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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1)

당시삼백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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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行 幷序〉
〈비파행 병서〉
白居易
백거이
元和 10년(815)에 나는 九江郡 司馬(江州司馬)로 좌천되었다.
明年秋 送客 聞船中夜彈琵琶者 聽其音 錚錚然有京都聲
다음해 가을, 湓浦 어구에서 손님을 전송하는데 배에서 한밤중에 비파 타는 소리를 들으니 그 소리가 쟁쟁하여 京都의 음색이 있었다.
問其人 本長安倡女 嘗學琵琶於穆曹二 年長色衰 委身爲賈人婦
그 사람에 대해 물어 보니, 본래 長安의 倡妓로 일찍이 穆氏와 曹氏 두 善才에게 비파를 배웠는데, 나이가 들어 美色이 쇠하자 몸을 의탁하여 장사꾼의 아내가 되었다고 하였다.
遂命酒 使快彈數曲
드디어 술을 가져오라 하고 즐겁게 여러 곡을 타게 하였다.
曲罷憫然 自敍少小時歡樂事 今漂淪憔悴 轉徙於江湖間
곡이 끝나자 자신의 젊은 시절 즐거웠던 일과, 영락하여 江湖사이를 떠도는 지금의 신세를 서글프게 말하였다.
二年 恬然自安 感斯人言 是夕 始覺有遷謫意
나는 외직으로 나온 2년 동안 평온하게 스스로 만족하였는데, 이 사람의 말에 느낀 바가 있어 이날 밤에야 비로소 좌천된 기분이 들었다.
因爲長句歌以贈之 凡六百一十六言 命曰琵琶行
이 때문에 長句의 노래를 지어 그에게 주니, 모두 616자이다. 이름을 〈琵琶行〉이라 하였다.
頭夜送客
심양강 어귀에서 밤에 객을 전송하니
楓葉荻花秋
단풍잎과 억새꽃 가을바람에 소슬하네
主人下馬客在船
주인은 말에서 내리고 객은 배에 있는데
擧酒欲飮無管絃
술잔 들어 마시려 하나 음악이 없구나
醉不成歡慘將別
취하여도 기쁘지 않고 슬프게 헤어지려 하니
別時茫茫江浸月
이별하는 이때 아득한 강에는 달이 잠겨있네
忽聞水上琵琶聲
문득 물가에서 비파소리 들려오니
主人忘歸客不發
주인은 돌아가는 것 잊고 객도 출발하지 않네
尋聲暗問彈者誰
소리 찾아 타는 이가 누구인가 조용히 물어보니
琵琶聲停欲語遲
비파 소리 멈추고 말하려다 머뭇거리네
移船相近邀相見
배를 옮겨 가까이 가서 만나보길 청하고
添酒重開宴
술을 더하고 등도 도로 밝혀 다시 술자리 연다
千呼萬喚始出來
천번 만번 부르자 비로소 나오는데
猶抱琵琶半遮面
비파를 안은 채로 얼굴 반쯤 가렸네
三兩聲
軸을 돌리고 현을 퉁겨 두어 번 소리 내니
未成曲調先有情
곡조를 이루기도 전에 먼저 감정이 인다
絃絃聲聲思
줄마다 낮은 음 소리마다 그리움
似訴平生不得志
평생의 불우한 뜻 하소연하는 듯하고
信手續續彈
고개 숙이고 손가는 대로 연이어 타니
說盡心中無限事
마음속의 끝없는 일들을 다 말하고 있다네
가볍게 눌러 천천히 비비며 튕겼다 다시 뜯으니
처음에는 霓裳이요 다음에는 六么라네
大絃如急雨
굵은 줄 두둥 울리니 소낙비 같고
