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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3)

당시삼백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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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의항〉
劉禹錫
유우석
주작교 옆에 들풀이 꽃을 피웠는데
烏衣巷口夕陽斜
오의항 입구에는 석양이 비껴 있네
舊時堂前燕
옛날 왕도와 사안 집 앞에 날던 제비
이제는 평범한 백성의 집으로 날아드네
[通釋] 주작교 근처에는 들풀이 꽃을 활짝 피웠는데 오의항 입구에는 석양이 비껴 있는 것만이 보인다. 그 옛날 王導‧謝安 두 巨族의 집 앞에서 날던 제비가 지금은 일반 백성의 집으로 날아 들어간다.
[解題] 이 작품은 회고시로서 유우석의 〈金陵五題〉 가운데 하나이다. 〈금릉오제〉는 〈石頭城〉, 〈烏衣巷〉, 〈臺城〉, 〈生公講堂〉, 〈江令宅〉 다섯 수인데, 그 序에 이르기를 “내가 어려서 강남의 객이 되었는데 秣陵을 유람하지 못해 일찍이 餘恨이 있었다. 훗날 歷陽 태수가 되어 몹시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어떤 객이 〈금릉오제〉를 내게 보여주어 그때 생각이 떠오르면서 문득 깨친 바가 있었다. 훗날 친구 白樂天이 머리를 흔들며 苦心하고 읊조리며 한참을 歎賞하더니, 말하기를 ‘〈石頭〉 시에 「潮水는 빈 성을 때리고 적막하게 돌아가네.[潮打空城寂寞回]」라고 했는데, 후대의 시인들은 다시는 이런 구절을 지을 수 없으리라. 나머지 네 수는 이 시에 미치지 못하나 또한 고루하진 않다.’라고 하였다. 이는 낙천의 말일 뿐이다.” 하였다.
〈금릉오제〉에 관해서는 《古今詩話》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한 번은 元稹‧劉禹錫‧韋楚客 세 사람이 白居易의 집에 모여 이야기를 하다가 金陵懷古를 언급하였고, 이에 이를 詩題로 정하여 시를 짓게 되었다. 짧은 시간에 유우석이 시를 다 쓰자 백거이가 말하기를 “네 사람이 흑룡을 찾아 나섰는데 그대가 먼저 구슬을 얻었으니, 나머지 비늘과 물고기들은 어디에 쓰겠는가?” 하니, 나머지 사람들이 시 짓기를 그만두었다. 유우석의 〈금릉오제〉가 여의주를 얻은 작품이 되었고, 다른 사람들 작품은 다만 비늘 한 개, 발톱 하나를 얻었을 뿐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훗날 문단의 佳話가 되었다.
〈오의항〉 시는 암시법을 사용하였는바, 景語이면서 또한 情語이기도 하여 의미상 雙關을 이룬다. 앞의 두 구는 對句이면서 제목을 드러내었다. 오의항 근처 주작교는 東晉時代 왕도‧사안 두 巨族이 거주하던 곳으로, 당시에는 번화한 지역이었지만 오래지 않아 지금처럼 몰락해버렸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野草花’와 ‘夕陽斜’뿐이다. 뒤의 두 구는 예전의 왕도‧사안의 집 앞을 날던 제비가 지금은 평범한 백성의 집으로 날아 들어가는 것을 썼는데, 이는 왕도‧사안의 집안 자제들이 지금은 몰락하여 일반 백성이 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중의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이 시는 응축되고 단련된 시어를 사용하여 눈앞의 풍경을 통해 지난날을 회상하는 시인의 滄桑之感을 표현하였고, 世運의 無常함에 대한 감개를 기탁한 것으로 평가된다.
[集評]○ 王謝之第宅今皆變爲尋常百姓之室廬矣 乃云 舊時王謝堂前燕 飛入尋常百姓家 此風人遺韻 - 宋 謝枋得, 《唐詩絶句注解》
[集評]○ 王導‧謝安의 집은 지금 모두 일반 백성의 집으로 변하였다. 그래서 ‘舊時王謝堂前燕 飛入尋常百姓家’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시인의 遺韻이다.
○ 不言王謝堂爲百姓家 而借言於燕 正詩人托興玄妙處 - 明 唐汝詢, 《唐詩解》
○ 王導‧謝安의 집이 백성의 집이 되었다고 하지 않고 제비를 빌려 말하였으니, 바로 시인이 興을 기탁한 것이 玄妙한 부분이다.
