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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1)

당시삼백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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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장군을 노래하다〉
王維
왕유
少年十五二十時
열다섯, 스무 살 소년 시절에
步行奪得
길 가다가 오랑캐의 말 빼앗아 탔고
射殺山中
산중에서 백액호를 활로 쏘아 죽였으니
어찌 鄴下의 수염 누런 아이 축에 끼일까 보냐
一身轉戰三千里
이 한 몸 전쟁 따라 삼천리를 전전했고
一劍曾當百萬師
이 한 칼로 일찍이 백만 군사 대적했네
漢兵奮迅如霹靂
한나라 군사 기운과 신속함은 벽력 같았고
虜騎
철질려 두려워 오랑캐 군 도망갔지
위청이 패하지 않았음은 바로 천행 때문이고
이광의 공이 없었음은 운이 없어서였네
自從棄置便衰朽
버림받은 뒤에는 문득 노쇠했으며
世事成白首
세상사 뜻같지 않아 어느새 백발이 되었네
昔時飛箭
예전에 화살 날려 두 눈 온전치 못했는데
오늘은 오른쪽 팔꿈치에 수양이 생겨났네
路旁時賣
길가에서 때때로 동릉후의 오이를 팔고
門前學種
문 앞에는 도연명의 버드나무 심기를 배우네
蒼茫古木連窮巷
아득히 푸른 고목은 궁한 촌구석에 이어있고
寥落寒山對虛牖
적막히 차가운 산은 빈창 마주하고 있지만
소륵성에 샘물이 용솟음치게 하고자 맹세하였지
영천이 공연히 술 먹고 성질부린 것과는 같지 않다네
下陣如雲
하란산 밑에 적진이 구름과 같으니
交馳日夕聞
羽檄이 빠르게 오가는 소식 아침저녁으로 들리네
節使募年少
절도사는 삼하에서 소년들을 모으고
詔書五道出將軍
조서 내려 오도에서 장군들 출정하네
試拂鐵衣如雪色
철갑옷을 한번 떨쳐보니 눈처럼 빛이 나고
聊持寶劍動星文
보검을 집어 드니 칠성 무늬 번쩍이네
願得
원컨대 연나라 활을 얻어 적장을 쏘고 싶으니
恥令鳴吾君
월나라 병사가 우리 임금 시끄럽게 하는 것이 부끄럽도다
莫嫌舊日
지난 날 운중의 태수를 미워하지 말게나
猶堪一戰功勳
그래도 한번 싸워 공훈 세울 만 하리니
[通釋] 노장군이 젊었던 15살에서 20살 무렵, 길을 걷다 오랑캐의 말을 빼앗아 타고 달렸던 李廣과 같이 용맹했다. 또한 산중의 사납기로 소문난 백액호를 쏘아 죽인 周處의 용맹도 지녔으며, 무예가 출중했던 조조의 아들 黃鬚兒 曹彰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삼천리나 떨어진 전쟁터를 수없이 오갔으며 보검을 차고 백만 기병들과 맞서 싸웠다. 老將軍의 병사들은 한나라 병사들처럼 번개같이 빠르게 용맹을 떨치며 전진했었고, 오랑캐 기병들은 도주하면서 철질려를 두려워하였다.
예전의 한나라 장군 위청은 일곱 차례나 출정하여 흉노를 정벌함에 한 번도 패하지 않았으나 그것은 요행으로 얻은 것이다. 반면에 훌륭한 이광이 공을 세우지 못한 것은 운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노장군도 용맹했지만 이광처럼 운이 없었다. 여기 노장군은 버려진 후로는 날로 쇠약해지고 늙어서 그저 하루하루를 지냈는데, 눈 들어 바라보니 어느덧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었구나. 예전에 그의 활솜씨는 새의 한쪽 눈을 맞출 만큼 뛰어났지만, 지금은 그 팔뚝을 오랜 세월 쓰지 않아 마치 혹이 생겨난 것 같다. 길 가에 앉아서 마치 진나라가 망했을 때의 동릉후가 그랬던 것처럼 오이를 팔며 앉아 있고, 대문 앞에는 도연명을 본받아 버드나무를 심어 놓았다. 창망한 해질 녘, 오래된 나무는 궁벽한 촌구석에 연이어져 있고 적막하고 처량한 산은 빈창을 마주대하고 있다.