小絃如私語
가는 줄 절절하니 속삭이는 듯하네
嘈嘈切切錯雜彈
두둥거림과 절절함 섞어서 타니
大珠小珠落玉盤
큰 구슬과 작은 구슬 옥쟁반에 떨어지는 듯
鶯語花底滑
꾀꼴꾀꼴 노랫소리 꽃 아래서 매끄럽게 흐르다가
얼음 아래 샘물이 목메어 흐느끼는 듯
氷泉冷澀絃凝絶
얼음물이 차갑게 얼어붙어 현이 엉겨 끊어지니
凝絶不通聲
끊겨 통하지 않음에 소리 잠시 그쳤다네
別有幽愁闇恨生
따로 그윽한 시름 있어 남모르는 恨이 생겨나니
此時無聲勝有聲
이때의 소리 없음이 소리 있는 것보다 낫다네
銀甁乍破水漿迸
은병이 갑자기 깨져 담겼던 물 쏟아지듯
鐵騎突出刀槍鳴
鐵騎가 돌진하여 칼과 창 울리는 듯
곡이 끝나자 撥을 잡고 한가운데 그으니
四絃一聲如裂帛
네 줄을 한 번에 긋는 소리 비단을 찢는 듯하네
東船西舫悄無言
동쪽 배와 서쪽 배는 고요하여 말이 없고
唯見江心秋月白
오직 보이는 건 강물 속 밝은 가을 달뿐
沈吟放撥揷絃中
생각에 잠겨 撥을 놓아 줄 가운데 꽂고
整頓衣裳起
옷깃을 여미고 일어나 모습 가다듬는다
自言本是京城女
스스로 말하기를 “본래 長安의 여자로
家在下住
집이 蝦蟆陵 아래에 있어 그곳에 살았습니다
十三學得琵琶成
열세 살에 비파를 배워 터득하고
名屬第一部
이름이 敎坊의 第一部에 올랐습니다
曲罷曾敎善才服
곡조 끝나면 善才들을 감복시켰고
妝成每被
단장을 마치면 秋娘들의 질투를 받았지요
五陵의 소년들 다투어 머리에 비단 감아주는데
一曲紅綃不知數
한 곡조에 붉은 비단 셀 수 없었습니다
擊節碎
鈿頭와 은비녀는 장단 맞추다가 부서지고
血色羅裙翻酒污
핏빛 비단 치마는 술을 엎질러 얼룩졌지요
今年歡笑復明年
올해도 즐겁게 웃고 내년도 또 그렇게
等閑度
가을달과 봄바람 한가로이 보냈답니다
弟走從軍
아우는 軍에 가고 阿姨도 죽었으며
暮去朝來顔色故
저녁 가고 아침 오자 얼굴빛도 시들었습니다
門前冷落
문앞이 쓸쓸해져 車馬도 드물어지니
老大嫁作商人婦
나이 들어 시집가 장사꾼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商人重利輕別離
장사꾼은 이익을 중시하고 이별은 가벼이 여겨
前月買茶去
지난달 浮梁으로 차 사러 갔습니다
去來江口守空船
저는 강가를 오가면서 빈 배 지키는데
繞船月明江水寒
배를 둘러싼 달빛은 밝고 강물은 차가웠습니다
夜深忽夢少年事
밤 깊자 홀연 젊었을 적 일을 꿈꾸니
夢啼妝淚
꿈에서도 울어서 화장한 얼굴에 붉은 눈물 이리저리 흘렀답니다”
我聞琵琶已嘆息
나는 비파소리 듣고 이미 탄식하였건만
又聞此語重
또 이 말 듣고 거듭 탄식하네
同是天涯淪落人
“그대와 나 하늘 끝에 떠도는 신세이니
相逢何必曾相識
서로 만남에 꼭 알던 사람이어야 할까
我從去年辭帝京
나는 지난해에 서울 하직하고
謫居臥病潯陽城
귀양살이하며 심양성에 병들어 누워 있는데
潯陽地僻無音樂
심양 땅 궁벽하여 음악 없으니
終歲不聞絲竹聲
일 년 내내 음악 소리 듣지 못하였네
住近湓江地低濕
사는 곳이 湓江 가까워 땅이 낮고 축축하니
黃蘆苦竹繞宅生
누런 갈대와 참대가 집을 둘러 자라네
其間旦暮聞何物
그 사이에서 아침저녁으로 듣는 것이 무엇이랴
杜鵑啼血猿哀鳴
두견새 피 울음과 원숭이 슬픈 울음이지
