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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1)

당시삼백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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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桃源行〉
王維
漁舟逐水愛山春
兩岸桃花夾
行盡靑溪
山口潛行始
山開曠望旋
遙看一處攢雲樹
近入千家散花竹
居人未改秦衣服
居人共住
還從起田園
月明松下
日出雲中雞犬喧
驚聞俗客爭來集
競引還家問都邑
平明閭巷掃花開
薄暮漁樵乘水入
初因避地去人間
遂不還
峽裏誰知有人事
世中遙望空雲山
不疑靈境難聞見
塵心未盡思鄕縣
出洞無論隔山水
辭家終擬長游衍
自謂經過舊不迷
安知峰壑今來變
當時只記入山深
靑溪幾到雲林
春來遍是桃花水
不辨仙源何處尋
[集評] ○ 武陵桃源 秦人避世於此 至東晉始聞於人間 陶淵明作記 且爲之詩 詳矣
其後作者相繼 如王摩詰韓退之劉禹鍚 本朝王介甫 皆有歌詩 爭出新意 各相雄長 - 宋 陳巖肖, 《庚溪詩話》 卷下
○ 桃源詩 唐宋以來 作桃源行最傳者 王摩詰韓退之王介甫三篇
觀退之介甫二詩 筆力意思 甚可喜
及讀摩詰詩 多少自在 二公便如努力挽强 不免面赤耳熱
此盛唐所以高不可及 - 淸 王士禎, 《池北偶談》 卷14
○ 古今詠桃源事者 至右丞而造極 固不必言矣
然此題詠者 唐宋諸賢略有不同
右丞及韓文公劉賓客之作 則直謂成仙
而蘇文忠之論 則以爲是其子孫 非卽避秦之人 至晉尙在也 此說似近理
蓋唐人之詩 但取 至後人 乃益硏核情事耳 不必以此爲分別也 - 淸 翁方綱, 《石洲詩話》 卷1


〈도원을 노래하다〉
왕유
고깃배로 물 따라 내려가니 사랑스런 봄 산
옛 나루를 끼고 양 언덕엔 복사꽃이 피어있다
붉은 나무를 바라보다 멀리 온 줄 몰랐더니
靑溪를 다 지나도 사람은 아니 보인다
산 어귀로 가만히 들자 깊은 협곡이 시작되고
산이 열려 확 트이자 문득 평야가 펼쳐있다
멀리서 보니 한 곳에 구름과 나무가 어리어 있고
가까이 들어서니 많은 집이 꽃과 대나무 사이에 흩어있다
나무꾼이 처음으로 漢人의 성명을 알려주는데
주민은 아직도 秦나라 때의 옷을 입고 있다
그들은 다 함께 무릉도원에서 살면서
세상 밖에 다시 전원을 일으켰구나
달 밝은 소나무 아래 창들은 고요한데
구름 속에 해가 뜨자 닭소리 개소리 요란하네
속세의 객이 왔다는 소식에 놀라 다투어 몰려와서는
서로 이끌고 집으로 가선 사는 마을을 물어본다
동트자 골목길은 꽃을 쓸어 열리고
저물 무렵 고기잡이와 나무꾼은 물길을 타고 돌아온다
처음엔 피난처로 인간세상을 떠났다가
신선 되어 끝내 돌아가지 않았구나
누가 알았으랴, 이 협곡 속에 사람이 살줄을
세상에서 멀리 바라보면 그저 구름 속의 산뿐인 것을
신선세계 듣고 보기 어려운 줄 의심치 않지만
세속의 마음 다하지 못해 고향마을 생각한다
골짝을 나가서는 산과 물이 막고 있어도
집 떠나 와서 오래도록 노니리라 생각했네
지나온 옛길을 잃지 않으리라 여겼건만
어찌 알았으리, 산골짝이 오늘처럼 변할 줄을
그때 산 깊이 들어간 것만 기억나니
靑溪 몇 굽이를 돌아 구름 자욱한 숲에 이르렀던가
봄이 되어 모두가 복사꽃 떠 있는 물인데
桃源 길 모르겠네, 어디 가서 찾을지
[集評] 武陵桃源은 秦나라 사람들이 이곳에서 세상을 피하였는데, 東晉시대부터 세상에 소문이 전해지기 시작하여 陶淵明이 記文을 짓고, 또 그것을 시로 지었는데 상세하다.
그 후의 작자들이 계속 이어져, 王摩詰(王維), 韓退之(韓愈), 劉禹錫, 本朝(宋代)의 王介甫(王安石)가 모두 詩歌를 지으며 다투어 새로운 意境을 창출하였는데 각기 장점이 있다.
〈桃源詩〉 당송이래로 桃源行을 지어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왕마힐, 한퇴지, 왕개보가 지은 세 편이다.
한퇴지와 왕개보의 두 시를 보면 筆力과 意思가 매우 흡족할 만하다.
그러나 마힐의 시를 읽게 되면 매우 자연스러워서 두 사람이 힘써 끌어 잡아당기려 해도 얼굴이 붉어지고 귀가 뜨거워지는 것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 점이, 성당의 시가 높아서 미칠 수 없는 이유이다.
고금에 도화원에 대한 일을 읊은 것은 右丞(王維)에 이르러서 극치에 이르렀음은 진실로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것을 제영한 작품에는 당송의 여러 작가들 사이에 대략 같지 않은 점이 있다.
右丞, 韓文公(韓愈), 劉賓客(劉禹錫)의 작품은 곧바로 “신선이 되었다.[成仙]”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蘇文忠公(蘇軾)의 論에는 그들의 자손들이요, 秦나라를 피해 달아난 사람들이 晉나라 때까지 살아있던 것이 아니라고 하였으니, 이 설명이 사리에 가까운 듯하다.
대개 당나라 사람들의 시는 다만 興象과 超妙만을 취하였으나, 후대 사람들에 이르러서는 더욱 事情을 깊이 연구하였으니 반드시 이것으로 분별할 필요는 없다.


