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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3)

당시삼백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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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首之一〉
〈집영대 두 수 중 첫 번째 시〉
張祜
장호
日光斜照集靈臺
지는 햇빛 비스듬히 집영대를 비추고
花迎曉露開
나무의 붉은 꽃은 새벽이슬 맞아 피어난다
어젯밤 황제가 새로이 책봉록을 내리니
含笑入簾來
태진이 웃음 머금고 주렴으로 들어온다
[通釋] 해가 기울어 석양이 비스듬히 집영대를 비추고, 밤이 지나자 붉은 꽃 피는 나무에 꽃이 새벽이슬을 맞아 화려하게 피어난다. 어젯밤에 황제께서 새로이 귀비 책봉록을 주었는데, 태진이 웃음을 머금고 주렴 안으로 들어온다.
[解題] 이 시는 唐 玄宗이 楊貴妃를 총애한 것을 풍자한 작품이다. 당 현종은 태평성세를 이끌었지만, 開元 연간 후기에는 權奸 李林甫와 楊國忠 등이 권력을 휘둘러 정국이 어지러워지고 민생이 도탄에 빠지는데 여기에 양귀비가 주된 역할을 하였다. 현종은 양귀비에게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고, 道家에 심취하여 長生不死를 구하기도 하였다.
1‧2구는 집영대의 해질 무렵부터 새벽녘까지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다음 구에 나오는 ‘授籙’의 배경이 된다. 앞의 1‧2구가 집영대를 묘사한 것이라면, 뒤의 3‧4구는 양귀비가 총애를 받은 것을 그려내었다.
집영대는 본래 神에게 제사 지내는 장소이므로 엄숙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당 현종과 양귀비가 애정을 나누는 장소로 쓰였다. 현종은 총애하던 武惠妃가 죽자 몹시 괴로워했다. 주변에서 현종을 위로하기 위해 중국 전역에서 미인들을 수소문하던 차에, 현종의 18번째 아들인 壽王 李瑁의 후궁 楊玉環이 현종 눈에 띄었다. 아들의 부인을 데려올 수 없었던 현종은 양옥환을 먼저 道家에 귀의시키고 太眞이라는 호를 내린다. 이는 입문하면 속세의 일은 다 지워진다고 여기는 道家思想에 기반한 것이다. 이후에 양옥환을 궁에 불러들여 귀비로 책봉하는데, 3‧4구는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4구는 양귀비가 집영대에서 성은을 입었음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면서 귀비로 책봉했음에도 불구하고 ‘太眞’이라는 道號를 일부러 사용하여, 제사를 지내는 곳에서 부당하게 애정을 나눈 것을 풍자하였다.
역주
역주1 集靈臺 : 長生殿이다. 당 현종은 天寶 6년(747)에 驪山 華淸宮 안에 장생전을 지었는데, 이곳은 신에게 제사 지내는 장소였다. 옛터가 지금의 陝西省 臨潼縣 驪山 위에 있다.
역주2 紅樹 : 붉은 꽃이 피는 나무를 지칭한다.
역주3 上皇新授籙 : 上皇은 唐 玄宗을 말한다. 安史의 난이 일어나자 당 현종은 촉으로 피난하였는데, 肅宗이 靈武에서 즉위하고는 현종을 높여 ‘上皇天帝’라고 칭하였다. 籙은 도교에서 전해지는 비밀문서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현종이 楊玉環을 貴妃에 책봉하는 詔令을 지칭한다.
역주4 太眞 : 楊玉環이 女道士 시절에 쓰던 道號이다. 양옥환은 본래 당 현종의 18번째 아들인 壽王 李瑁의 후궁이었는데, 당 현종이 그를 차지하기 위해 天寶 3년(744) 그를 女道士로 삼고 太眞이라는 호를 내렸으며, 다음해 궁에 들어가 貴妃에 책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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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84 집령대 2수지1 537

당시삼백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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