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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2)

당시삼백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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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望
〈薊門을 바라보며〉
祖詠
조영
客心驚
燕臺에 한번 오르니 나그네 마음 놀라네
피리와 북 소리 한나라 군영에 진동하네
萬里寒光生積雪
일만 리 쌓인 눈에 찬 빛이 일어나고
삼변의 새벽빛에 높은 깃발 펄럭이네
沙場烽火
모래벌판의 봉화불은 변방의 달을 침범하고
바닷가의 구름 낀 산은 薊城을 에워쌌구나
少小雖非
젊어 붓을 던져버렸던 관리는 아니었건만
論功還欲
공을 세우기 위해 오히려 긴 밧줄을 청하고 싶다
[通釋] 말로만 듣던 높은 유주대에 올라가 변방을 한번 바라보았더니 탁 트인 시야에 광활한 경치, 험한 산천이 들어와 나그네의 마음이 깜짝 놀란다. 거기에는 우선 변방의 피리 소리, 북 소리가 시끄럽고 위엄 있게 울려 퍼지기 때문이다. 깊은 겨울 깊이 쌓인 눈에서 만리까지 펼쳐진 차가운 빛이 생기고, 높이 솟은 군영의 깃발에는 변경의 세 지방에 퍼지는 새벽빛이 빛난다. 모래벌판에 봉화가 피어 오랑캐 땅에 솟은 달까지 침범하고, 바다까지 이어진 구름 낀 산은 계성을 에워싸고 있다. 참으로 굉장한 광경이다. 내가 비록 소싯적에 붓을 던져버리고 영토를 개척하는 큰 일에 종사하겠다고 결심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서 보니 그 옛날 終軍처럼 공을 세우기 위해 도리어 긴 밧줄을 얻어 적의 왕을 잡아오겠다고 청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解題] 당나라 때 范陽郡은 현재의 북경 서남부 지역인 幽州를 중심으로 모두 16州를 통솔하는 東北方의 중요한 鎭이었다. 당나라는 거란을 상대로 대치하고 있었는데, 현종 開元 2년(714)에 거란을 제압한 적이 있고, 開元 22년(734)에는 거란왕의 목을 베기도 하였다. 이 시는 대략 이 두 시기 사이에 쓴 것으로 추정하는데, 좀 더 정확한 연대는 祖詠(699~746?)이 開元 22년(724)에 진사가 되었으므로 시기를 좁혀 724년과 734년 사이로 추정하기도 한다.
첫 구절에 ‘驚’字를 써 突兀하게 시작해 독자에게 긴장감을 주어 시를 이끌어가면서 ‘望’이 眼字로 시 전체를 꿰뚫었다.
[集評]○ 此因臨邊而有志于立功也
[集評]○ 이는 변방 높은 곳에서 바라보다 그로 인해 공을 세우는 데 뜻을 둔 것이다.
言自燕臺以往使客心驚懾者 皆戎馬之事也
‘燕臺’에서 ‘客心驚’까지 말한 곳은 모두 전쟁의 일이다.
于是狀邊庭之景如此 因言我雖非投筆從戎之吏 然豈可無功而苟祿哉
이에 변방의 경관이 이와 같음을 형상하고 인하여 말하기를 “이 기회에 내가 붓을 던지고 전쟁에 종사하는 관리는 아니지만 어떻게 공도 없이 구차하게 녹을 먹겠느냐.
故欲如終軍請纓 以樹勛當時也 - 淸 唐汝詢, 《唐詩解》 卷40
그렇기에 終軍처럼 긴 밧줄을 청해 당시에 공훈을 세우고 싶다.”고 한 것이다.
○ 此詩已是異樣神彩 乃讀末句 又見特添少小二字 便覺神彩再加十倍 - 淸 金聖歎, 《金聖嘆選批唐詩》 卷3
○ 이 시는 벌써 기이한 神彩가 있는데, 마지막 구절을 읽고 단지 ‘少小’ 두 글자를 더한 걸 또 보면 神彩가 열 배는 더해지는 것을 깨닫게 된다.
○ 亦是盛唐正聲 - 淸 黃培芳, 《香山詩話》, 淸 王士禎 《唐賢三昧集箋注》의 기록을 인용
○ 역시 성당의 바른 詩篇이다.