○ 本意只言王侯第宅變爲百姓人家耳 如此措詞遣調 方可言詩 方是唐人之詩 - 淸 黃生, 《唐詩摘鈔》
○ 본뜻은 王侯의 집이 일반 백성의 집으로 변했다는 것을 말하려 했을 뿐인데, 이처럼 말을 고르고 곡조를 남겨야 ‘詩’라고 할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唐人의 詩이다.
○ 言王謝家成民居耳 用筆巧妙 此唐人三昧也 - 淸 沈德潛, 《唐詩別裁集》
○ 왕도‧사안의 집이 民家가 되었다고 말했을 뿐인데, 用筆이 巧妙하니 이것이 唐人의 奧義이다.
○ 若作燕子他去 便呆 蓋燕子仍入此堂 王謝零落 已化作尋常百姓矣 如此則感慨無窮 用筆極曲 - 淸 施補華, 《峴傭說詩》
○ 만일 제비가 다른 곳으로 갔다고 썼으면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제비가 여전히 이 집으로 들어간다고 했으니, 왕도‧사안이 영락하여 이미 평범한 백성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와 같으니 感慨가 무궁하고 用筆이 지극히 곡진하다.
○ 朱雀橋 烏衣巷 皆當日畫舸雕鞍 花月沈酣之地
○ 朱雀橋와 烏衣巷은 모두 당시에 아름답게 장식한 놀잇배와 아로새긴 안장이 지나다니고 꽃과 달 아래에서 술에 취하던 장소이다.
桑海幾經 剩有野草閑花 與夕陽相嫵媚耳
桑田碧海를 몇 번 거쳐서 남은 것은 들풀과 들꽃이 석양과 서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모습뿐이다.
茅簷白屋中 春來燕子 依舊營巢 憐此紅襟俊羽 卽昔時王謝堂前 杏梁棲宿者
띳집 처마에는 봄에 돌아온 제비가 예전처럼 둥지를 트는데, 이 붉은 가슴의 아름다운 새가 그 옛날 왕도‧사안의 집 앞 대들보에 살던 것이라는 사실이 가련하다.
對語呢喃 當亦有華屋山丘之感矣
그들이 지지배배 떠드는 소리를 듣자면 당연히 華屋이 산언덕으로 변해버린 격세지감도 느낄 것이다.
此作托思蒼涼 與石頭城詩 皆膾炙詞壇
이 작품은 기탁한 생각이 쓸쓸하여 〈石頭城〉과 함께 모두 詩壇에서 회자된다.
劉之金陵懷古詩中 尙有江令宅一首 遜此二詩也 - 現代 兪陛雲, 《詩境淺說》
劉禹錫의 〈金陵懷古〉 시 중에는 〈江令宅〉도 있지만 이 두 작품만은 못하다.
역주
역주1 烏衣巷 : 옛터가 지금의 江蘇省 南京市 秦淮河 남쪽에 있는데 朱雀橋와 가깝다. 본래는 三國時代 吳나라가 방비하던 곳으로 병사들이 모두 검은 옷[烏衣]을 입었기 때문에 이와 같이 칭해졌다 한다. 東晉時代 王導‧謝安 등이 이곳에서 살았으며, 謝鯤과 族子인 謝靈運 등도 이 동네에 살았다.
역주2 朱雀橋邊野草花 : ‘朱雀橋’는 일명 ‘朱雀航’이라고도 하는데 秦淮河 위에 있는 浮橋이다. 東晉 때 세워졌는데 옛터가 지금의 南京市 鎭淮橋 동쪽에 있다. 《六朝事跡編類》에 “晉 咸康 2년에 朱雀門을 만들고 朱雀浮航을 새로 건립했다. 縣城의 동남쪽 4리 되는 곳에 있는데 朱雀門을 마주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淮水에 닿아 있어 또한 朱雀橋라 명명한 것이다.[晉咸康二年作朱雀門 新立朱雀浮航 在縣城東南四里 對朱雀門 南渡淮水 亦名朱雀橋]”라고 하였다. ‘花’는 동사로 꽃이 피었다는 뜻이다.
역주3 王謝 : 즉 王導와 謝安 두 집안을 가리킨다.
역주4 尋常百姓家 : 일반 백성의 집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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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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