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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2)

당시삼백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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溫庭筠
[集評]○ 甲帳 丁年 甚工 亦近義山體 - 元 方回, 《瀛奎律髓》 卷28
○ 三四卽用子卿事 点綴景物 與他手不同 - 淸 査愼行, 《瀛奎律髓彙評》 卷28
○ 五六不但工致 正逼出落句 落句自傷 - 淸 何焯, 《義門讀書記》
○ 五六與此日六軍同駐馬 一聯 俱屬逆挽法 律詩得此 化板滯爲跳脫矣 - 淸 沈德潛, 《唐詩別裁集》 卷15


〈蘇武의 사당에서〉
온정균
소무의 혼백 한나라 사신 앞에서 흩어졌는데
옛 사당과 높은 나무는 모두 무심하기만
구름 끝의 기러기는 오랑캐 하늘에서 사라지고
언덕 위의 양들은 변방 草地로 돌아오네
고국으로 돌아오던 날 누대는 甲帳이 아니고
떠나던 때 관모와 칼은 청년의 것이었지
漢 武帝는 封侯印을 보지 못했으니
가을날 부질없이 흐르는 내에 곡하노라


역주
역주1 蘇武廟 : 蘇武를 위하여 지은 사당인데 구체적인 위치는 알 수 없지만 長安 부근이라 추정된다. 소무는 漢 杜陵(지금의 陝西省 西安市 남쪽) 사람으로 字가 子卿이다. 漢 武帝 天漢 元年(A.D. 100), 中郞將으로서 匈奴에 사신 갔다가 억류당해 한나라로 돌아오지 못했다. 單于가 항복하라고 협박했으나 굴복하지 않아 北海(지금의 바이칼호)로 추방당하여, 그곳에서 양을 치며 艱苦한 삶을 살았지만 19년이나 節操를 굽히지 않았다. 昭帝 때 匈奴가 漢나라와 和親하고서야 비로소 풀려나 고국으로 돌아왔고, 당시 소수민족의 일을 관장하던 典屬國에 임명되었다.
역주2 蘇武魂銷漢使前 : 魂魄이 녹아서 흩어진다는 뜻으로, 激動하여 슬픔에 상심함을 이른다. ‘漢使’는 漢 昭帝 때 흉노에 파견되었던 사신을 가리킨다.
역주3 古祠高樹兩茫然 : ‘古祠’는 蘇武廟를 지칭한다. ‘茫然’은 완전히 무심한 모양이다.
역주4 雲邊雁斷胡天月 : ‘雁斷’은 蘇武가 억류당하여 소식이 끊어졌음을 의미한다. 한 소제 때 한나라 사신이 흉노에 이르러 소무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는데, 선우는 소무가 이미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常惠가 한나라 사신을 시켜 선우에게 “한나라 천자께서 上林苑에서 사냥을 하시는데 기러기 발에 묶여 있는 소무의 편지를 발견했고, 거기에 그가 어떤 못에 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라고 말하게 하자, 선우가 할 수 없이 소무가 아직 살아 있음을 시인하고 그를 풀어 보내주었다. 이것이 훗날 기러기 발에 편지를 묶어 보낸다는 典故가 되었다. ‘胡天’은 흉노를 가리킨다.
역주5 隴上羊歸塞草煙 : ‘隴上’은 산언덕의 위를 말한다. ‘塞’는 변방이고, ‘煙’은 안개와 노을이다. 이 구절은 소무가 흉노에 있을 때 고생하며 지냈던 일을 가리킨다. 소무와 漢나라 사이에 소식이 일찍이 끊어진 후, 그가 放牧하던 양떼가 변방의 안개와 노을이 자욱한 저녁에 돌아옴을 묘사한 것이다.
역주6 迴日樓臺非甲帳 : ‘迴日’은 한나라로 돌아오던 때를 말한다. ‘甲帳’은 한 무제가 지은 장막이다. 《漢武故事》에 “한 무제가 琉璃와 珠玉, 明月 夜光珠로써 천하의 진귀한 보물들과 한데 섞어 甲帳을 만들고, 그 다음으로 乙帳을 만들어서 甲帳에는 神을 거처하게 하고 乙帳에는 그 자신이 거처하였다.[漢武帝以琉璃珠玉 明月夜光 錯雜天下珍寶爲甲帳 其次爲乙帳 甲以居神 乙以自居]”고 하였다. ‘非甲帳’은 한 무제가 이미 죽었기 때문에 宮室이 옛날과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일설에는 ‘甲帳’을 甲第로 보아 고관대작들의 저택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역주7 去時冠劍是丁年 : ‘去時’는 소무가 한나라를 떠나 흉노로 사신 갔을 때를 말한다. ‘丁年’은 壯年의 뜻이다. 李陵의 〈答蘇武書〉에 “丁年에 사신을 갔는데 백발이 되어 돌아왔다.[丁年奉使 皓首而歸]”고 하였다.
역주8 茂陵不見封侯印 : ‘武陵’은 한 무제의 陵墓로 지금의 陝西省 興平縣 동북에 있다. 여기서는 한 무제를 지칭한다. 소무가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한 무제가 이미 죽은 후라서 封侯의 작위를 그에게 줄 수 없었고, 漢 宣帝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關內侯에 봉해지고 食邑 300호를 받았다.
역주9 空向秋波哭逝川 : ‘秋波’는 가을 물이다. ‘逝川’은 시간이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을 뜻한다. 《論語》 〈子罕〉에 “공자께서 냇가에 계시며 말씀하셨다.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그치지 않는도다.’[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라고 하였다.
역주10 이날엔……비웃었다 : 이 구절은 李商隱의 〈馬嵬〉 시의 5‧6구로 詩 全文은 다음과 같다. “바다 밖에 또 九州가 있다는 말 헛되이 전하지만, 저승의 삶은 점칠 수 없고 이승의 삶은 끝났네. 禁軍이 치는 딱따기 소리만 들려올 뿐, 새벽을 알리는 鷄人은 다시 없네. 이날엔 모든 군사 함께 말을 멈추었지만, 당시엔 七夕에 견우를 비웃었다. 어찌하여 사십여 년 천자로 있었으면서도, 莫愁를 지켜주었던 盧氏 집만도 못한가.[海外徒聞更九州 他生未卜此生休 空聞虎旅傳宵柝 無復鷄人報曉籌 此日六軍同駐馬 當時七夕笑牽牛 如何四紀爲天子 不及盧家有莫愁]”
역주11 逆挽法 : 윗구와 긴밀하게 연결이 되면서도 시간의 순서를 넘어서 다음 구절의 새로운 시상을 이끌어내는 기법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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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20 소무묘 173

당시삼백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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