春江花朝秋月夜
봄 강의 꽃 피는 아침 가을 달 뜬 밤에
往往取酒還獨傾
종종 술을 가져다가 홀로 기울였네
豈無山歌與村笛
어찌 산의 노래와 마을의 피리 소리 없겠냐마는
難爲聽
조잡하고 시끄러워 듣기 어렵다네
今夜聞君琵琶語
오늘밤 그대의 비파 소리 들으니
如聽仙樂耳暫明
신선의 음악 들은 듯 귀가 잠시 밝아졌소
莫辭更坐彈一曲
사양치 말고 다시 앉아 한 곡조 타주면
爲君翻作琵琶行
그대 위해 글로 옮겨 琵琶行 지으리다”
感我此言良久立
나의 이 말에 감동하여 한참을 서 있다가
促絃絃轉急
다시 앉아 줄을 조이니 줄은 더욱 급하여지네
凄凄不似向前聲
처량하기가 앞의 소리와 같지 않으니
滿座重聞皆掩泣
좌중의 사람들 다시 듣고 모두 얼굴 가리며 우는데
座中泣下誰最多
그 중에 흘린 눈물 누가 가장 많은가
江州司馬
江州司馬 푸른 적삼 흠뻑 젖었다네
[通釋] 심양강 어귀에서 밤에 객을 전송하는데 단풍잎과 억새꽃이 가을바람에 부니 소슬하다. 객은 이미 배에 있는데 달려온 주인이 말에서 내리면서 술자리를 차려 마시려고 하지만 음악이 없다. 취하여도 기쁘지 않고 슬프게 헤어지려고 하니 이별하는 이때 아득한 강에는 달이 잠겨있다. 문득 물가에서 비파소리 들려오니 주인은 돌아가는 것도 잊고 객도 출발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소리를 찾아 타는 이가 누구인지 조용히 물어보니, 그 여인은 비파를 멈추고 무언가 말하려다 머뭇거린다. 배를 옮겨 가까이 가서 만나보길 청하고 술을 더하고 등도 도로 밝혀 다시 술자리를 열었다. 천번 만번이나 부르고 나서야 비로소 나오는데 비파를 안은 채로 얼굴을 반쯤 가렸다.
軸을 돌리고 두어 번 줄을 튕겨 음을 고르는데, 곡을 연주하기도 전에 먼저 감정이 일어난다. 낮은 음으로 연이어 연주하니, 그 소리마다 그리움이 묻어나오고, 평생의 불우한 뜻 하소연하는 듯하다. 고개 숙이고 손가는 대로 연이어 비파를 타면서 마음속의 끝없는 일들을 다 말하고 있다. 가볍게 눌러 천천히 비비며 튕겼다 다시 뜯으니 처음에는 霓裳曲이요 다음에는 六么曲이다. 굵은 줄이 두둥 울리니 소낙비 내리는 소리 같고, 가는 줄이 절절하니 은밀히 속삭이는 듯하다. 두둥 울리는 소리와 절절한 소리가 어우러져 연주되니 큰 구슬과 작은 구슬이 옥쟁반에 떨어지는 듯하고, 꾀꼬리의 꾀꼴꾀꼴 노랫소리가 꽃 아래서 매끄럽게 흐르고 얼음 아래 샘물이 목메어 흐느끼는 듯하다. 샘물이 차갑게 얼어붙어 현이 끊어진 듯, 멈춰서 이어지지 않자 소리가 잠시 그친다. 그러자 따로 깊은 시름이 있어 남모르는 恨이 또다시 생겨나니 이때의 소리가 없는 것이 소리 있는 것보다 낫다. 그러다가 다시 연주가 시작되니 銀甁이 갑자기 깨져 담겼던 물이 쏟아지는 듯하고 鐵騎가 돌진하여 칼과 창이 울리는 듯하다. 곡이 끝나자 撥을 잡고 비파 한가운데를 그으니 네 줄을 한 번에 긋는 소리가 마치 비단을 찢는 듯하다. 동쪽 배와 서쪽 배에서는 고요하여 말이 없고 오직 보이는 것은 강물 속의 밝은 가을달 뿐이다. 깊게 탄식하며 撥을 놓아 줄 가운에 꽂고 옷을 정돈하고 일어나 모습을 가다듬는다.