비록 처지는 이렇다 해도 그의 영웅심은 아직 죽지 않아 동한의 경공처럼 결심하여 소륵성 가운데서 샘물을 용솟음치게 하려는 의지를 가졌지, 영천의 장군 관부처럼 부질없이 술기운을 빌려 호기를 부리는 생활을 하지는 않는다. 지금 저 하란산 밑 병사의 진이 구름처럼 모여 있어 새의 깃털 꽂은 긴급한 軍書가 아침저녁 빠르게 오가는 소리가 아침저녁으로 들려온다. 절도사들은 三河에서 나이 어린 소년병들을 모집하고, 장군들은 五道에서 병사를 출정시키라는 조서를 받든다. 이를 보고 용기가 솟아 철갑옷을 한번 떨쳐보자 눈처럼 빛이 나고 보검을 집어 드니 칼 위에 새겨진 七星 무늬의 섬광이 번득인다. 연 땅의 굳센 활을 얻어 오랑캐 대장을 쏘아 보고 싶고, 越나라 병사가 齊王을 시끄럽게 했던 것을 옹문의 子狄이 부끄러워하여 목숨을 끊었듯이 老將軍도 지금 적병이 군주를 시끄럽게 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지난 날 운중의 태수를 싫어하지 말아야 하니 老將軍도 운중태수처럼 복직이 되면 한 번 싸워 공을 이룰 만하다.
[解題] 이 시는 한 늙은 장수가 지금은 쇠락하여 한때 젊은 시절 전쟁에 참여했던 경험을 돌이켜보고 영웅심이 이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시 전체는 의미상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단락은 노장군의 젊은 시절의 용맹함을 그려냈다. 둘째 단락은 장군의 노년 무렵이 처량하여 상심하고 있는 것을 묘사하였는데, 이 부분에서 여섯 개의 典故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셋째 단락은 장군이 이미 노쇠하였지만 여전히 나라에 대한 忠心을 잃지 않고 다시 한 번 공훈을 세우기를 희망한다는 내용이다. 시에서는 전체적으로 白額虎, 黃鬚兒, 衛靑天幸, 李廣數奇, 箭無全目, 楊生左肘 등의 많은 典故를 사용하였는데, 운용한 솜씨가 매우 돋보인다.
[集評] ○ 唐人詩肯數鄴下黃鬚兒 此指魏操之子 任城王彰也 其用力萬古一人 - 朝鮮 李瀷, 《星湖僿說》 卷8, 〈人事門‧曹彰〉
[集評] 唐나라 王維의 시에, ‘鄴下黃鬚兒’라 하였으니, 이는 曹操의 아들 任城王 彰을 가리킨 것인데, 그는 萬古에 한 사람일 정도로 용력이 대단하였다.
○ 王維老將行 衛靑不敗由天幸 按史記 軍亦有天幸 未甞困絶 乃霍去病事
왕유의 〈노장행〉에 ‘衛靑不敗由天幸’이라 하였는데, 《사기》에 의하면 군사에도 천행이라는 것이 있어 한번도 困絶을 겪지 않은 것은 곧 곽거병의 경우이다.
而今曰衛靑恐誤
여기에서 ‘위청’이라 한 것은 잘못이 아닌가 한다.
