服逸游于外
公聞之 乃以街子數輩 潛隨牧之 以防不虞
後牧之以拾遺召 臨別 公因以縱逸爲戒 牧之始猶諱之
公乃命取一篋以示 皆街子輩報帖 云杜書記平善
乃大感服
方知牧之此詩 言當日逸游之事耳 - 宋 胡仔, 《苕溪漁隱叢話後集》
○ 此詩着眼在薄倖二字
而揚郡名都 十年久客 纖腰麗質 所見者多矣 而無一眞賞者 不怨靑樓之萍絮無情 而反躬自嗟其薄倖
非特懺除綺帳 亦詩人忠厚之旨 - 現代 兪陛雲, 《詩境淺說》
○ 才人不得見重於時之意 發爲此詩
讀來但見其傲兀不平之態
世稱杜牧詩情豪邁 又謂其不爲齪齪小謹 卽此等詩可見其槪 - 現代 劉永濟, 《唐人絶句精華》
○ 這是牧之繁華夢醒 懺悔艶游的詩
全唐詩話謂 杜牧不拘細行
吳武陵見此詩 卽以阿房宮賦薦于崔郾 牧卽登第
首句是追敍到揚州 二句是指揚州妓女
三句十年言留戀美色之久 至今始覺其非
四句卽承一意反結
十年艶游 所贏者只靑樓薄幸之名 則其他所輸者可想而知
言下滿露悔恨之意 亦卽佛家所謂之意
才子之筆可以感人
毋怪吳公見此詩 卽予以薦引 - 現代 兪守眞, 《唐詩三百首詳析》


〈심회를 풀다〉
두목
강호에서 실의한 채 술 지고 다니던 때
낭창한 가는 허리 손바닥에서 춤출 만큼 가벼웠지
꿈결 같은 양주생활 십 년 만에 깨어보니
靑樓에서 겨우 얻은 건 박정한 사람이란 별명
[集評]○ 杜牧之(杜牧)의 〈遣懷〉 시는 내가 언젠가 이 시는 필시 사연이 있어서 지은 것이 아닐까 의아해한 적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芝田錄》을 읽다 보니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었다.
“牛奇章(牛僧孺)이 維揚을 다스릴 때 두목이 그의 막부에 있으면서 밤이면 으레 微服을 하고 밖으로 놀러 다녔다.
牛公이 이를 듣고 街卒들 몇을 시켜 몰래 두목을 따라다니면서 뜻밖의 봉변을 막도록 하였다.
뒤에 두목이 拾遺를 제수받고 조정에 불려 갈 때 이별하는 자리에서 牛公이 방종하게 놀지 말라고 경계하니, 두목이 처음에는 오히려 이 말을 피하였다.
이에 牛公이 상자 하나를 가져오라 하여 보여주었는데, 모두 街卒들이 보고한 문서로 ‘杜書記는 무사하다.’라고 써 있었다.
두목은 이에 크게 감복했다.”
나는 그제야 두목의 이 시가 당시 즐겁게 놀던 때의 일을 말한 것임을 알았다.
○ 이 시는 ‘薄倖’ 두 글자에 착안하였다.
揚州는 이름난 도시로, 10년 동안 오래 나그네로 지내면서 가는 허리, 고운 형체를 가진 여자를 많이 보았지만, 참으로 歎賞할 만한 자가 없었는데도 부평초나 봄에 날리는 버들솜 같은 妓房의 無情함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에게 돌이켜 자신이 薄情하다고 스스로 탄식하였다.
〈청루에 드나들던〉 화려한 생활을 참회하며 지우는 것일 뿐만 아니라 시인의 忠厚한 뜻이기도 하다.
○ 재주 있는 사람이 한 시대에 중하게 쓰이지 않는다는 뜻이 이 시를 쓰게 하였다.
시를 읽으면 단지 오만하게 불평하는 모습만 보인다.
세상에서는 두목의 시를 ‘豪邁(호방하고 굳셈)하다.’고 하고 또 ‘그가 조심조심하며 작은 일에 삼가지 않았다.’고 하는데, 바로 이 시에서 그런 기개를 볼 수 있다.