비파를 타던 여인이 말한다. “저는 본래 長安의 여자로 집이 蝦蟆陵 아래에 있어 그곳에 살았습니다. 열세 살에 비파를 배워 솜씨가 좋아졌고 이름은 敎坊의 第一部에 올랐습니다. 한 곡조가 끝나면 善才들이 감복하였고 단장을 마치면 秋娘들이 질투하였습니다. 五陵의 귀족 자제들은 다투어 머리에 비단을 감아주었는데 한 곡조를 탈 때마다 두른 붉은 비단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머리에 꽂았던 鈿頭와 은비녀는 장단 맞추다가 부서지기 일쑤였고 핏빛 붉은 비단치마는 술을 엎질러 얼룩이 졌지요. 올해도 즐겁게 웃으면서 즐겼고 다음해도 또 그렇게 즐겁게 지내면서, 가을달과 봄바람같은 젊은 시절을 한가로이 보냈습니다. 그러는 동안 아우는 軍에 가고 양어머니 노릇하던 阿姨도 죽었으며, 세월이 흘러 고왔던 제 얼굴빛도 시들었습니다. 이에 찾아오는 이도 드물어졌고 나이 들어 장사꾼에게 시집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장사꾼은 이익을 중시할 뿐 부부간의 이별은 가볍게 여겨, 지난달 浮梁으로 차를 사러 떠났습니다. 저는 강가를 오가면서 빈 배를 지키는데, 그 외로운 배와 짝이 되는 것은 밝은 달빛과 차가운 강물뿐이었습니다. 밤이 깊어 홀연 젊었을 적의 일을 꿈꾸는데, 꿈에서도 울어 화장한 얼굴에 붉은 연지빛 눈물이 이리저리 흘렀답니다.”
나는 비파소리를 듣고 이미 탄식하였지만, 이 여인의 이 말을 듣고 거듭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대와 나는 하늘 끝을 떠도는 같은 신세이니, 서로 만나 어울리는데 꼭 예전부터 알던 사람이어야 할 필요가 있겠는가. 나는 지난해에 서울을 떠나 심양성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데, 심양 땅은 궁벽하여 음악이 없어 일 년 내내 음악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었다네. 내가 사는 곳은 湓江에서 가까워 땅이 낮고 축축하여 집 둘레에는 누런 갈대와 참대가 자라고 있고, 그 곳에서 아침저녁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은 두견새의 피 울음소리와 원숭이의 슬픈 울음뿐이라네. 봄 강의 꽃 피는 아침에, 가을 달 뜬 밤에 종종 술을 가져다가 혼자 마셨지. 산 중의 노래와 마을의 촌피리 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잡하고 시끄러워 차마 듣기 어려웠는데, 오늘밤 그대의 비파 소리 들으니 신선의 음악을 들은 듯 귀가 잠시 밝아졌다네. 그대가 사양하지 않고 다시 앉아 한 곡조 타준다면, 나는 그대를 위해 이를 글로 옮겨 〈琵琶行〉을 지으리다.”
여인은 나의 이 말에 감동하여 한참을 서 있다가 다시 앉아 줄을 조여 음을 고르더니 그 연주 소리가 더욱 급하여졌다. 처량하고 처량한 것이 앞서 연주한 소리와 같지 않으니 좌중의 사람들 이를 다시 듣고 모두 얼굴을 가리며 운다. 그 중에서 누가 가장 많이 울었겠는가? 江州司馬의 푸른 적삼이 흠뻑 젖었다.