又恥令越甲鳴吾君 按說苑 越甲至齊 雍門子狄請死之曰 昔王田於囿 左轂鳴 車左請死之曰 吾見其鳴吾君也
또 ‘恥令越甲鳴吾君’이라 하였는데, 《설원》에 의하면 월나라 병사가 제나라에 이르자 옹문자적이 죽기를 청하면서 말하기를, “옛날 왕께서 동산에서 사냥을 할 때 왼쪽 바퀴통이 삐걱거리며 소리를 내자 車左가 죽기를 청하며 말하기를 ‘제가 왼쪽 바퀴통이 우리 군주를 시끄럽게 한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라 하였습니다.
今越甲至 其鳴君 豈左轂之下哉 蓋用此也 - 朝鮮 李睟光, 《芝峯類說》 卷10, 〈文章部‧唐詩〉
지금 월나라 병사가 이르러 군주를 시끄럽게 하니, 어찌 왼쪽 바퀴통이 삐걱거리며 소리를 냈던 것보다 가벼운 일이겠습니까?”라 하였다고 하니, 대개 이를 차용한 것이다.
○ 老將行起語至數奇是興 自從下是賦 賀蘭下以興結 - 淸 吳喬, 《圍爐詩話》 卷2
〈老將行〉은 起句에서 ‘數奇’까지는 興이요, ‘自從’ 이하는 賦이며, ‘賀蘭’이하는 興으로써 맺었다.
○ 摩詰七古 格整而氣斂 雖縱橫變化 不及李杜 然使事典雅 屬對工穩 極可爲後人學步 - 淸 施補華, 《峴傭說詩》
摩詰(王維)의 七古詩는 詩格이 정돈되고 기운이 수렴되어 있어, 비록 종횡으로 변화하는 것이 이백과 두보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전거를 쓰는 것이 典雅하고 대구를 짜 놓은 것이 정교하면서도 온당하여 후학들이 매우 배울 만하다.
역주
역주1 老將行 : 唐代 유행했던 樂府 詩題로서, 악부 가운데 新樂府에 속한다.
역주2 胡馬騎 : 《漢書》 〈李廣傳〉에, “오랑캐 기병이 李廣을 사로잡았는데, 이광이 죽은 체 하면서 그 옆의 한 오랑캐가 타던 좋은 말을 엿보다가 잠깐사이 뛰어올라 그 말을 타고는 채찍질 하여 남쪽으로 수십 리를 달려갔다.[胡騎得廣 廣佯死 睨其旁有一胡兒騎善馬 暫騰而上胡兒馬 鞭馬南馳數十里]”라 하였다.
역주3 白額虎 : 이마가 하얀 호랑이로, 가장 사나운 호랑이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晉書》 〈周處傳〉에 의하면, 명장이었던 周處가 일찍이 南山에 들어가 백액호를 쏘아 백성들의 피해를 없애주었다고 하고, 《史記》 〈李將軍列傳〉에 의하면, 李廣이 右北平太守시절에 활로 猛虎를 쏘아 죽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고 한다.
역주4 肯數 : ‘數’는 셈하다, ∼에 끼워준다는 뜻이다.
역주5 鄴下黃鬚兒 : ‘鄴下’는 魏나라 도읍(지금의 河南省 臨漳縣)으로서, 여기서는 曹操를 의미한다. ‘黃鬚兒’는 曹操의 아들 曹彰을 말한다. 그는 성질이 강하고 사나웠으며, 수염이 황색이었고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해 조조가 매우 아꼈다. 조조는 그를 두고 “내 누런 수염을 가진 아들은 쓸 만하다.[我黃鬚兒可用也]”라 하였다고 한다.
역주6 崩騰 : 崩은 ‘奔’이라 되어 있는 본도 있다. ‘崩騰’은 ‘奔騰’과 같으며 도주한다는 뜻이다.
역주7 蒺藜 : 본래는 가시를 지닌 식물이지만, 여기서는 鐵蒺藜를 지칭한다. 옛날 전쟁터에서 사용하던 일종의 방어 공구이다.