○ 이 작품은 두목이 화려한 꿈에서 깨어 기생들과 놀았던 일을 참회하는 시이다.
《全唐詩話》에는 “두목이 자잘한 행동에 구애받지 않았다.
吳武陵이 이 시를 보고 바로 〈阿房宮賦〉를 崔郾에게 올려 두목이 곧장 과거에 급제했다.”고 하였다.
○ 첫 구는 揚州에 이르렀을 때를 추억하며 쓴 것이고, 2구는 揚州의 妓女를 가리킨 것이다.
3구의 ‘十年’은 미인과 사랑하며 머물렀던 오랜 시간을 말한 것이니,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그것이 잘못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4구는 윗구절을 바로 이어 돌이켜 맺은 것이다.
10년을 기생들과 놀고 얻은 것이 단지 ‘靑樓薄幸’이란 이름뿐이라면 그 밖에 들려올 말은 상상해 알 만하다.
言下(말하는 바로 그 자리)에 회한의 뜻이 가득 드러나며, 또한 불가의 이른바 ‘도살하는 칼을 놓아버린다.’는 것과 ‘머리만 돌리면 언덕’이라는 뜻이다.
○ 재주 있는 사람의 붓은 사람을 감동시킨다.
‘吳公이 이 시를 보고 바로 나를 추천했다.’해도 이상할 게 없다.


역주
역주1 落魄江湖 : ‘落拓江南’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杜牧이 젊었을 때 沈傳師의 洪州, 宣州 幕府에 있었고, 이어서 牛僧孺의 揚州 幕府에 있었으며, 후에는 또 崔鄲의 宣州 幕府에 있었다. 그러면서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것이 방랑하는 듯하므로 ‘落拓江南’이라고 한 것이다.
역주2 楚腰纖細掌中輕 : ‘楚腰’는 가는 허리[細腰]를 가리킨다. 《韓非子》 〈二柄〉에 “초나라 영왕이 가는 허리를 좋아해 나라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았다.[楚靈王好細腰 而國中多餓人]”는 말에서 온 것이다. ‘纖細’는 가는 허리 모양을 형용하는 말이다. ‘斷腸’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어, 애간장을 끊어놓을 만큼 아름다운 허리로 보기도 한다. ‘掌中輕’은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출 정도로 몸이 가볍다는 뜻으로, 漢나라 趙飛燕의 고사에서 왔다. 伶玄의 《趙飛燕外傳》에 “趙飛燕은 몸이 가벼워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출 수 있었다.[飛燕體輕 能爲掌上舞]”라는 기록이 보인다.
역주3 十年一覺揚州夢 : 10년 동안 성취한 것이 없음을 말한다. 실제로는 시인이 揚州에 머문 기간은 수년밖에 되지 않는데 여기서 10년이라 한 것은 洪州, 宣州 幕府 시절 揚州를 왕래하던 것까지 통틀어 말한 것이다. 당나라 때 揚州는 경제 문화가 번성한 도시여서 ‘揚州가 으뜸, 益州(成都)가 다음[揚一益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王建의 〈夜看揚州市〉 시에 “夜市의 수많은 등불 푸른 구름을 비추고, 높은 누각 붉은 소매 손님들 어지럽게 많구나.[夜市千燈照碧雲 高樓紅袖客紛紛]”라고 하였다.
역주4 贏得靑樓薄倖名 : ‘贏得’이 ‘占得’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靑樓’는 娼樓와 같은 말로 기생들이 있는 곳을 말한다. ‘薄倖’은 ‘薄情’이라는 말과 같다.
역주5 放下屠刀 回頭是岸 : 放下屠刀는 “屠刀만 놓아버리면 당장에 成佛할 수 있다.[放下屠刀 立地成佛]”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改過遷善의 빠름을 이른다. 屠刀는 짐승을 잡을 때 쓰는 칼인데, 여기서는 곧 집착을 말한다. 回頭是岸은 “고해는 끝이 없으나 머리만 돌리면 바로 거기가 언덕이다.[苦海無邊 回頭是岸]”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기왕의 허물을 뉘우치고 스스로 새로워질 것을 면려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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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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