역주
역주1 : ‘去’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2 坐看紅樹不知遠 : ‘坐’는 ‘因爲’ 즉 이유나 원인을 뜻한다. ‘紅樹’는 앞 구의 ‘桃花’ 즉 복숭아나무를 가리킨다.
역주3 不見人 : ‘忽値人’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4 隈隩 : ‘隈’는 구비, ‘隩’는 깊음을 뜻한다. 따라서 ‘隈隩’는 굽이굽이 좁고 깊은 협곡을 지칭한다.
역주5 平陸 : 平地를 뜻한다.
역주6 樵客初傳漢姓名 : ‘樵客’은 나무꾼을 뜻하는데, ‘漁父’와 함께 세속과 거리를 둔 은자를 지칭하기도 한다. 길을 잃고 무릉도원에 들어온 자들을 대개 ‘樵客’, ‘漁父’로 표현하였다.
역주7 武陵源 : 桃花源을 지칭한다. 晉代 陶潛의 〈桃花源記〉에, “우리의 선조가 秦나라 시대의 난리를 피하여 妻子와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세상과 단절된 이곳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나간 적이 없으니 마침내 바깥세상과는 멀어지게 되었다고 하였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물으니, 魏晉시대는 물론 漢나라가 있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先世避秦時亂 率妻子邑人來此絶境 不復出焉 遂與外人間隔 問今是何世 乃不知有漢無論魏晉]”라고 하였다.
역주8 物外 : 세상 밖, 즉 ‘別天地’를 뜻한다.
역주9 房櫳 : ‘櫳’은 창문을 뜻하며, ‘房櫳’은 일반적으로 집이나 창문을 통칭한다.
역주10 及至成仙 : ‘更聞成仙’으로 되어 있는 本도 있다.
역주11 : ‘度’로 되어 있는 本도 있다.
역주12 興象超妙 : ‘興象’은 興에 의하여 詩想을 일으킴을 뜻하고, ‘超妙’는 범상하지 않은 초월적 詩想을 지칭한다. 즉 언어문자나 이성적 논리로는 도달할 수 없는 오묘한 창작의 경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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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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