[解題] 〈長恨歌〉와 더불어 백거이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元和 11년(816), 백거이가 九江으로 좌천되어 온 지 2년째 되는 해에 지어졌다. 당시 정국은 藩鎭과 宦官들이 결탁하여 권력 쟁탈전이 격렬했었는데, 원화 10년(815) 澤路節度使 李師道가 은밀히 자객을 보내 藩鎭 토벌에 주력하던 재상 武元衡을 죽이고 御使中丞 裴度를 습격하였다. 이때 左贊善大夫였던 백거이는 비록 諫官은 아니지만, 이런 상황을 좌시할 수만은 없어 자객들을 붙잡아 엄징할 것을 상소하였다. 그러나 諫하는 직책이 아닌데 諫官보다 먼저 간하였다고 하여 오히려 죄를 얻고 江州司馬로 좌천되었다. 이 시에는 우연히 만난 불우한 처지의 여인과 백거이 자신을 동일시하여, 사회에 대한 자신의 불만과 비분한 심정을 표출하였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이 시는 크게 네 단락으로 나뉜다. 첫째 단락에서 객을 송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시간 장소 인물 배경 등을 제시한 뒤, 둘째 단락에서는 비파를 연주하는 여인의 뛰어난 연주를 묘사하였다. 셋째 단락에서는 그 여인의 화려했던 과거 시절과 쇠락한 현재 상태를 自述이라는 형식으로 담아낸 다음, 마지막 단락에서 그런 여인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좌천되어 淪落한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었다.
[集評] ○ 白公詩 讀不滯口 其辭平澹和易 意若對面諄諄詳告者
[集評] ○ 白公의 시는 읽을 때에 입에서 막히지 않고 그 시어는 평담하고 화평하며 그 뜻은 마치 대면하여 친절하게 상세히 알려 주는 듯하다.
雖不見當時事 想親覩之也 是亦一家體也
비록 당시의 일을 보지는 못했지만 상상하면 직접 본 것과 같으니, 이 또한 일가의 詩體다.
……其若琵琶行長恨歌 當時已盛傳華夷 至於樂工倡妓 以不學此歌行爲恥
…… 〈琵琶行〉이나 〈長恨歌〉 같은 것은 당시에 이미 華夷에 성대하게 전해져 樂工과 倡妓까지도 그 歌行을 배우지 못한 것을 수치로 여겼다.
若涉近之辭 能至是耶
만일 천근한 말이라면 이처럼 될 수 있겠는가.
嗚呼 凡譏議樂天者 皆不知樂天者也 吾不取已 - 高麗 李奎報, 《東國李相國後集》 卷11 〈書白樂天集後〉
아, 낙천을 비판한 자는 모두 낙천을 모르는 자이니, 나는 취하지 않는다.
○ 歸鹿趙相公顯 贈老妓詩曰 功名文武前身事 歌舞繁華一夢間 大笑相看頭似雪 空山斜日水流閑
○ 歸鹿 趙顯命相公이 늙은 기생에게 준 시에, “文武의 공명은 전생의 일이요, 화려한 가무는 한바탕 꿈이라네. 서로 바라보며 머리가 눈처럼 흼을 크게 웃노라니, 빈산에는 해 기울고 강물은 유유히 흘러가네.[功名文武前身事 歌舞繁華一夢間 大笑相看頭似雪 空山斜日水流閑]” 라고 하였는데,
頭恰似潯陽江頭 琵琶詩 門前冷落鞍馬稀 老大嫁作商人婦
이는 ‘潯陽江頭’로 시작되는 백거이의 〈琵琶行〉에 ‘門前冷落鞍馬稀 老大嫁作商人婦’라고 한 구절과 의미가 흡사하다.
吾輩事 亦如是 - 朝鮮 李裕元, 《林下筆記》 〈贈老妓詩〉
우리들의 일 역시 이와 같다.
○ 滿腔遷謫之感 借商婦以發之 有同病相憐之意焉
○ 속에 가득 차 있는 유배객의 감정을 장사꾼 아내를 빌어 표현한 것이니, 동병상련의 뜻이 있다.
比興相緯 寄托遙深
比와 興이 서로 얽혀있고, 기탁한 것이 요원하고 심오하다.
其意微以顯 其音哀以思 其辭麗以則
그 뜻이 은미하면서도 드러나고 그 소리가 슬프면서도 사념에 잠기게 하며, 그 말이 화려하면서도 법칙에 맞는다.
