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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3)

당시삼백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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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서행〉
진도
誓掃不顧身
흉노를 소탕하리라 맹세하며 몸을 돌보지 않더니
五千
오천의 정예병 오랑캐 땅에서 죽었구나
可憐邊骨
가련타 無定河 강가의 백골
猶是夢裏人
여전히 깊은 규방의 꿈속 사람인 것을
[通釋]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흉노를 다 쓸어버리겠다고 맹세하던 수많은 정예병들은 오랑캐 땅에서 죽었다. 그들은 이미 無定河가에 뒹구는 백골이 되었건만, 그들의 아내들은 이를 모르고 꿈속에서 그들을 만나니, 가련하다.
[解題] 唐代 安史의 亂 이후, 국력은 쇠약해지고 변방의 여러 이민족들은 끊임없이 침략해 와 전쟁이 그치질 않았다. 따라서 변방을 지키는 수많은 병사의 희생과 그 아내들의 독수공방은 일상화된 모습이었다. 이 시는 이러한 상황을 악부의 옛 제목에 붙여 지은 작품으로, 모두 4수이지만 여기에는 제2수만 실려 있다.
첫 구는 ‘誓掃’, ‘不顧身’ 등 병사의 용맹스런 기개를 찬양하여 悲壯美가 드러나고, 2구는 1구에서 찬양한 병사들의 죽음을 그려냄으로써 전쟁의 참혹함을 표현하였다. 앞의 두 구에서 드러나는 비극적인 분위기는 후반부의 규중 여인의 그리움을 표현하기 위한 포석이 된다. 3구의 ‘可憐’은 앞의 두 구와 긴밀하게 이어지는데 無定河가에서 뒹구는 백골로 죽은 병사들의 모습을 묘사하였고, 4구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아내들이 여전히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말하였다. 특히 4구의 ‘猶是’는 전환의 기능을 하는데, 병사들이 3구에선 현실의 모습인 처량한 해골이라면, 4구에서는 꿈속의 젊고 용맹한 전사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러한 배치는 비극적 정서가 점점 고조되는 역할을 한다.
이 시는 전쟁을 정면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규중 여인의 꿈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백성들의 괴로운 삶을 남김 없이 보여주었다. 이로 인해 ‘絶唱’이라 불렸으며, 陳陶도 이 시로 인해 이름이 전해지게 되었다.
혹자들은 이 시가 李陵의 일을 읊은 것이라고 본다. 이릉은 漢 武帝 때의 사람으로 병사 오천을 거느리고 浚稽山에서 흉노와 수없이 전쟁을 치른 인물인데, 병사들이 다 죽고 구원병이 없자 이에 전멸하고 말았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이 시를 한 무제의 경솔한 군사 이동을 기롱한 것이라고 본다.
나머지 3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漢主가 동쪽을 봉해 태평을 알리고, 사람 없는 금궐에선 변방의 군무를 의논하네. 마음대로 林胡의 변새 땅을 빼앗더라도, 척박한 땅이라 桑麻는 심어도 나지 않는다.[漢主東封報太平 無人金闕議邊兵 縱饒奪得林胡塞 磧地桑麻種不生]”(제1수)
“隴 땅의 나무 변새 풀이 푸르름을 세 번 보았더니, 樓煩이 새롭게 들어와 羗兵을 비호하네. 함께 와서 죽은 자는 이별에 아파하고, 이 밤 외로운 혼백은 옛 군영을 곡한다.[隴樹三看塞草靑 樓煩新替護羗兵 同來死者傷離別 一夜孤魂哭舊營]”(제3수)
“교활한 적 생포해도 끝이 없으니, 흑산의 군영 뛰어난 인물임을 알겠다. 그들의 왕과 화친한 후에는, 절반의 오랑캐 풍속 漢家를 닮아가네.[黠虜生擒未有涯 黑山營陣識龍蛇 自從貴主和親後 一半胡風似漢家]”(제4수)
[集評]○ 李華弔古戰場文曰 其存其沒 家莫聞知 人或有言 蓋將信疑 悁悁心目 夢寐見之
[集評]○ 李华의 〈弔古戰場文〉에 “살았는지 죽었는지 집에서는 소식조차 알 수 없어, 인편에 간혹 소식이 있어도 반신반의하여 마음과 눈에 연연하여 자나 깨나 그를 그리워한다.”라고 하였다.
陳陶則云 可憐無定河邊骨 猶是春閨夢裏人 蓋工於前也 - 宋 胡仔, 《苕溪漁隱叢話前集》 卷18
陳陶의 시에 ‘可憐無定河邊骨 猶是春閨夢裏人’이라고 한 것이 앞의 것보다 공교롭다.
○ 此詩不減盛唐 第格力稍下耳 - 明 陸時雍, 《唐詩鏡》 卷51 晩唐第3
○ 이 시는 盛唐詩보다 못하지 않지만, 다만 시문의 格調와 氣勢가 조금 낮을 뿐이다.
