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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1)

당시삼백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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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觀弟子舞劍器行 幷序〉
杜甫
大曆二年十月十九日 壯其 問其所師 曰余公孫大娘弟子也
余尙童穉 記於 頓挫 獨出冠時
曉是舞者 初 公孫一人而已
玉貌錦衣 況余白首
今茲弟子 亦匪盛顔
旣辨其由來 知莫二
撫事慷慨 聊爲劍器行
昔者吳人 善草書書帖 數嘗於 見公孫大娘舞
自此草書長進 豪蕩感激 卽公孫可知矣
昔有佳人公孫氏
一舞劍器動四方
觀者如山色
天地爲之久低昂
矯如群帝驂龍翔
晩有弟子傳
妙舞此曲神揚揚
與余問答旣有以
感時撫事增惋傷
侍女八千人
公孫劍器初第一
似反掌
風塵昏王室
梨園弟子散如煙
草蕭瑟
急管曲復終
月東出
不知其所往
[集評] ○ 杜甫公孫大娘舞劍器歌 來如雷霆收震怒 罷如江海凝淸光
此只形容其人之神彩從容 謂其始氣像威武 其終精神凝遠也
劍器武舞之曲名 其舞用女妓雄妝 空手而舞 非用刀劍也
文獻通考劍器恐指受劍之物 謂空手也
杜又云妙舞 此曲可見 - 朝鮮 李翼, 《星湖僿說》 〈詩文門‧舞劍器〉
○ 來如雷霆收震怒 雷霆震怒 轟然之後 累累遠馳 赫有餘怒
故知收字之妙
若轟然一聲 闋然而止 雖震怒不爲奇也
罷如江海凝淸光 鍾云 此一語獨妙 信然
鍾總評題是公孫大娘弟子 而序與詩 情事俱屬公孫氏 便自穆然深思
余謂未盡也 不知情事俱屬玄宗
故序云 撫事慷慨 聊爲劍器行 知其意不在劍器也
詩云 感時撫事增惋傷 則五十年間似反掌數句 乃其賦詩本旨
足繭荒山 從此而來 尤使人穆然深思 - 明 王嗣奭, 《杜臆》 卷9
○ 序從弟子逆推至公孫 詩從公孫順拖出弟子
首八句 先寫公孫劍器之妙 忽然而伏 忽然而起 狀其舞姿也
忽然而來 忽然而罷 總始末而形容也
有末句 益顯上三句之騰踔 有上三句 尤難末句之安閑
序所謂蔚跂者正如此
絳唇六句 落到李娘 如篇中敍事處
舞之妙 已就公孫詳寫 此只以神揚揚三字括之 可識虛實互用之法
感時撫事句 逗出作詩本旨
先帝六句 往事之慨 此本旨也
言公孫而統及女樂 言女樂 卽是感深先帝
故下段竟以金粟堆作轉接 此下正寫惋傷之情
一句着先帝 一句收歸本身
玳筵 哀樂 幷帶別駕宅
結二語 所謂對此茫茫 百端交集
行失其所往 止失其所居 作者讀者 俱欲噭然一哭 - 淸 浦起龍, 《讀杜心解》


〈공손대랑의 제자가 검기무 추는 것을 보고 병서〉
두보
大曆 2년(767년, 唐 代宗 5) 10월 19일 夔州府 別駕 元持댁에서 臨潁人 李十二娘의 검기무를 보고 그 빛나고 호탕한 모습이 훌륭하다고 생각해 그 스승을 물으니, “저는 공손대랑의 제자입니다.”라고 하였다.
개원 3년(715년, 당 현종 4) 내가 아직 어렸을 때, 郾城에서 공손씨가 검기혼탈무를 추는 걸 본 기억이 있는데, 활발한 변화가 끝이 없어 당시에 홀로 으뜸이었다.
황제 앞에서 춤추던 宜春園‧梨園 두 敎坊 나인에서부터 外供奉에 이르기까지 이 춤을 알고 있는 사람은 현종 초까지 공손씨 한 사람뿐이었다.