……及杜甫觀公孫大娘弟子舞劍器行 與此篇同爲千秋絶調 不必以古近前後分也 - 淸 《唐宋詩醇》 卷22
…… 두보의 〈觀公孫大娘弟子舞劍器行〉과 이 작품은 모두 천추의 絶調로 古‧近‧前‧後를 나눌 필요가 없다.
○ 白樂天 間關鶯語花底滑 幽咽泉流水下灘 泉流水下灘不成語
○ 백낙천(백거이)의 ‘間關鶯語花底滑 幽咽泉流水下灘’ 구절에서 ‘泉流水下灘’은 말이 되지 않는다.
且何以與上句屬對
또 무엇으로 윗 구절과 대를 이루겠는가?
昔年曾謂當作泉流冰下難
작년에 “ ‘泉流冰下難’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었다.
故下文接以冰泉冷澀
이 때문에 아래의 ‘冰泉冷澀’으로 이을 수 있다.
難與滑對 難者滑之反也
難은 滑과 대를 이루는데, 難이란 것은 滑의 반대이다.
鶯語花底泉流冰下 形容澀滑二境 可謂工絶 - 淸 段玉裁, 《經韻樓集》 卷8, 〈與阮芸臺書〉
‘鶯語花底’와 ‘泉流冰下’는 澀과 滑 두 경지를 형용한 것이니 공교롭다고 할 수 있다.
역주
역주1 琵琶 : 《釋名》에, “비파는 본래 오랑캐들이 말 위에서 연주하는 악기이다. 앞으로 손을 밀치는 것을 琵라 하고, 뒤로 손을 당기는 것을 琶라 한다.[釋名曰 琵琶 本胡中馬上所鼓也 推手前曰琵 引手却曰琶]”고 하였다.
역주2 予左遷九江郡司馬 : 백거이는 40세 되던 해인 元和 10년(815)에, 上疏가 부당하다고 하여 太子左贊善大夫에서 江州司馬로 좌천되었다. 九江郡은 원래 隋나라 때의 郡이름이었으나, 唐 天寶 元年(742)에 江州 또는 潯陽郡으로 개칭되었고, 관아는 지금의 江西省 九江市에 있다. 司馬는 州 刺史의 副職으로, 당시에는 좌천된 京官들로 충당된 유명무실의 한직이었다.
역주3 湓浦口 : 湓江이 長江으로 흘러들어가는 곳인데, 湓口라고도 한다. 九江城 서쪽에 있다.
역주4 善才 : ‘善財’라고도 하는데, 당나라 때 비파 연주가를 지칭하는 명칭이다. 당 元和연간에 曹保에게 善才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비파에 정통했기 때문에 ‘선재’가 비파연주가를 지칭하게 되었다. 唐 段安節의 《琵琶錄》에 그 내용이 보인다.
역주5 出官 : 京官에서 지방관으로 좌천된 것을 말한다.
역주6 潯陽江 : 長江이 흐르는 九江 일대를 말한다.
역주7 瑟瑟 : 가을바람이 단풍잎과 억새꽃에 불면서 나는 소리이다.
역주8 回燈 : 등불을 다시 밝히는 것이다.
역주9 轉軸撥絃 : ‘轉軸’은 비파 위의 弦柱를 돌려 단단히 하는 것이고, ‘撥絃’은 비파를 타기 전에 시험 삼아 두세 번 현을 퉁겨 보는 것이다.
역주10 掩抑 : 낮게 잠긴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비파의 낮고 가라앉은 소리를 말한다.
역주11 低眉 : 머리를 숙이는 것이다.
역주12 輕攏慢撚抹復挑 : 攏‧撚‧抹‧挑는 모두 비파를 타는 기법이다. ‘攏’은 손가락으로 현을 누르는 것을, ‘撚’은 손가락으로 현을 비비는 것을, ‘抹’은 손 가는대로 아래로 튕기는 것을, ‘挑’는 반대로 뜯는 것을 말한다.
역주13 初爲霓裳後六么 : ‘霓裳’은 霓裳羽衣曲을 말하고, ‘六么’는 綠腰라고도 하는데, 당시 유행하던 曲調名이다.
역주14 嘈嘈 : 깊고 웅장한 소리를 형용한다.
