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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3)

당시삼백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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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商隱(813~858)
字는 義山이고 號는 玉溪生이며, 懷州 河內(지금의 河南省 沁陽縣) 사람이다. 젊은 시절 令狐楚에게 발탁되어 문종 開成 2년(837)에 진사에 급제한 후 관직이 涇原節度使에 이르렀고, 王茂元의 막부에서 書記로 있으면서 그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당시의 정치적 상황은 환관들이 전횡하였으며, 당파가 심하여 황제가 이를 제지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이러한 싸움들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사회의 모순은 더 극심해졌다. 이상은은 만당의 이러한 암흑적인 현실에 맞서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전개하였으며, 혁신적인 願望을 품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붕당의 소용돌이 속에서 결국 배척당했으며 하급관리로서 45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이상은의 현전하는 詩歌는 600여 편으로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데, 사회의 정치적인 모순과 어두운 현실을 비판하거나 환관의 전횡을 폭로하는 시들이 많다. 또한 다수의 詠史詩를 저작하기도 하였다.
이상은의 시가는 예술적인 면에서 屈原, 李白, 李賀의 적극적인 낭만주의를 계승하였으며, 두보의 嚴僅, 深沈, 雄渾한 특징들까지 겸하고 있다. 그의 시에는 특징적이고 절묘한 想像的 기법이 돋보이며 詞句가 精警하고 색채의 濃麗함이 담겨 있어 예술적인 매력이 매우 풍부하다.
만당 시인 가운데 그와 杜牧은 명성을 나란히 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들을 ‘小李杜’라 칭하였다. 다만 어떤 시들은 詩語가 매우 어렵고, 典故의 사용이 까다로워 이해하는 데 난점이 있기도 하다. 이러한 점들은 宋初 형식주의 시파 西崑體의 출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저서로는 《李義山詩集》과 《樊南文集》이 있다. 《唐詩三百首》에 수록된 작품으로 〈韓碑〉, 〈蟬〉, 〈風雨〉, 〈落花〉, 〈涼思〉, 〈北靑蘿〉, 〈錦瑟〉, 〈無題〉, 〈隋宮〉, 〈籌筆驛〉, 〈春雨〉, 〈登樂遊原〉, 〈夜雨寄北〉, 〈寄令狐郎中〉, 〈爲有〉, 〈隋宮〉, 〈瑤池〉, 〈嫦娥〉, 〈賈生〉 〈無題〉 등이 있다.



당시삼백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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