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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2)

당시삼백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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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蘇武의 사당에서〉
溫庭筠
온정균
소무의 혼백 한나라 사신 앞에서 흩어졌는데
옛 사당과 높은 나무는 모두 무심하기만
구름 끝의 기러기는 오랑캐 하늘에서 사라지고
언덕 위의 양들은 변방 草地로 돌아오네
고국으로 돌아오던 날 누대는 甲帳이 아니고
떠나던 때 관모와 칼은 청년의 것이었지
漢 武帝는 封侯印을 보지 못했으니
가을날 부질없이 흐르는 내에 곡하노라
[通釋] 蘇武가 그 당시 자신을 데리러 온 漢나라 使臣을 보았을 때는 온갖 생각이 일어나 넋이 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를 모셔둔 사당과 그 주변의 큰 나무들은 소무의 그런 고단했던 삶과 복잡한 마음을 전혀 알지 못하는 듯 무심하게 서 있다. 소식을 전하기 위해 구름 가까이 나는 기러기는 달이 떠 있는 저 북쪽 胡 땅으로 더 이상 오지 않았다. 漢나라에서 아무런 소식도 오지 않았기에, 소무는 안개 낀 변방의 草原에서 양을 치며 언덕을 넘어 돌아오곤 했다. 19년의 세월을 흉노 땅에서 보내고 漢나라로 돌아오던 날, 그를 그곳으로 사신 보냈던 漢 武帝는 죽고 없었다. 그가 와서 본 누대는 그가 오랑캐 땅으로 떠날 때 보았던 한 무제의 궁실이 아니었다. 胡 땅으로 사신을 떠날 당시 소무는 머리에 冠을 쓰고 허리에는 칼을 찬, 한창 때의 당당한 청년이었다. 이제 돌아왔어도 한 무제는 그를 볼 수도, 그에게 封爵을 내릴 수도 없게 되었으니, 그저 가을의 江을 보면서 무상하게 지나가는 세월과 같은 강물에 눈물을 떨구기만 할 뿐이다.
[解題] 이 작품은 漢 武帝 때 匈奴로 使臣을 가서 억류당한 채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節操를 굽히지 않으며 힘겨운 삶을 살았던 蘇武를 읊은 懷古詩이다.
1‧2구에서는 古今의 상황을 대조적으로 말하여 시간‧공간상의 거리를 가까이 당겨놓았는데, 이것이 읽는 이로 하여금 더욱 茫然한 느낌을 갖게 한다. 3‧4구는 소무가 억류되었던 사실, 한나라 조정으로부터 소식이 끊긴 것, 변경 멀리에서 양을 치며 힘겹게 살았던 정황을 직접적으로 서술했다. 5‧6구는 人事의 變遷을 말하되, 시간의 역순으로 사건을 배열하였다. 소무가 귀국해서 보고 느낀 것을 먼저 쓰고 청장년 시절 흉노로 떠났던 일을 나중에 말하였는데, 생경하면서도 창조성이 두드러진 표현이라는 평을 듣는다. 7‧8구는 역사적 사실을 추측하면서 깊은 感慨로 결말을 지었다. 마지막 구는 重意的이라 하겠는데, 소무를 슬퍼하며 우는 것이기도 하고 또한 시인 자신의 시대를 슬퍼하는 것이기도 하다.
晩唐 시절 국력이 쇠퇴하자, 사람들은 굴하지 않는 忠貞을 노래하는 시를 통하여 충심이 激發되기를 원했다. 杜牧의 시 〈河湟〉에서 “양을 치고 말을 몰며 비록 오랑캐 옷 입었지만, 白髮의 丹心은 모두 漢나라 신하의 것이라오.[牧羊驅馬雖戎服 白髮丹心盡漢臣]”라고 한 것이 그런 예이다. 온정균의 〈소무묘〉 역시 白髮의 丹心을 지닌 漢나라 신하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集評]○ 甲帳 丁年 甚工 亦近義山體 - 元 方回, 《瀛奎律髓》 卷28
[集評]○ ‘甲帳’과 ‘丁年’은 매우 정교한 표현이며, 또한 義山(李商隱)의 詩體에 가깝다.
○ 三四卽用子卿事 点綴景物 與他手不同 - 淸 査愼行, 《瀛奎律髓彙評》 卷28
○ 3‧4구는 子卿(蘇武)의 일을 썼는데, 景物을 선택하여 엮은 것이 다른 시인의 솜씨와는 같지 않다.
○ 五六不但工致 正逼出落句 落句自傷 - 淸 何焯, 《義門讀書記》
○ 5‧6구는 정교하고 섬세할 뿐만 아니라 7‧8구를 핍진하게 드러냈다. 7‧8구는 자신을 슬퍼한 것이다.
