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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3)

당시삼백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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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夜上聞笛〉
〈밤에 受降城에 올라 피리소리를 듣다〉
李益
이익
前沙似雪
회락봉 앞의 모래는 눈과 같고
受降城月如霜
수항성 밖의 달빛은 서리 같다
不知何處吹
어디에서 갈대피리 부는지 몰라도
이 밤 군사들 모두 고향 생각하네
[通釋] 회락봉 앞의 모래사막은 흰 눈이 쌓인 듯하고, 수항성 밖에 달빛이 비치니 찬 서리가 내린 듯하다. 누군가 부는 피리소리가 이 밤에 가득 퍼지니, 먼 변방에서 수자리 사는 사람들 모두가 고향 생각에 잠긴다.
[解題] 建中 元年(780)에 李益은 朔方節度使 崔寧의 막부에 들어가서 靈州 일대에서 지냈다. 당시는 전쟁이 끊이지 않은데다 변방을 지키는 장수들이 부패하여 군졸들은 한번 가면 오랫동안 수자리를 살아야 했다. 체험을 통해 이를 알았던 시인은 수자리 사는 병사들이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핍진하게 그려내었다. 이 시기에 지은 변새시들이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왕창령‧이백과 더불어 칠언절구의 三絶로 칭해진다.
이 시는 변새 지방의 夜景을 묘사하면서 수자리 사는 병사들이 추위 속에서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담았다. 첫 두 구는 성 위에서 본 풍경을 묘사하였는데, 대구를 통해 1구에서는 ‘沙似雪’로 사막의 황량함을, 2구에서는 ‘月如霜’으로 가을 달빛이 처량함을 나타내었다. 3구는 앞의 두 구를 긴밀하게 이어받아 성 위에서 듣는 피리소리를 말하였다. 1‧2구에서 묘사한 황량하고 소슬한 야경이 이미 사람을 시름겹게 하는데, 여기에 서글픈 피리소리까지 더해져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그칠 수 없으니, 이러한 그리움이 마지막 구의 ‘盡望鄕’ 석 자에 응축되었다.
[集評]○ 中唐絶回雁峰前爲冠
[集評]○ 중당의 절구는 ‘’을 으뜸으로 삼는다.
……七言絶 開元之下 便當以李益爲第一
……칠언절구는 開元 이래로 李益을 제일로 삼아야 한다.
如夜上西城從軍北征受降春夜聞笛諸篇 皆可與太白龍標競爽 非中唐所得有也 - 明 胡應麟, 《詩藪》 內編6
〈夜上西城〉 〈從軍北征〉‧〈受降春夜聞笛〉 같은 여러 편은 모두 太白(李白)‧龍標(王昌齡)와 더불어 우열을 다툴 만하니, 中唐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 秦時明月一首 黃河遠上一首 天山雪後一首 回樂烽前一首 皆邊塞名作 意態健絶 音節高亮 情思悱惻 百讀不厭也 - 淸 施補華, 《峴傭說詩》
○ ‘秦時明月’ 한 수(왕창령, 〈出塞〉)와 ‘黃河遠上’ 한 수(王之渙, 〈涼州詞〉), ‘天山雪後’ 한 수(李益, 〈從軍北征〉), ‘回樂烽前’ 한 수는 모두 변새시의 명작으로 뜻이 굳건하고 소리가 높고 맑으며 정서가 슬퍼서 백 번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
○ 對蒼茫之夜月 登絶塞之孤城
○ 창망한 달을 대하며 고립된 변새의 성에 오른다.
沙明訝雪 月冷疑霜 是何等悲涼之境
사막은 눈이 내리는 것처럼 밝고 달은 서리가 내린 것처럼 차가우니 이 얼마나 처량하고 서글픈 곳인가.
起筆以對句寫之 彌見雄厚
시작 부분을 대구로 써서 더욱 雄厚함을 드러냈다.
後二句申足上意 言荒沙萬靜中 聞蘆管之聲 隨朔風而起 防秋多少征人 鄕愁齊赴
뒤의 두 구는 앞의 뜻을 펼쳐 황량한 사막의 고요함 속에 갈대피리소리가 삭풍을 따라 일어나는 것을 듣고 변방을 지키는 수많은 병사들에게 향수가 일어난다고 말했다.
則己之郁伊善感 不待言矣
그렇다면 시인 자신이 더 잘 느낄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李詩又有從軍北征云 天山雪後海風寒 橫笛偏吹行路難 磧里征人三十萬 一時回首月中看
○ 이익은 또 〈從軍北征〉에서 “천산에 눈 내린 후 청해의 바람 찬데, 피리를 비껴 들고 한사코 행로난을 부네. 사막 속에 수자리 사는 삼만 인이, 한꺼번에 머리 돌려 달을 바라보는구나.[天山雪後海風寒 橫笛偏吹行路難 磧里征人三十萬 一時回首月中看]”라고 하였다.
意境略同 但前詩有夷宕之音 北征詩用抗爽之筆 均佳構也 - 現代 兪陛雲, 《詩境淺說》
뜻은 대략 같지만 앞의 시는 夷宕한 소리가 있고, 〈종군북정〉 시는 抗爽한 필치를 써서, 모두 아름답게 짜여졌다.
역주
역주1 受降城 : 唐 中宗 때에 돌궐의 침략을 막기 위해 쌓은 것이다. 景龍 2년(708)에 朔方道大總 張仁愿에게 명하여 黃河 이북의 동‧서‧중앙 세 곳에 수항성을 쌓게 하였는데, 이 시의 첫 구를 볼 때 서쪽의 수항성을 가리키는 듯하다. 서쪽의 수항성은 靈州에 있는데 지금의 寧夏 回族自治區 靈武縣이다.
역주2 回樂烽 : 지금의 寧夏 回族自治區 靈武縣 서남쪽에 있으며, 受降城 부근의 봉화대이다. ‘烽’이 ‘峰’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는데, 李益의 다른 시 〈暮過回樂烽〉에 근거하여 ‘峰’이 誤字임을 알 수 있다.
역주3 : ‘下’ 또는 ‘上’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4 蘆管 : 胡笳를 지칭하며 胡人들이 갈대잎을 말아 만든 악기이다.
역주5 一夜征人盡望鄕 : ‘征人’은 변방 지역에 주둔하여 지키는 사람을 말한다. ‘盡’은 ‘全’의 의미이다.
역주6 回雁峰前 : 盧仝의 〈蕭二十三赴歙州婚期 二首〉 중 제1수인 “淮上客情殊冷落 蠻方春早客何如 相思莫道無來使 回雁峯前好寄書”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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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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