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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3)

당시삼백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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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昌齡(689?~756)
江寧人으로 字는 少伯이다. 개원 15년(727), 진사에 급제하여 秘書省校書郞이 되었고, 개원 22년(734) 博學宏詞의 시험에 합격하여 氾水尉가 되었다가 嶺南으로 귀양을 갔다. 개원 28년(740)에는 江寧丞에 부임하였다가 龍標尉로 좌천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하여 왕강령, 왕용표라고 칭해진다. 安祿山의 난이 일어나자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濠洲를 지나다가 刺史 閭丘曉에게 살해되었다.
시로 명성이 높아 ‘詩歌天子’라는 칭송을 들었으며, 칠언절구에 있어서는 이백과 더불어 쌍벽을 이룬 것으로 평가받는다. 여인의 사랑의 비탄을 노래한 〈長信秋〉 〈閨怨〉과 변경의 풍물과 병사의 향수를 노래한 〈出塞〉, 〈從軍記〉가 유명하다.
원래 문집이 있었으나 망실되었고, 명대에 《王昌齡全集》이 편집되었으며, 그의 저술로 알려진 시론서 《詩格》과 《詩中密旨》 각 1권이 전한다. 《唐詩三百首》에 수록된 작품으로 〈同從弟南齋玩月憶山陰崔少府〉 〈塞下曲 一‧二〉, 〈芙蓉樓送辛漸〉 〈閨怨〉 〈春宮曲〉 〈長信怨〉 〈出塞〉가 있다.

당시삼백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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