○ 五六與此日六軍同駐馬 一聯 俱屬逆挽法 律詩得此 化板滯爲跳脫矣 - 淸 沈德潛, 《唐詩別裁集》 卷15
○ 5‧6구는 ‘[此日六軍同駐馬 當時七夕笑牽牛]’ 1련과 더불어 모두 에 속한다. 律詩가 이런 경지에 이르렀다면 틀에 박힌 형식을 변화시켜 그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역주
역주1 蘇武廟 : 蘇武를 위하여 지은 사당인데 구체적인 위치는 알 수 없지만 長安 부근이라 추정된다. 소무는 漢 杜陵(지금의 陝西省 西安市 남쪽) 사람으로 字가 子卿이다. 漢 武帝 天漢 元年(A.D. 100), 中郞將으로서 匈奴에 사신 갔다가 억류당해 한나라로 돌아오지 못했다. 單于가 항복하라고 협박했으나 굴복하지 않아 北海(지금의 바이칼호)로 추방당하여, 그곳에서 양을 치며 艱苦한 삶을 살았지만 19년이나 節操를 굽히지 않았다. 昭帝 때 匈奴가 漢나라와 和親하고서야 비로소 풀려나 고국으로 돌아왔고, 당시 소수민족의 일을 관장하던 典屬國에 임명되었다.
역주2 蘇武魂銷漢使前 : 魂魄이 녹아서 흩어진다는 뜻으로, 激動하여 슬픔에 상심함을 이른다. ‘漢使’는 漢 昭帝 때 흉노에 파견되었던 사신을 가리킨다.
역주3 古祠高樹兩茫然 : ‘古祠’는 蘇武廟를 지칭한다. ‘茫然’은 완전히 무심한 모양이다.
역주4 雲邊雁斷胡天月 : ‘雁斷’은 蘇武가 억류당하여 소식이 끊어졌음을 의미한다. 한 소제 때 한나라 사신이 흉노에 이르러 소무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는데, 선우는 소무가 이미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常惠가 한나라 사신을 시켜 선우에게 “한나라 천자께서 上林苑에서 사냥을 하시는데 기러기 발에 묶여 있는 소무의 편지를 발견했고, 거기에 그가 어떤 못에 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라고 말하게 하자, 선우가 할 수 없이 소무가 아직 살아 있음을 시인하고 그를 풀어 보내주었다. 이것이 훗날 기러기 발에 편지를 묶어 보낸다는 典故가 되었다. ‘胡天’은 흉노를 가리킨다.
역주5 隴上羊歸塞草煙 : ‘隴上’은 산언덕의 위를 말한다. ‘塞’는 변방이고, ‘煙’은 안개와 노을이다. 이 구절은 소무가 흉노에 있을 때 고생하며 지냈던 일을 가리킨다. 소무와 漢나라 사이에 소식이 일찍이 끊어진 후, 그가 放牧하던 양떼가 변방의 안개와 노을이 자욱한 저녁에 돌아옴을 묘사한 것이다.
역주6 迴日樓臺非甲帳 : ‘迴日’은 한나라로 돌아오던 때를 말한다. ‘甲帳’은 한 무제가 지은 장막이다. 《漢武故事》에 “한 무제가 琉璃와 珠玉, 明月 夜光珠로써 천하의 진귀한 보물들과 한데 섞어 甲帳을 만들고, 그 다음으로 乙帳을 만들어서 甲帳에는 神을 거처하게 하고 乙帳에는 그 자신이 거처하였다.[漢武帝以琉璃珠玉 明月夜光 錯雜天下珍寶爲甲帳 其次爲乙帳 甲以居神 乙以自居]”고 하였다. ‘非甲帳’은 한 무제가 이미 죽었기 때문에 宮室이 옛날과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일설에는 ‘甲帳’을 甲第로 보아 고관대작들의 저택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역주7 去時冠劍是丁年 : ‘去時’는 소무가 한나라를 떠나 흉노로 사신 갔을 때를 말한다. ‘丁年’은 壯年의 뜻이다. 李陵의 〈答蘇武書〉에 “丁年에 사신을 갔는데 백발이 되어 돌아왔다.[丁年奉使 皓首而歸]”고 하였다.
역주8 茂陵不見封侯印 : ‘武陵’은 한 무제의 陵墓로 지금의 陝西省 興平縣 동북에 있다. 여기서는 한 무제를 지칭한다. 소무가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한 무제가 이미 죽은 후라서 封侯의 작위를 그에게 줄 수 없었고, 漢 宣帝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關內侯에 봉해지고 食邑 300호를 받았다.
역주9 空向秋波哭逝川 : ‘秋波’는 가을 물이다. ‘逝川’은 시간이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을 뜻한다. 《論語》 〈子罕〉에 “공자께서 냇가에 계시며 말씀하셨다.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그치지 않는도다.’[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라고 하였다.
역주10 이날엔……비웃었다 : 이 구절은 李商隱의 〈馬嵬〉 시의 5‧6구로 詩 全文은 다음과 같다. “바다 밖에 또 九州가 있다는 말 헛되이 전하지만, 저승의 삶은 점칠 수 없고 이승의 삶은 끝났네. 禁軍이 치는 딱따기 소리만 들려올 뿐, 새벽을 알리는 鷄人은 다시 없네. 이날엔 모든 군사 함께 말을 멈추었지만, 당시엔 七夕에 견우를 비웃었다. 어찌하여 사십여 년 천자로 있었으면서도, 莫愁를 지켜주었던 盧氏 집만도 못한가.[海外徒聞更九州 他生未卜此生休 空聞虎旅傳宵柝 無復鷄人報曉籌 此日六軍同駐馬 當時七夕笑牽牛 如何四紀爲天子 不及盧家有莫愁]”
역주11 逆挽法 : 윗구와 긴밀하게 연결이 되면서도 시간의 순서를 넘어서 다음 구절의 새로운 시상을 이끌어내는 기법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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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20 소무묘 173

당시삼백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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