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頎(690~751?)
潁陽(지금의 河南省 登封縣) 사람으로, 개원 23년(735)에 진사에 급제한 후 新鄕縣尉를 지내고 오래지 않아 승직하였으나 관직을 그만두고 은거하였다.
그의 邊塞詩 및 음악을 묘사한 시, 인물을 형상화한 장편의 贈別詩 등은 모두 매우 특색 있는 것으로서 격앙되고 강개하며 예술적인 감화력이 풍부하다. 그는 五言 古詩와 七言 歌行에 특장이 있었으며, 칠언 율시는 비록 몇 편 남아 있지 않지만 이를 살펴보면 기세가 넘쳐남을 알 수 있다.
교유의 폭이 넓어 王維, 綦毋潛, 高適, 王昌齡 등과 唱和하기도 하였다.
《全唐詩》에 그의 詩 3권이 전한다. 《당시삼백수》에 수록된 작품으로 〈古意〉 〈送陳章甫〉 〈琴歌〉 〈聽董大彈胡笳聲兼寄語弄房給事〉 〈聽安萬善吹篳篥歌〉 〈古從軍行〉 〈送魏萬之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