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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1)

당시삼백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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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中道士〉
韋應物
今朝
忽念山中客
澗底束荊薪
歸來
欲持一瓢酒
遠慰風雨夕
落葉滿空山
何處尋行跡
[集評] ○ 韋蘇州詩云 落葉滿空山 何處尋行跡 東坡用其韻曰 寄語庵中人 飛空本無迹 此非才不逮 蓋絶唱不當和也 - 宋 許顗, 《彦周詩話》
○ 化工筆 與淵明 采菊東籬下 悠然見南山 妙處不關言語意思 - 淸 沈德潛, 《唐詩別裁集》 卷3
○ 寄全椒山中道士一作 東坡刻意學之而終不似 盖東坡用力 韋公不用力 東坡尙意 韋公不尙意 微妙之詣也 - 淸 施補華, 《峴傭說詩》


〈전초산의 도사에게 부치다〉
위응물
오늘 아침 관사가 싸늘하여
문득 산에 있는 사람 떠올렸네
계곡물 밑에서 땔나무 묶어
돌아와서는 흰 돌 삶고 있겠지
술 한 병 가지고
멀리 가 비바람 치는 밤 위로하고 싶은데
낙엽이 빈산에 가득하니
어디서 발자취 찾을 수 있을까
[集評] 韋蘇州(위응물) 시에, “낙엽이 빈산에 가득하니, 어디서 발자취 찾을 수 있을까.[落葉滿空山 何處尋行跡]”라 하였는데, 동파가 그 韻을 써서 “초막에 있는 사람에게 말을 전하고자 하나, 허공을 날아다녀 본래 자취가 없구나.[寄語庵中人 飛空本無迹]”라 하였다. 이는 재주가 미치지 못해서가 아니요, 대개 絶唱은 和韻하는 데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물주의 필법이다. 도연명의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 따다가, 아득히 남산이 바라보이네[采菊東籬下 悠然見南山]”라는 것과 더불어 오묘한 곳은 언어나 意思와는 무관한 것이다.
〈寄全椒山中道士〉 한 편은 동파가 각별히 힘을 써서 배웠지만 끝내 닮지 못하였다. 대개 동파는 힘을 썼으나 위응물은 힘을 쓰지 않았고, 동파는 의도적인 것을 추구했으나 위응물은 의도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았기에 미묘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역주
역주1 全椒山 : 全椒縣에 있는 산 이름이다. 지금의 安徽省 全椒縣으로 唐나라 때에는 滁州에 속해 있었다. 《一統志》에, “滁州에 全椒縣이 있고 縣에는 산이 있는데 산에 있는 동굴이 아주 깊고 景物이 그윽하다. 唐나라 韋應物의 〈寄全椒山中道士〉라는 시는 바로 이곳을 말한다.[滁州有全椒縣 縣有山 山有洞極深 景物幽邃 唐韋應物寄全椒山中道士詩卽此]”라는 기록이 있다.
역주2 郡齋 : 滁州刺史의 官署 가운데 學舍나 書齋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역주3 煮白石 : 흰 돌은 전설에서 神仙이 먹는 음식이다. 劉向의 《列仙傳》 〈白石生〉에, “白石生은 中黃丈人의 제자로 彭祖 때 이미 2,000살 정도였다. 날아다니는 걸 좋아하지는 않고 다만 長生을 귀하게 여겼으며 흰 돌을 삶아 식량으로 삼았다 …… 白石山에 가서 살았으므로 白石生이라 한다.[白石生 中黃丈人弟子 彭祖時已二千餘歲 不愛飛昇 但以長生爲貴 嘗煮白石爲糧……因就白石山居 號白石生]”라는 기록이 보인다. 후에 ‘흰 돌을 삶다.[煮白石]’는 말은 道家의 修練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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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29 기전초산중도사 278

당시삼백수(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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