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唐詩三百首(3)

당시삼백수(3)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시삼백수(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寄
〈令狐郎中에게 부치다〉
李商隱
이상은
久離居
숭산의 구름 秦 땅의 나무 오래도록 떨어져 있는데
迢迢一紙筆
잉어가 머얼리 한 장의 종이 가져왔다오
묻지 마시오, 양원의 옛 손님은
무릉의 가을비에 병든 사마상여라오
[通釋] 숭산의 구름과 진 땅의 나무처럼 나는 낙양에, 그대는 장안에 오래도록 떨어져 지내고 있는데, 멀리서 한 통의 편지가 전해졌다. 일찍이 당신의 부친 令狐楚는 나라 안의 문사들을 幕下에 모았었지. 하지만 그 幕下에서 문객 노릇했던 나에 대해서는 묻지를 마시오. 지금 적막한 무릉에는 가을비가 내리고, 나는 사마상여처럼 앓고 있다오.
[解題] 이 시는 이상은이 낙양에 머물고 있을 때, 令狐綯에게 온 편지에 회신으로 쓴 작품이다.
1구의 ‘嵩雲’과 ‘秦樹’는 각각 시인 자신이 있는 곳과 영호도가 있는 곳을 비유하여 두 사람이 서로 떨어져 있음을, ‘久離居’는 헤어져 지낸 시간이 오래되었음을 드러내었다. 2구는 영호도가 멀리 장안에서 보낸 편지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雙鯉’라는 전고를 사용하여 표현하였다. 3‧4구는 梁孝王과 司馬相如에게 영호도와 자신을 각각 비유하였는데, 3구는 안부를 묻지 말라는 반어적 표현으로 자신에게 냉담하지 말 것을 말하였고, 마지막 4구는 자신이 병들어 쇠약한 근황을 사마상여를 통해 표현하여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줄 것을 부탁하였다.
[集評]○ 此亦居鄭亞幕中寄綯者 曰嵩山離居 曰梁園舊客 皆追論疇者從令狐楚於汴州之時
[集評]○ 이 작품도 鄭亞의 막부에 있으면서 영호도에게 부친 것으로, ‘嵩山離居’와 ‘梁園舊客’은 모두 汴州에서 영호초를 따랐던 시절을 회상하여 말한 것이다.
末句以茂陵臥病自慨者 亦頹然自放 免黨怨之詞 - 淸 程夢星, 《李義山詩集箋注》
마지막 구에 무릉에서 병으로 누워 있다고 스스로 개탄한 것은 또한 무너지듯 스스로 놓아버려 당쟁의 원한을 벗어난 말이다.
○ 楊曰 其詞甚悲 意在修好 - 淸 馮浩, 《玉溪生詩詳注》 卷1
○ 楊守智는 “시어는 매우 슬프지만, 뜻은 좋다.”고 하였다.
○ 紀曰 一唱三嘆 格韻俱高 - 淸 沈厚塽, 《李義山詩集輯評》
○ 紀盷은 “一唱三嘆할 만한 작품으로, 격조와 운율이 모두 높다.”고 하였다.
○ 布置工妙 神味雋永 絶句之正鵠也 - 淸 宋顧樂, 《唐人萬首絶句選》
○ 구성이 공교롭고, 정신과 맛이 심오하니, 절구의 正鵠이다.
○ 義山與令狐相知久
○ 의산(이상은)은 영호도와 서로 안 지 오래되었다.
退閑以後 得來書 而却寄以詩 不作乞憐語 亦不涉觖望語
은거한 이후 편지를 받아보고서 시를 부쳤는데, 동정을 구하는 말도 쓰지 않고, 또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원망하는 말도 나타내지 않았다.
鬢絲病榻 猶回首前塵 得詩人溫柔悲悱之旨 - 現代 兪陛雲, 《詩境淺說》
하얗게 센 머리로 병석에서 아직도 지난날을 회상하니 시인의 온유하면서도 서글픈 뜻을 얻을 수 있다.
역주
역주1 令狐郎中 : 令狐楚의 아들인 令狐綯를 말하는데, 영호도는 唐 武宗 會昌 4년(844) 右司郎中에 있었다. 이상은은 16세 때에 河陽節度使 令狐楚에게 인정받아 그의 막하로 들어가는데, 후에 영호초의 아들과 함께 자란다. 시를 잘 썼는데도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던 이상은은 25세가 되어서야 영호초의 아들인 영호도의 도움으로 진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후에 그가 王茂元의 사위가 됨으로써, 영호도와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영호초‧영호도 부자가 牛黨이었던 것에 반해, 왕무원은 李黨에 속했기 때문이다.
역주2 嵩雲秦樹 : ‘嵩雲’은 嵩山의 구름으로, 당시 洛陽에 있던 시인 자신을 비유한다. 숭산은 五嶽 중 하나인데, 지금의 河南省 登封縣 북쪽에 있다. ‘秦樹’는 秦川의 나무로, 영호도를 비유하는데 당시 영호도는 長安에 있었다.
역주3 雙鯉 : 편지를 보관하는 함이다. 본래 함 뚜껑과 안쪽에 물고기 모양이 각각 그려져 있어 함을 열었을 경우에 두 마리가 되므로 ‘雙鯉’라 칭한 것이다. 引伸하여 書信을 뜻하는 말로 쓰이는데 漢나라 樂府 〈飮馬長城窟行〉에 “손님이 먼 곳에서 와, 내게 잉어 두 마리 주었네. 아이 불러 잉어를 삶으라 하였더니, 그 속에 한 자 되는 흰 종이가 있었네.[客從遠方來 遺我雙鯉魚 呼兒烹鯉魚 中有尺素書]”라고 보인다.
역주4 梁園舊賓客 : 梁園은 漢나라 文帝의 둘째 아들인 梁 孝王 劉武의 정원으로, 옛터는 지금의 河南省 商丘市이다. 당시 나라 안의 여러 문사들이 모였는데, 司馬相如도 梁園에서 門客생활을 하였다. 여기에서는 영호도가 문객을 맞이하는 장소를 뜻한다. 舊賓客은 이상은 자신을 가리킨다.
역주5 茂陵 : ‘茂陵’은 漢 武帝의 능인데, 지금의 陝西省 興平縣에 있다.
역주6 病相如 : 사마상여는 孝文園令에 임명되었으나, 병을 이유로 그만두고 茂陵에서 살았다. 시인 역시 낙양에서 臥病 중이었기 때문에 사마상여를 자신에 견준 것이다.
동영상 재생
1 299 기령호랑중 1505

당시삼백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