역주8 衛靑不敗由天幸 : ‘衛淸’은 漢의 平壤人으로 漢武帝의 황후 衛夫人의 동생이며, 霍去病의 外甥이다. 원광 5년에 거기장군이 되어 일곱차례 흉노족과 전투를 벌였는데,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斬首한 것이 5만 여급이나 되었다. 이 시에서 ‘天幸’이라고 한 것은 위청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황제의 인척으로서 요행으로 승리했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9 李廣無功緣數奇 : ‘李廣’은 漢文帝 때 散騎常侍에 임명되고, 武帝 때에는 右北平太守가 되어 비록 몇 차례 공을 세우긴 하였지만 결국 제후에 봉해지지 못하고 도리어 벌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數奇’는 운이 좋지 못하다는 뜻이다. ‘奇’는 ‘基’와 상통하는데 基數는 홀수이며 偶數는 짝수이다. 옛 사람들은 우수를 길하게 보고, 기수를 흉한 것으로 여겼다.
역주10 蹉跎 : 불운하여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역주11 無全目 : 활솜씨가 뛰어남을 의미한다. 鮑照의 〈擬古詩〉에, ‘驚雀無全目’이라는 구절이 있다. 李善의 注에 《帝王世紀》를 인용하여 이르기를, “帝羿有窮氏가 吳賀와 함께 북쪽에서 노닐다가 오하가 羿에게 참새를 쏘게 하였다. 예가 묻기를 ‘살려둘까, 죽일까’라 하자 오하가 대답하길 그 왼쪽 눈을 쏘라고 하였다. 예는 활시위를 당겨 쏘았으나 잘못하여 오른쪽 눈을 맞추었다. 예는 머리를 숙이고 부끄러워하며 종신토록 잊지 못했다.[帝王世紀 帝羿有窮氏與吳賀北遊 賀使羿射雀 羿曰生之乎殺之乎 賀曰射其左目 羿引弓射之 誤中右目 羿抑首而愧 終身不忘]”라 하였다. 여기서는 한 쪽 눈을 쏘았기 때문에 두 눈이 온전치 못함을 말한 것이다.
역주12 垂楊生左肘 : ‘垂楊’은 垂柳와 같고 柳는 혹을 뜻하는 瘤와 상통한다. 《莊子》 〈至樂〉편에, “지리숙과 골개숙이 명백의 언덕, 곤륜의 터, 황제가 쉬던 곳을 유람하였다. 잠깐사이에 골개숙의 왼쪽 팔꿈치에 혹이 생겼다.[支離叔與滑介叔 觀於冥伯之丘 崑崙之墟 黃帝之所休 俄而柳生其左肘]”는 말이 있는데, 王先謙의 集注에, “柳는 瘤의 借字이다.”라 하였다. 여기서는 노장군이 오랜 세월동안 전장에 나가지 못하여 팔꿈치에 혹이 생긴 것처럼 활을 잘 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역주13 故侯瓜 : 東陵瓜를 지칭한다. 이 말은 《史記》 〈蕭相國世家〉의, “召平이라는 자는 옛 秦나라의 東陵侯이다. 진나라가 망하자, 포의로 가난하게 살며 長安城 동쪽에 오이를 심었다. 그 오이가 좋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東陵瓜’라 하였으니 소평을 따라서 이름을 삼은 것이다.[召平者 故秦東陵侯 秦破爲布衣貧 種瓜於長安城東 瓜美 故世俗謂之東陵瓜 從召平以爲名也]”라는 데서 유래한다.
역주14 先生柳 : 도연명이 심은 버드나무를 지칭한다. 진의 도연명이 일찍이 〈五柳先生傳〉을 지어 스스로를 비유하였는데, 그 내용 중에, “집 주위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고, 인하여 호로 삼았다.[宅邊有五柳樹 因以爲號焉]”라는 부분이 있다.