○ 譚云 取其苦想 - 明 譚元春, 《唐詩歸》 卷34 晩唐二
○ 譚元春은 말한다. “고달픈 뜻을 취한 것이다.”
○ 可憐無定河邊骨 猶是深閨夢裏人 用意工妙
○ ‘可憐無定河邊骨 猶是深閨夢裏人’은 뜻이 공교하면서도 묘하다.
至此可謂絶唱矣
이러한 경지에 이르렀으니 절창이라 부를 만하다.
惜爲前二句所累 筋骨畢露 令人厭憎 - 明 王世貞, 《藝苑卮言》 增補藝苑巵言 卷3
앞의 두 구에 얽매여서, 筋骨(중요한 내용)이 다 드러난 것이 안타까우니 사람으로 하여금 염증이 나게 한다.
○ 漢賈捐之議罷珠崖疏云 父戰死於前 子鬭傷於後 女子乘亭鄣 孤兒號於道 老母寡婦飮泣巷哭 遙設虛祭 想魂乎萬里之外
○ 漢 賈捐之의 〈議罷珠崖疏〉에 “예전에 아버지가 전사하더니, 후에 아들은 싸우다 다쳤다. 여자들은 변새의 보루에 오르고, 고아들은 길에서 울부짖으며, 노모와 과부들은 눈물을 머금고 길에서 곡하면서 멀리 虛祭를 지내며 만 리 밖의 혼을 생각한다.”라고 하였다.
後漢南匈奴傳唐李華弔古戰場文 全用其語意
《後漢書》의 〈南匈奴傳〉과 唐 李華의 〈弔古戰場文〉은 이 말의 뜻을 온전히 사용하였지만,
總不若陳陶詩云 誓掃匈奴不顧身 五千貂錦喪胡塵 可憐無定河邊骨 猶是春閨夢裏人
모두 陳陶의 詩 “誓掃匈奴不顧身 五千貂錦喪胡塵 可憐無定河邊骨 猶是春閨夢裏人”만 못하다.
一變而妙 眞奪胎換骨矣 - 明 楊慎, 《丹鉛總録》 卷11, 〈李華文陳陶詩〉
일변하여 오묘해졌으니 참으로 환골탈태라 하겠다.
○ 隴西行曰 可憐無定河邊骨 猶是春閨夢裏人 此語悽婉味長 嚴滄浪謂陶最無可觀 何也 - 明 謝榛, 《四溟詩話》 卷2
○ 〈隴西行〉에 ‘可憐無定河邊骨 猶是春閨夢裏人’이라고 하였으니, 이 말은 悽婉하고 여운이 긴데, 嚴滄浪(嚴羽)이 진도의 시가 가장 볼 만한 것이 없다고 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역주
역주1 隴西行 : 樂府의 옛 제목으로 〈步出夏門行〉이라고도 하며, 《相和歌》의 〈瑟調曲〉에 속한다. 본래 “부인이 단장하고 문에서 손님을 맞는다.[婦有容色 能應門承賓]”는 내용이었는데, 梁 簡文帝 때부터 ‘고달픈 전쟁과 情人에 대한 그리움’을 주제로 삼았다. ‘隴西’는 지금의 甘肅省 寧夏回族自治區 일대를 말한다.
역주2 陳陶 : 자는 嵩伯으로, 嶺南(또는 鄱陽, 劍浦) 사람이다. 오랫동안 진사에 합격하지 못하였는데, 후에 명산대천을 유람하며 스스로 ‘三敎布衣’라고 하였다. 宣宗 大中 연간에 난리를 피하여 洪州 西山(지금의 江西省 南昌市 新建縣)에 은거하였다. 詩 10권이 있었다고 하나 逸失되었고, 후인들이 모은 《陈嵩伯诗集》 1권이 있다. 《全唐詩》에 시 2권이 수록되어 있다.
역주3 匈奴 : 秦漢時代 때 북방의 소수민족을 일컫는 말이나, 여기서는 당나라 때 서북 지역을 침략하던 소수민족을 지칭한다.
역주4 貂錦 : ‘貂錦’은 漢代 羽林軍이 착용했던 담비가죽으로 만든 갖옷[貂裘]과 비단옷[錦衣]이다. 여기서는 선택된 정예병을 말한다.
역주5 胡塵 : 서북 소수민족의 거주지를 뜻한다.
역주6 無定河 : 內蒙古 지역에서 발원하여 동으로 陝西省을 거쳐 黃河로 흘러 들어간다. 《一統志》에 “無定河는 변외로부터 흘러 陝西省 楡林府 懷遠縣 북쪽을 지나 서남쪽으로 米脂縣을 거치고 또 동남으로 흘러가 淸澗縣 동북쪽을 지나 황하로 들어간다. 일명 奢延河라고 하며, 무너져 내린 모래가 급히 흐르고 깊고 얕음이 일정하지 않아 無定이라 부른다.”라고 하였다.
역주7 深閨 : ‘春閨’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여기서는 출정한 병사들의 아내가 머무는 거처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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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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