○ 六句寫薊州之險 而以首句一望字包之 收句托意有澄淸之志 豈是時范陽已有萌芽耶 - 淸 方東樹, 《昭昧詹言》 卷6
○ 여섯 구절은 험한 薊州의 지형을 묘사했는데 첫 구절의 ‘望’이라는 한 글자가 이를 다 포괄한다. 마지막 구절에는 자신의 뜻을 부쳐 어지러운 세상을 맑고 깨끗하게 만들고 싶어하는 의지를 보였으니, 어찌 이때 范陽郡에 이미 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 字字是望 非泛詠薊門 - 淸 陳婉俊, 《補注唐詩三百首》 卷6
○ 글자글자마다 ‘望’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 평범하게 薊門을 읊은 것이 아니다.
○ 起引故事 中寫望字 而以自古其志作結 讀之悲壯激越 - 現代 王文濡, 《唐詩評注讀本》
○ 고사를 끌어와 시작해 중간에 ‘望’字의 내용을 묘사하였고, 예로부터 그런 의지가 있다는 것으로 결말을 맺었으니 이를 읽으면 비장한 느낌이 격동해 솟아 넘친다.
역주
역주1 薊門 : 薊丘라고도 하며, 당나라 때 北方의 重鎭이었던 薊城을 가리키는데, 당시 幽州의 治所였다. 현재 북경의 德勝門 밖 일대 지역이다.
역주2 燕臺一去 : 燕臺는 戰國時代 燕나라 昭王이 薊城에 세운 幽州臺를 말한다. 黃金臺라고도 한다. ‘一去燕臺’가 맞는 말인데 平仄 때문에 도치되었다. 去가 望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3 笳鼓喧喧漢將營 : ‘笳’가 ‘簫’로, 혹은 ‘笙’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笳鼓’는 軍樂을 말한다. ‘漢將營’은 한나라를 빌어 당나라 군대를 나타낸 것으로, 당나라 군영의 위엄과 변방의 긴박감을 나타낸다.
역주4 三邊曙色動危旌 : ‘三邊’은 幽州‧幷州‧涼州를 가리키며 여기서는 東北‧北方‧西北의 변방 지역을 말한다. ‘危’는 높다는 뜻이다.
역주5 侵胡月 : ‘侵’이 ‘連’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胡月이라 한 것은 북방 邊塞에서 보는 달이기 때문이다. 戰火가 치열함을 가리킨다.
역주6 海畔雲山擁薊城 : 薊門의 남쪽은 渤海를, 북쪽 방면은 燕山山脈을 끼고 있는데, 防備의 형세를 묘사한 부분이다. 앞의 ‘沙場烽火侵胡月’이 공격과 人事를 말한 것이라면, 이 구절은 수비와 지형을 말해 대구를 이루었다.
역주7 投筆吏 : 漢나라 班超의 故事를 썼다. 《後漢書》 〈班超傳〉에 “반초는 집안이 가난해 항상 관리에게 고용되어 글 써주는 일로 먹고 살아 오랫동안 수고로웠다. 한번은 일을 그만두고 붓을 던지면서 탄식하며 말하기를 ‘대장부가 다른 뜻과 지략이 없으면 오히려 傅介子와 張騫을 본받아 이역에서 공을 세워 봉후의 자리에 올라야 하거늘, 어찌 오래 붓 잡는 일에 종사한단 말인가’라고 하였다.[超家貧 常爲官傭書以供養 久勞苦 常輟業投筆 歎曰 大丈夫無他志略 猶當效傅介子張騫立功異域 以取封侯 安能久事筆硯間乎]”는 기록이 보인다. 뒤에 반초는 서역에서 공을 세워 定遠侯가 되었다.
역주8 請長纓 : 한나라 終軍의 고사를 썼다. 《漢書》 〈終軍傳〉에 “임금이 종군을 발탁해 諫大夫로 삼아 남월에 사신으로 보내려 하였는데 종군이 사신으로 나가기를 자청하면서, 긴 밧줄을 받아 반드시 남월왕을 묶어 대궐 아래 바치겠다고 하였다. 종군이 드디어 가서 남월왕을 설득하니 남월왕이 자신의 나라를 바쳐 한나라에 속하게 되었다.[上擢軍爲諫大夫 遣使南越 軍自請 願受長纓 必羈南越王而致之闕下 軍遂往說越王 越王擧國爲屬]”라는 기록이 보인다.
역주9 무슨……조짐 : 方東樹가 말하는 조짐[萌芽]은 안녹산의 난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으로, 시인이 안녹산의 난을 내다보고 이 시를 썼다고 본 것이다. 안녹산의 난은 天寶 10년(745)에 일어났고 시인 祖詠의 몰년은 746년으로 추정하는데, 이 시가 안녹산의 난과 연관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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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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