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集評]○ 李華弔古戰場文曰 其存其沒 家莫聞知 人或有言 蓋將信疑 悁悁心目 夢寐見之
陳陶則云 可憐無定河邊骨 猶是春閨夢裏人 蓋工於前也 - 宋 胡仔, 《苕溪漁隱叢話前集》 卷18
○ 此詩不減盛唐 第格力稍下耳 - 明 陸時雍, 《唐詩鏡》 卷51 晩唐第3
○ 譚云 取其苦想 - 明 譚元春, 《唐詩歸》 卷34 晩唐二
惜爲前二句所累 筋骨畢露 令人厭憎 - 明 王世貞, 《藝苑卮言》 增補藝苑巵言 卷3
○ 漢賈捐之議罷珠崖疏云 父戰死於前 子鬭傷於後 女子乘亭鄣 孤兒號於道 老母寡婦飮泣巷哭 遙設虛祭 想魂乎萬里之外
總不若陳陶詩云 誓掃匈奴不顧身 五千貂錦喪胡塵 可憐無定河邊骨 猶是春閨夢裏人
一變而妙 眞奪胎換骨矣 - 明 楊慎, 《丹鉛總録》 卷11, 〈李華文陳陶詩〉
○ 隴西行曰 可憐無定河邊骨 猶是春閨夢裏人 此語悽婉味長 嚴滄浪謂陶最無可觀 何也 - 明 謝榛, 《四溟詩話》 卷2
흉노를 소탕하리라 맹세하며 몸을 돌보지 않더니
[集評]○ 李华의 〈弔古戰場文〉에 “살았는지 죽었는지 집에서는 소식조차 알 수 없어, 인편에 간혹 소식이 있어도 반신반의하여 마음과 눈에 연연하여 자나 깨나 그를 그리워한다.”라고 하였다.
陳陶의 시에 ‘可憐無定河邊骨 猶是春閨夢裏人’이라고 한 것이 앞의 것보다 공교롭다.
○ 이 시는 盛唐詩보다 못하지 않지만, 다만 시문의 格調와 氣勢가 조금 낮을 뿐이다.
○ 譚元春은 말한다. “고달픈 뜻을 취한 것이다.”
○ ‘可憐無定河邊骨 猶是深閨夢裏人’은 뜻이 공교하면서도 묘하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렀으니 절창이라 부를 만하다.
앞의 두 구에 얽매여서, 筋骨(중요한 내용)이 다 드러난 것이 안타까우니 사람으로 하여금 염증이 나게 한다.
○ 漢 賈捐之의 〈議罷珠崖疏〉에 “예전에 아버지가 전사하더니, 후에 아들은 싸우다 다쳤다. 여자들은 변새의 보루에 오르고, 고아들은 길에서 울부짖으며, 노모와 과부들은 눈물을 머금고 길에서 곡하면서 멀리 虛祭를 지내며 만 리 밖의 혼을 생각한다.”라고 하였다.
《後漢書》의 〈南匈奴傳〉과 唐 李華의 〈弔古戰場文〉은 이 말의 뜻을 온전히 사용하였지만,
모두 陳陶의 詩 “誓掃匈奴不顧身 五千貂錦喪胡塵 可憐無定河邊骨 猶是春閨夢裏人”만 못하다.
일변하여 오묘해졌으니 참으로 환골탈태라 하겠다.
○ 〈隴西行〉에 ‘可憐無定河邊骨 猶是春閨夢裏人’이라고 하였으니, 이 말은 悽婉하고 여운이 긴데, 嚴滄浪(嚴羽)이 진도의 시가 가장 볼 만한 것이 없다고 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1
309 농서행
6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