옥같은 얼굴에 비단 옷 입은 공손씨도 사라져 버렸는데 하물며 내 흰머리 나는 것이야.
지금 이 제자 또한 한창 때 얼굴은 아니다.
이 제자의 유래를 알고 나니 그 변화 가득한 춤이 스승의 춤과 다르지 않음을 알겠다.
옛일을 더듬으며 슬퍼하면서 애오라지 〈검기행〉을 쓴다.
예전에 吳人 장욱이 서첩에 草書를 잘 썼는데, 자주 鄴縣에서 공손대랑이 西河劍器舞 추는 걸 보았다.
이로부터 초서가 크게 진척되어 호방하고 激蕩하게 되었으니, 공손씨 춤이 어떠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옛날에 佳人 공손씨 있어
한번 검기무를 추면 사방을 진동시켰지
보는 이들 산처럼 모여 얼굴색이 변하고
천지도 이로 인해 출렁이는 듯
빛나기는 羿가 해 아홉을 쏘아 떨어뜨리듯
힘차기는 여러 천제가 용을 타고 날 듯
나올 때는 천둥소리가 진노를 거둬들이듯
물러날 때는 강과 바다에 맑은 빛 엉기듯 하였지
붉은 입술 주옥 같은 소매 모두 적막해졌는데
늦게 둔 제자가 그 아름다움 전하여
臨潁의 미인이 백제성에서
이 곡을 절묘하게 춤추니 神彩 너울거린다
나와 묻고 답해 보니 이미 연유 있었던 것
시절을 느끼며 옛 일 더듬어보니 서글픔만 더해진다
先帝의 시녀 팔천 명에
공손씨 검기무가 처음부터 으뜸이었지
오십년 사이에 손바닥 뒤집듯 세월이 빨라
끝없는 바람 먼지 왕실 어둡게 하였기에
이원의 제자들 연기처럼 흩어지고
女樂의 남은 자태만 차가운 해에 비친다
금속퇴 앞에 나무는 이미 한 아름이나 되고
구당협 석성에 풀은 쓸쓸하기만
성대한 술자리 빠른 피리소리 노래조차 끝나니
즐거움 다하고 슬픔이 와 달 동쪽에 떠오르네
이 늙은이 갈 곳 모르고
굳은살 박힌 발로 가야 할 황량한 산야 수심만 도리어 빠르구나
[集評] ○ 두보의 〈公孫大娘舞劍器歌〉에, ‘나올 때는 천둥소리가 진노를 거둬들이듯, 강과 바다에 맑은 빛 엉기듯’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단지 그 사람의 神彩가 종용함을 형용한 것으로, 처음에는 기상이 위엄있고 씩씩하며 나중에는 정신이 嚴正하고 深遠함을 이른 것이다.
劍器는 武舞의 曲이름인데, 그 춤은 女妓를 雄傑하게 단장시켜 空手로 춤추게 하는 것이요 刀劍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文獻通考》에, “검기란 아마도 칼을 받아들이는 물건을 가리킨 듯하다.” 하였으니 空手를 이른다.
두보 역시 ‘묘한 춤[妙舞]’이라 하였으니 이 곡을 알 수 있다.
○ ‘나올 때는 천둥소리가 진노를 거둬들이는 듯’이라는 시 구절은 천둥우레가 진노하듯 울리면서 우르릉 울린 뒤에도 소리가 계속 멀리까지 달려가므로 뚜렷이 남는 진동이 있다.
그러므로 ‘거둬들인다[收]’는 글자의 묘함을 알 수 있다.
만약 우르릉하는 소리가 조용히 끝나 멈춰버렸다면 진노했다해도 기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러날 때는 강과 바다에 맑은 빛 서리는 듯’이라는 시구를 두고 鍾惺(明代의 작가)은 “이 말이 유독 묘하다.”고 했는데 참으로 그렇다.
