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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3)

당시삼백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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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回鄕
〈고향으로 돌아와 쓰다〉
하지장
少小老大回
젊어서 집을 떠나 아주 늙어 돌아오니
고향 사투리 여전한데 귀밑머리 세었네
兒童相見不相識
아이들은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問客從何處來
웃으며 묻네 손님은 어디서 오셨는지요
[通釋] 나는 젊어서 집을 떠났으나, 노인이 되어서야 고향에 돌아왔다. 아직까지 고향의 말씨는 바꾸지 못했는데, 양쪽 귀밑머리는 세월 따라 하얗게 세어버렸구나. 고향집의 아이들은 나를 보고도, 변해버린 모습 때문에 알아보지 못하고 웃으며 나에게 묻는다. “손님, 어디에서 오셨나요?”
[解題] 하지장의 〈回鄕偶書〉는 모두 두 수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시는 그중 첫 번째 시이며, 그 두 번째 시는 다음과 같다. “고향 집 떠난 뒤 긴 세월이 흘러, 근래의 人事 대부분 사라졌네. 오직 문 앞에는 鏡湖의 물만, 봄바람에 옛 물결을 고치지 않는구나.[離別家鄕歲月多 近來人事半銷磨 唯有門前鏡湖水 春風不改舊時波]”
〈回鄕偶書〉는 마음이 가는 대로 자유롭게 情懷를 풀어낸 시로서, 조금의 수식도 없이 진솔한 감정을 간절하게 표현한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되어 오랜 세월 인구에 膾炙되었다. 시인은 長安에서 고향으로 돌아갈 때 이미 86세의 노년이었다. 그가 돌이켜볼 때, 젊은 시절 집을 떠났다가 인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나이에 고향으로 돌아왔으니 당연히 마음속에 품었던 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시 속에서 그 정회를 다 풀어내지 않고 그저 소박한 언어로 고향을 떠나 있던 유구한 시간들을 담담히 그려낸다.
제1구는 시 전편을 꿰고 있는 열쇠이다. 이후로 묘사되는 일들은 모두 첫 구절에서 연유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少小離家老大回’에서는 ‘少小’와 ‘老大’가 대조를 이루어 고향을 떠나온 시간이 오래 흘렀음을 부각시켰다. 제2구에서는 ‘鬢毛衰’라는 구체적인 묘사를 통해 아이들이 시인의 변한 모습을 알아보지 못한 3‧4구의 상황을 이끌어내었다.
[集評]○ 說透人情之的 - 宋 劉辰翁, 《唐詩品滙》 卷46
[集評]○ 인정을 잘 표현한 것이다.
○ 盧象還家詩云 小弟更孩幼 歸來不相識 賀知章云 兒童相見不相識 笑問客從何處來 語益換而益佳
○ 盧象의 〈還家〉 시에 이르기를 “작은 아우와 어린아이, 돌아오니 알아보지 못하는구나.”라 하였고, 하지장은 이르기를 “아이들은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웃으며 묻네 손님은 어디서 오셨는지요.”라 하였는데, 시어가 더욱 환기되고 더욱 아름다워졌다.
善脫胎者宜參之 近時嚴坦叔還家詩 亦有舊時巷陌渾忘記 却問新移來佳人 頗得知章之遺意 - 宋 范希文, 《對床夜語》 卷3
換骨奪胎를 좋아하는 이들은 마땅히 참고해야 한다. 근자에, 嚴坦叔(嚴粲)의 〈還家〉 시에 또한 “예전의 동네 길 거의 잊어버렸는데, 오히려 새로 온 佳人인가 묻는다네.”라는 구절이 있는데 자못 하지장의 남은 뜻을 얻었다.
○ 鬢毛摧 毛非昔也 兒童不相識 人非昔也 模寫久客之感 最爲眞切 - 明 唐汝詢, 《唐詩解》 卷25
○ 귀밑머리가 세었으니 귀밑머리는 예전 것이 아니요, 아이들이 알아보지 못하니 사람은 예전 사람이 아니다. 오랫동안 떠돌던 나그네의 감정을 묘사했으니 매우 진실되고 간절하다.
○ 此作一氣渾成 不可彫琢 興之偶至 擧筆疾書者 - 淸 王堯衢, 《古唐詩合解》 卷5
○ 이 작품은 하나의 기운으로 혼연히 이루어져 조탁할 수 없다. 興이 우연히 이르러 붓을 들고 빠르게 써 내려간 것이다.
○ 情景宛然 純乎天籟 - 淸 宋宗元, 《綱師園唐詩箋》
○ 情景이 宛然하여 순수한 자연의 소리이다.
○ 人皆知氣象展開 音節宏亮爲盛唐 不知盛唐中有如此淡瘦一種 却未嘗不是高調 - 淸 李德擧, 《唐詩眞趣編》
○ 사람들은 모두 기상이 펼쳐지고 음절이 넓고도 밝으면 盛唐의 체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성당의 체 가운데 이처럼 담박하고 간명한 시가 오히려 일찍이 고아한 격조가 아닌 적이 없었던 사실은 모른다.
○ 朴實語 無限感慨 - 淸 劉宏煦, 《唐詩眞趣編》
○ 소박하고 진실한 시어에 감개가 무한하다.
역주
역주1 偶書 : 마음 가는 대로 쓴 것을 말한다.
역주2 賀知章 : 659~744. 字는 季眞이며, 晩號는 四明狂客으로 越州 永興(지금의 折江省 蘇山縣) 사람이다. 젊어서부터 시명이 있었으며 李白‧張旭 등과 시주를 즐기기도 했다. 성품이 광달하고 담론과 笑謔을 즐겼다. 또한 술을 좋아하여 두보의 〈飮中八僊歌〉에 묘사되기도 했다. 武則天 證聖 초(695)에 진사가 되어 여러 차례 禮部侍郞 兼 集賢院學士를 역임하였다. 天寶 3년(744) 李林甫와 楊國忠이 정권을 천단하자 賀知章은 상소를 올려 道士가 되기를 청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鏡湖에 은거했다. 《舊唐書》 〈文苑傳〉과 《新唐書》 〈隱逸傳〉에 전이 있으며, 《全唐詩》에 시 1권이 수록되어 있다.
역주3 離家 : ‘離鄕’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4 無改 : ‘難解’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5 鬢毛衰 : 귀밑머리가 하얗게 세고 성글어졌다는 뜻이다. ‘衰’가 ‘催’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6 : ‘却’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7 集句詩 : 예전 사람들이 지은 시 중에서 시구를 따다 모아 새로운 시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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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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