역주15 誓令疏勒出飛泉 : 《後漢書》 〈耿恭傳〉에 의하면, 동한의 유명한 장수였던 경공이 병사를 이끌고 소륵현에 주둔하였는데, 흉노가 水源을 끊어버리려 하자 경공이 군사들을 시켜 성 안에 우물을 팠다. 그 깊이가 15丈이나 되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자 우물을 향하여 두 번 절하니 샘물이 솟아났다고 한다.
역주16 潁川空使酒 : 《史記》 〈魏其武安侯列傳〉에 의하면, 西漢 景帝 때 장군 灌夫는 潁川郡潁陰(지금의 河南省 許昌市) 사람이었는데, 성품이 강직하고 귀척에게 아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술 마시면 기세를 부렸는데 훗날 술자리에서 丞相 田蚡에게 성질을 부린 것이 화근이 되어 田蚡의 탄핵을 받아 멸족 당했다. 여기서 潁川은 장군 관부를 지칭한다. ‘使酒’란 술기운으로 인해 성질을 부린다[因酒使性]는 의미이다.
역주17 賀蘭山 : 지금의 寧賀回族自治區에 있는 산으로 唐時 西北 변방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역주18 羽檄 : 새의 깃털을 꽂은 軍書로서 軍情의 긴급함을 표시한 것이다.
역주19 三河 : 河南, 河東, 河內를 일컫는다.
역주20 燕弓 : 옛날 燕 땅에서 생산되던 角弓으로서 그 견고함 때문에 유명하다.
역주21 大將 : ‘天將’이라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22 越甲 : 漢 劉向의 《說苑》 〈立節〉에, “월나라 병사가 제나라에 이르니, 옹문의 자적이 죽기를 청하였다. 제왕이 말하기를 ‘鼓鐸의 소리도 아직 들리지 않고, 활과 돌이 아직 교차하지도 않았으며, 장병들이 아직 접전을 한 것도 아닌데, 그대는 어찌 죽으려 하는가? 신하된 예로서 그러한 것인가?’라 하였다. 옹문의 자적이 대답하기를 ‘신이 듣건대, 예전에 왕께서 동산에서 사냥하실 때 왼쪽 바퀴통이 삐걱거리며 소리를 내자, 車右가 죽기를 청하였습니다. 그러자 왕이 묻기를 「네 어찌 죽으려 하느냐?」라 하자 車右가 대답하길 「왕께 시끄러운 소리를 들려드렸기 때문입니다.」라 하고는……드디어 목을 베어 죽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을 아십니까?’ 하니, 제왕이 말하기를 ‘알고 있다.’라 하였다. 옹문의 자적이 말하기를 ‘지금 월나라 병사가 이르러 우리 군주를 시끄럽게 하였으니, 이 어찌 왼쪽 바퀴통이 소리를 냈던 것보다 가벼운 일이겠습니까. 車右도 왼쪽 바퀴통 때문에 죽었는데, 신만 유독 월나라 병사 때문에 죽을 수 없겠습니까?’ 하고는 드디어 목을 베어 죽었다.[越甲至齊 雍門子狄請死之 齊王曰 鼓鐸之聲未聞 矢石未交 長兵未接 子何務死之 爲人臣之禮邪 雍門子狄 對曰 臣聞之 昔者王田於囿 左轂鳴 車右請死之 而王曰 子何爲死 車右對曰 爲其鳴吾君也……遂刎頸而死 知有之乎 齊王曰 有之 雍門子狄曰 今越甲至 其鳴吾君也 豈左轂之下哉 車右可以死左轂 而臣獨不可以死越甲也 遂刎頸而死]”는 기록이 있다.
역주23 雲中守 : 漢나라의 魏尙이 雲中의 태수가 되었는데 흉노가 멀리 도망가서 운중 땅에 근접하지 못했다. 위상은 후에 사소한 일로 삭탈관직 되었는데 馮唐의 건의로 다시 복직되었다. 여기서는 老將軍을 위상에 비겨서, 다시 복직되면 공을 세울 수 있음을 말한다.
역주24 : ‘立’이라 되어 있는 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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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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