역주15 切切 : 세밀하고 절실한 소리를 형용한다.
역주16 間關 : 새 울음소리를 형용한다.
역주17 幽咽 : 물이 시원하게 흐르지 못하고 졸졸 흐르는 소리를 형용한다.
역주18 氷下灘 : ‘水下灘’, ‘氷下難’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19 : ‘漸’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20 收撥當心畫 : ‘撥’은 비파의 현을 튕길 때 사용하는 도구이다. 비파의 네 줄 가운데를 발로 긋는 것을 ‘收撥’이라고 하는데, 곡의 연주가 끝났음을 나타낸다.
역주21 斂容 : 상대방에게 단정하고 공손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역주22 蝦蟆陵 : 당나라 長安城(지금의 陝西省 西安市) 南曲江 근처에 있다. 董仲舒를 이곳에 장사지내니, 그 제자들이 묘에 이르러 모두 말에서 내렸으므로 이 때문에 下馬陵이라고 하게 되었는데, 후인들이 蝦蟆陵이라고 잘못 일컫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歌姬와 舞姬들이 그 지역에 모여 살면서 이름이 났다.
역주23 敎坊 : 당나라 때 歌妓들을 교육시키던 기관이다. 〈敎坊記〉에, “西京의 右敎坊은 光宅坊에 있고 左敎坊은 延政坊에 있는데, 우교방에는 노래를 잘하는 歌妓가 많고 좌교방에는 춤을 잘 추는 舞技가 많았다.[西京右敎坊在光宅坊 左敎坊在延政坊 右多善歌 左多工舞]”고 되어 있다.
역주24 秋娘 : 당시 장안의 유명한 歌妓인데, 여기서는 歌妓의 범칭으로 쓰였다.
역주25 五陵年少 : ‘五陵’은 장안성 북쪽의 漢代 帝王의 무덤인 長陵‧安陵‧陽陵‧茂陵‧平陵으로 귀족들이 거주하는 곳을 의미한다. ‘五陵年少’는 귀족자제를 말한다.
역주26 纏頭 : 옛날에 歌姬와 舞姬들이 노래하고 춤을 추고 나면 손님들이 비단을 주었는데, 이를 ‘纏頭’라고 불렀다. 후에 妓女들에게 사례로 주는 비단 또는 재물을 통칭하는 말이 되었다.
역주27 鈿頭銀篦 : ‘鈿頭’와 ‘銀篦’는 모두 여자들의 머리 장식품이다. 鈿頭는 花鈿이라고도 하는데 금 비취 진주 등을 이용하여 꽃모양으로 만든 머리 장식이고, 銀篦는 은으로 만든 머리 장식으로 빗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역주28 秋月春風 : 가을달과 봄바람, 여기서는 청춘의 아름다운 시절을 의미한다.
역주29 阿姨 : 화류계 妓女들의 양어머니를 가리킨다.
역주30 車馬 : ‘鞍馬’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31 浮梁 : 唐나라 때의 縣이름으로 지금의 江西省 景德鎭市에 있다. 당시 부량은 중요한 차 집산지였다.
역주32 : 얼굴에 바른 연지 색을 말한다.
역주33 闌干 : 눈물이 이리저리 흐르는 모습이다.
역주34 唧唧 : 탄식하는 소리이다.
역주35 嘔啞嘲哳 : 의성어로, 조잡하고 시끄러운 소리를 형용한다.
역주36 卻坐 : 돌아와 원래의 자리에 앉는 것을 말한다.
역주37 靑衫 : 당나라 때 가장 낮은 九品 관직의 복색이다.
참고자료
[참고자료] 서거정의 〈문비파聞琵琶〉의 제1구 ‘강주 사마는 푸른 적삼으로 분포에서 울었고[司馬靑衫盆浦泣]’(《사가시집四佳詩集21)라는 구절은 〈비파행〉의 마지막 구절을 차용한 것이다.
동영상 재생
1 072 비파행 병서 748
동영상 재생
2 072 비파행 병서 605
동영상 재생
3 072 비파행 병서 561

당시삼백수(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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