其詠懷古迹於武侯云 伯仲之間見伊呂 指揮若定失蕭曹 及此詩 皆善頌孔明者 - 元 方回, 《瀛奎律髓》 卷28
○ 劉云 全首如此一字一淚矣 又云 寫得使人不忍讀 故以爲至 又云 千年遺下此語 使人意傷 - 明 高棅, 《唐詩品彙》 卷84
前半用筆 甚淡 五六乃寫出孔明身分 七八折轉而下當時後世悲感竝到 正意注重後半
李詩因地興感 故將孔明威靈撮入十四字中 寫得十分滿足
接筆一轉 幾將氣燄掃盡 五六兩層折 筆末仍收歸本事 非有神力者不能
悠悠耳食之論 未足與議也 - 淸 御製, 《唐宋詩醇》 卷15
有此兩句之沈摯悲壯 結作痛心酸鼻語 方有精神英雄有同感也 - 淸 仇兆鼇, 《杜詩詳註》 卷9
나뭇잎 너머 노란 꾀꼬리는 그저 좋은 소리를 낸다
兩代를 섬겨 나라를 開創하고 救濟한 老臣의 마음이로다
길이 영웅들로 하여금 눈물로 소매를 적시게 한다
[集評]○ 子美(杜甫)가 劍南에서 流落할 때에 武侯(諸葛亮)를 진심으로 공경하여 잊지 않았다.
그는 〈詠懷古迹〉에서 무후에 대하여 “伊尹‧呂尙과 비교해도 伯仲의 사이이고, 정해진 듯 지휘하니 蕭何와 曹參도 빛을 잃는다.[伯仲之間見伊呂 指揮若定失蕭曹]”라고 하였고, 이 시 또한 모두 孔明(諸葛亮)을 잘 칭송한 작품이다.
○ 劉會孟이 말하기를 “시 전체가 이와 같이 한 글자마다 한 번씩 눈물을 떨어뜨리게 한다.”라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사람으로 하여금 차마 다 읽지 못하게 하니, 이 때문에 가장 뛰어나다.”라고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천년 뒤에도 이 구절은 사람의 뜻을 슬프게 만든다.”라고 하였다.
○ 老杜(杜甫)가 蜀으로 들어가 孔明(諸葛亮)에게 세 번 問候하였으니 뜻을 둔 데가 있어서이다.
詩意가 강건하면서도 애절한데, 셀 수 없는 층위와 변화가 갖추어져 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두 작품에 대하여 상호 장단점이 있으며 혹은 우열이 다르다고 하는데 사실은 정확한 의견이라고 할 수 없다.
전반부의 필치는 매우 담담한데, 5‧6구에서는 공명의 위상을 그렸고, 7‧8구에서 전환시켜 당시의 슬픔과 후세에 느낀 슬픔이 동시에 이르렀는데 진정한 뜻은 후반부에 무게를 두고 있다.
李商隱의 시는 籌筆驛이라는 곳으로 인하여 감흥을 일으켰는데, 공명의 위엄과 신령함을 열네 글자 속에 담아 표현해놓은 것이 십분 만족스럽다.
필치가 한번 전환함에 氣焰이 다 쓸어버릴 듯하다, 5‧6구에서 다시 변환시키고 마지막 구에서 결말을 지어 역사 사실로 귀결시켰으니 神力이 없는 자라면 불가능하다.
두 작품이 구성과 배열은 각기 다르지만 工力은 대등하다.
들의 뜬구름 같은 이야기는 함께 논할 것이 못된다.
○ 앞의 네 구는 사당의 전경을 그렸고, 뒤의 네 구는 승상의 사적을 그렸다.
첫 연에서 스스로 묻고 답하여 사당에 있는 풀은 절로 봄빛을 띠고 새들은 공연히 아름답게 지저귀고 있음을 기술하였다.
이것은 사당의 황량함을 묘사하여 경물에서 감흥이 일어나게 한 것이니, 사람을 그리워하는 뜻이 곧 표현한 말 너머에 있다.
‘天下計’라고 한 것은 시대를 바로잡으려는 웅대한 지략을 드러낸 것이고, ‘老臣心’이라고 한 것은 나라에 보답하려는 고심을 드러낸 것이다.
이 두 구절이 침중하고 비장하여, 결말에서 가슴을 아프게 하고 코끝을 시큰하게 하는 구절을 지어낸 것이니, 정신을 지니고 있다면 영웅에게 공감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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