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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2)

당시삼백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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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遣悲懷 其一〉
無衣搜
他沽酒拔金釵
野蔬充膳甘
落葉添薪仰古槐
今日俸錢過十萬
[集評]○ 元公初娶京兆韋氏 字蕙叢 官未達而苦貧
繼室河東裴氏 字柔之 二夫人俱有才思 時彦以爲佳偶
初韋蕙叢卒 不勝其悲 爲詩悼之 - 唐 范攄, 《雲溪友議》


〈슬픈 마음을 풀어놓다 첫 번째 시〉
원진
謝公이 가장 아끼던 어린 딸
黔婁에게 시집온 후로는 만사가 어긋났네
옷이 없는 날 보고는 옷상자를 뒤지고
술 사달라 조르니 금비녀를 뽑았었지
채소로 반찬 만들고 콩잎도 달게 먹으며
낙엽을 땔감 대신하면서 오래된 홰나무 쳐다보았네
이제는 봉급으로 받는 돈 십만이 넘는데도
그대에겐 祭需 차리고 또 齋만 올릴 뿐이네
[集評]○ 元公(元稹)의 初娶인 京兆 韋氏는 字가 蕙叢이었는데 관직이 아직 현달하지 않아 가난한 삶을 견뎌야 했다.
繼室인 河東 裴氏는 字가 柔之였는데 두 부인이 모두 才思를 겸비하여, 당시 선비들이 훌륭한 배우자라고 여겼다.
초취인 위혜총이 卒하자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시를 지어 그녀를 애도하였다.


역주
역주1 元稹 : 779~831. 字는 微之, 河南(지금의 河南省 洛陽市) 사람이다. 排行이 아홉째인 까닭에 벗들이 모두 그를 元九라고 불렀다. 校書郞‧監察御史‧祠部郎中‧知制誥 등을 역임하였고, 唐 文宗 때 武昌軍節度使가 되었는데 任所에서 죽었다. 白居易와 함께 ‘元白’이라 불리며, 貞元부터 太和까지 30년 동안 詩歌의 通俗化, 大衆化를 제창하였는데, 이를 ‘元和體’라고 한다. 저서에 《元氏長慶集》이 있고, 《新唐書》와 《舊唐書》에 모두 傳이 있다.
역주2 謝公最小偏憐女 : 謝公이 가장 편애하였던 어린 딸이란 뜻으로, 자기 妻 韋蕙叢이 고귀한 가문의 출신이라는 것을 讚美하기 위해 《晉書》 〈列女傳〉에 나오는 謝道韞의 故事를 쓴 것이다. 東晉의 재상 謝安은 그의 姪女 謝道韞을 가장 아꼈다. 여기서는 장인인 韋夏卿을 謝安에 빗댄 것인데, 그는 벼슬이 太子少保에 이르렀고 死後에는 尙書左僕射에 추증되었다. 晉代에 王氏와 謝氏 두 집안은 지체 높은 가문이었다.
역주3 自嫁黔婁百事乖 : ‘自嫁’는 《全唐詩》에 ‘嫁與’라고 되어 있다. 黔婁는 춘추시대 齊나라의 高士로, 淸貧하면서도 지조와 절개가 있어 벼슬을 구하지 않았고, 그의 아내 역시 매우 어질었다. 여기서는 시인 자신을 검루에 빗댄 것이다.
역주4 顧我 : 나를 본다는 뜻이다.
역주5 藎篋 : 풀로 엮은 의복을 담는 상자를 가리킨다. ‘藎’은 풀 이름으로 줄기가 매우 가늘어서 그것을 엮어 器物을 만들 수 있다. ‘畫篋’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6 : ‘진흙’이란 뜻이지만, 여기서는 ‘조른다’는 의미이다.
역주7 長藿 : 기다란 콩잎을 말한다.
역주8 營奠復營齋 : ‘營’은 갖추어놓았다는 뜻이다. ‘奠’은 제사에 쓰이는 물품들을 말하고, ‘齋’는 승려를 불러다가 죽은 韋氏의 亡靈을 위해 복을 빌어준 의식을 가리킨다. ‘復’는 ‘又’의 뜻이다. 이제는 삶에 여유가 생겼으므로 할 수 있는 예의와 격식을 모두 갖추어 죽은 아내를 위로한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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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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