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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3)

당시삼백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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杜審言(645~708)
字는 必簡이며, 襄州 襄陽(지금의 湖北省 襄陽縣) 사람인데, 후에 河南省 鞏縣으로 옮겨갔다. 杜甫의 祖父이며 궁정시인으로 이름이 있었고, 젊은 시절 李嶠‧崔融‧蘇味道와 함께 文章四友로 불렸다. 高宗 咸亨 元年(670)에 進士가 된 후 隰城(지금의 山西省 隰縣)尉를 맡았고, 후에 洛陽丞이 되었다가, 훗날 일에 연루되어 吉州(지금의 江西省 吉安市)司戶參軍으로 폄직되었다. 則天武后 때에 著作郞을 제수받았고 膳部員外郞으로 옮겼다. 中宗 神龍 初(705)에 측천무후의 寵臣 張易之와 교유하였다는 이유로 論罪에 걸려 峰州로 유배되었지만, 오래지 않아 소환되어 國子監主簿가 되었고 修文館直學士로 벼슬을 마쳤다. 63세에 세상을 떠났다.
五言詩와 書翰의 명수로 이름을 날렸지만 재주를 믿고 남을 업신여겨 세인들이 그를 꺼렸다고 한다. 五言‧七言 律詩의 詩形을 완성하는 데 기여한 바 있다. 그의 시는 形象이 선명할 뿐 아니라 格律도 謹嚴하였으며, 또한 風調가 淸新하고 氣象도 雄健하다는 평을 듣는다.
저서에 《杜審言集》 10권이 있다고 하나 전하지 않고, 40여 수의 시만이 전한다. 《唐詩三百首》에 수록된 작품으로 〈和晉陵陸丞早春遊望〉이 있다.

당시삼백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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