錦瑟無端五十絃 一絃一柱思華年 莊生曉夢迷胡蝶 望帝春心托杜鵑
滄海月明珠有淚 藍田日暖玉生煙 此情可待成追憶 只是當時已惘然
後以問東坡 東坡云 此出古今樂志云 錦瑟之爲器也 其絃五十 其柱如之 其聲也 適怨淸和
案李詩 莊生曉夢迷胡蝶適也 望帝春心托杜鵑怨也 滄海月明珠有淚淸也 藍田日暖玉生煙和也
劉貢父詩話 以謂錦瑟乃當時貴人愛姬之名 義山因以寓意 非也 - 宋 胡仔, 《苕溪漁隱叢話前集》 卷22
備見漁隠叢話 - 元 方回, 《瀛奎律髓》 卷27 着題類
○ 按義山房中曲 歸來已不見 錦瑟長於人 此詩寓意略同 是以錦瑟起興 非專賦錦瑟也
劉貢父詩話云 錦瑟當時貴人愛姬之名 或遂實以令狐楚靑衣說 尤誣妄 當亟正之 - 淸 朱鶴齡, 《李義山詩集注》 卷1上
瑟本二十五弦 弦斷而爲五十弦矣 故曰無端也取斷弦之意也
必其婉弱多病 故云然也 - 淸 朱彛尊, 《李義山詩集輯評》에서 인용
首特借素女鼓五十之瑟 而悲 泰帝禁 不可止 以發端 言悲思之情 有不可得而止者
但云生平不喜 義山詩意爲詞掩 却所未喩 - 淸 蔣維鈞, 《義門讀書記》 卷上
[集評]○ 《緗素雜記》(宋 黃朝英 撰)에 “義山(李商隱)의 〈금슬〉 시에
‘錦瑟無端五十絃 一絃一柱思華年 莊生曉夢迷胡蝶 望帝春心托杜鵑
滄海月明珠有淚 藍田日暖玉生煙 此情可待成追憶 只是當時已惘然’이라 하였는데,
山谷道人(황정견)이 이 시를 읽고 그 뜻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후에 東坡(소식)에게 물으니 동파가 ‘이는 《古今樂志》에 「금슬이란 악기는 그 현이 50줄이고, 그 받침대도 이와 같은데 그 소리가 適‧怨‧淸‧和하다.」라고 한 것이다.
李商隱의 시를 보자면 「莊生曉夢迷胡蝶」은 適이요, 「帝春心托杜鵑」은 怨이요, 「滄海月明珠有淚」는 淸이요, 「藍田日暖玉生煙」은 和이다.’라고 하였다.
시 한 편에 그 뜻을 곡진히 다하였으니
이 참으로 옳다.
劉攽이 《劉貢父詩話》에서 금슬은 당시 귀인의 애첩 이름인데 의산이 이를 우의한 것이라고 한 것은 잘못이다.”라고 하였다.
○ 《緗素雜記》에 “동파가 가운데 네 구는 適‧怨‧淸‧和하다고 했다.”라고 하였다.
전인들이 琴‧阮筝‧琵琶 등을 읊은 시는 율시가 적고 고시가 많은데, 대개 비유한 것이다.
○ 義山(李商隱)의 〈房中曲〉에 ‘돌아와도 보이지 않고, 錦瑟만이 사람보다 오래 남아 있다.[歸來已不見 錦瑟長於人]’라는 구절이 있으니 이 시의 우의와 비슷한데, 이는 금슬로 흥을 일으킨 것이지 오로지 금슬을 노래한 것은 아니다.
《緗素雜記》에서 東坡(소식)의 ‘適怨淸和’ 설을 가져왔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가탁한 것이 아닌가 한다.
《劉貢父詩話》에 금슬이 당시 貴人의 애첩 이름이라 하고, 혹자는 令狐楚의 애첩이라는 설을 실증하였지만, 이는 더욱 허무맹랑하니 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망자가 금슬을 즐겨 탔던 것을 생각했기에, 그 물건을 보자 그 사람이 생각났고, 이어서 사물에 의탁해 흥을 일으킨 것이다.
瑟은 본래 25현인데, 현이 끊어지면 50현이 되므로, ‘無端’이라 하여 끊어진 현의 뜻을 취하였다.
‘一弦一柱’에 ‘思華年’으로 이은 것은 25세에 죽었기 때문이다.
胡蝶과 杜鵑은 이미 화하여 가버렸음을 말한다.
‘珠有淚’는 곡하다, ‘玉生煙’은 이미 장사지냈다는 말이니, 미녀를 장사지냈다는 것과 같다.
이러한 마음이 어찌 지금에 와서 추억한 것이겠는가.
이는 살아 있었을 때에 이미 이렇게 되리라고 늘 생각하고, 미리 그 때문에 망연했던 것이다.
분명 완약하고 병치레가 잦았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첫 구는 특별히 素女가 50현의 瑟을 연주하는데 슬퍼서 泰帝가 금하여도 그치지 않았다는 고사를 빌려와 시작으로 삼아 슬픈 정회가 그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다음으로는 이어서 갑자기 異物로 변함을 슬퍼한 것이고, 그 다음은 또 다시는 무덤에서 나올 수 없음을 슬퍼한 것이다.
‘思華年’, ‘追憶’이라고 하여 그 뜻이 분명한데, 무슨 이유로 분분히 견강부회하는가.
錢飮光도 도망시라고 하였으니, 내 의견과 부합한다.
‘莊生曉夢迷胡蝶’ 구는 ‘
’에서 뜻을 취하였다.
다만 일생이 불우하여 李義山 시의 뜻은 말에 가려졌다고 하는데, 오히려 깨닫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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