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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3)

당시삼백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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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
李商隱
久離居
迢迢一紙筆
[集評]○ 此亦居鄭亞幕中寄綯者 曰嵩山離居 曰梁園舊客 皆追論疇者從令狐楚於汴州之時
末句以茂陵臥病自慨者 亦頹然自放 免黨怨之詞 - 淸 程夢星, 《李義山詩集箋注》
○ 楊曰 其詞甚悲 意在修好 - 淸 馮浩, 《玉溪生詩詳注》 卷1
○ 紀曰 一唱三嘆 格韻俱高 - 淸 沈厚塽, 《李義山詩集輯評》
○ 布置工妙 神味雋永 絶句之正鵠也 - 淸 宋顧樂, 《唐人萬首絶句選》
○ 義山與令狐相知久
退閑以後 得來書 而却寄以詩 不作乞憐語 亦不涉觖望語
鬢絲病榻 猶回首前塵 得詩人溫柔悲悱之旨 - 現代 兪陛雲, 《詩境淺說》


〈令狐郎中에게 부치다〉
이상은
숭산의 구름 秦 땅의 나무 오래도록 떨어져 있는데
잉어가 머얼리 한 장의 종이 가져왔다오
묻지 마시오, 양원의 옛 손님은
무릉의 가을비에 병든 사마상여라오


역주
역주1 令狐郎中 : 令狐楚의 아들인 令狐綯를 말하는데, 영호도는 唐 武宗 會昌 4년(844) 右司郎中에 있었다. 이상은은 16세 때에 河陽節度使 令狐楚에게 인정받아 그의 막하로 들어가는데, 후에 영호초의 아들과 함께 자란다. 시를 잘 썼는데도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던 이상은은 25세가 되어서야 영호초의 아들인 영호도의 도움으로 진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후에 그가 王茂元의 사위가 됨으로써, 영호도와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영호초‧영호도 부자가 牛黨이었던 것에 반해, 왕무원은 李黨에 속했기 때문이다.
역주2 嵩雲秦樹 : ‘嵩雲’은 嵩山의 구름으로, 당시 洛陽에 있던 시인 자신을 비유한다. 숭산은 五嶽 중 하나인데, 지금의 河南省 登封縣 북쪽에 있다. ‘秦樹’는 秦川의 나무로, 영호도를 비유하는데 당시 영호도는 長安에 있었다.
역주3 雙鯉 : 편지를 보관하는 함이다. 본래 함 뚜껑과 안쪽에 물고기 모양이 각각 그려져 있어 함을 열었을 경우에 두 마리가 되므로 ‘雙鯉’라 칭한 것이다. 引伸하여 書信을 뜻하는 말로 쓰이는데 漢나라 樂府 〈飮馬長城窟行〉에 “손님이 먼 곳에서 와, 내게 잉어 두 마리 주었네. 아이 불러 잉어를 삶으라 하였더니, 그 속에 한 자 되는 흰 종이가 있었네.[客從遠方來 遺我雙鯉魚 呼兒烹鯉魚 中有尺素書]”라고 보인다.
역주4 梁園舊賓客 : 梁園은 漢나라 文帝의 둘째 아들인 梁 孝王 劉武의 정원으로, 옛터는 지금의 河南省 商丘市이다. 당시 나라 안의 여러 문사들이 모였는데, 司馬相如도 梁園에서 門客생활을 하였다. 여기에서는 영호도가 문객을 맞이하는 장소를 뜻한다. 舊賓客은 이상은 자신을 가리킨다.
역주5 茂陵 : ‘茂陵’은 漢 武帝의 능인데, 지금의 陝西省 興平縣에 있다.
역주6 病相如 : 사마상여는 孝文園令에 임명되었으나, 병을 이유로 그만두고 茂陵에서 살았다. 시인 역시 낙양에서 臥病 중이었기 때문에 사마상여를 자신에 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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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99 기령호랑중 1505

당시삼백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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