종성은 총평하면서, “제목은 公孫大娘의 弟子이지만 서문과 시에는 감정과 일이 모두 公孫氏에게 속하니 저절로 깊은 생각에 조용히 잠기게 된다.”고 하였다.
나는 이것으로는 미진하다고 생각하니, 그는 감정과 일이 모두 현종에게 속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서문에, “옛일을 더듬으며 슬퍼하면서 애오라지 검기행을 쓴다.”고 했으니 그 뜻이 劍器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겠다.
시에 ‘시절을 느끼며 일 더듬어보니 서글픔만 더해진다.’고 하였으니, 바로 ‘오십년 사이에 손바닥 뒤집듯 세월이 빠르다.’는 몇 구절이 바로 시를 지은 本旨이다.
‘굳은 살 박힌 발로 가야 할 황량한 산야’ 여기서부터는 사람을 더욱 조용히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 서문에서는 제자로부터 거꾸로 올라가 공손씨에 이르렀고, 시에서는 공손씨로부터 순서에 따라 제자를 나타냈다.
첫 여덟 구는 먼저 공손씨의 검기가 묘하다는 것을 묘사하면서 홀연 잠복했다가 홀연 일어나 그 춤추는 자세를 형상화했다.
홀연히 시작했다가 홀연히 마치면서 시작과 끝을 총괄해서 형용한 것이다.
末句가 있기 때문에 바로 위 세 구의 역동적인 동작이 더욱 드러나며, 위의 세 구가 있기 때문에 末句가 안이하고 한가롭게 되기가 더욱 어렵다.
서문에서 말한 ‘빛나고 호탕한 모습’이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붉은 입술’ 여섯 구는 李娘만 따로 떨어져 있어 마치 시 가운데 敍事를 한 것 같다.
춤의 묘함에 대해서는 이미 공손씨에서 상세하게 묘사했으므로 여기서는 다만 ‘신령스러움 너울거린다.[神揚揚]’라는 세 글자만으로 포괄하였으니 虛實을 번갈아 쓰는 법을 알 수 있다.
‘시절을 느끼며 일 더듬어보니’라는 구절에서 시를 쓴 本旨를 드러내 보인다.
‘先帝’ 여섯 구는 지나간 일을 감개하고 있는데 이것이 本旨이다.
공손씨를 언급하면서 총체적으로 女樂에까지 미치고 女樂을 언급하면서 바로 先帝를 깊이 느낀다.
그러므로 아래 단락에서 마침내 ‘金粟堆’라는 말로 전환이 생기는데 이 이하는 바로 가슴 아픈 감정을 쓰고 있다.
한 구절은 先帝에 부치고 한 구절은 자기 자신에게로 수렴해 돌아온다.
‘성대한 술자리’ ‘슬픔과 즐거움’이란 말은 別駕宅을 아울러 가리키기도 한다.
마지막 두 구절은 이른바 ‘이를 대하니 망망해져서 온갖 실마리가 엇갈려 모여든다.[對此茫茫 百端交集]’는 것이다.
떠나려하니 갈 곳을 잃었고 머무르려 하나 살 곳을 잃었으니 작자나 독자나 모두 소리 내어 한바탕 울고 싶도록 한다.


역주
역주1 公孫大娘 : 開元 연간 劍器渾脫舞를 잘 추기로 유명했던 여자다. 그에 대한 기록이 《明皇雜錄》에, “이때 공손대랑은 칼춤을 잘 추어 鄕里曲 및 裵將軍滿堂勢, 西河劍器渾脫을 잘 했는데 춤추는 기예가 아름답고 묘해 모두 이 시대의 으뜸이었다.[時有公孫大娘者 善劍舞 能爲鄰里曲及裵將軍滿堂勢 西河劍器渾脫 舞藝姸妙 皆冠絶於時]”고 전한다.
역주2 蘷府別駕元持宅 : ‘蘷府’는 蘷州府로 지금의 四川省이다. 府廳 소재지는 奉節에 있었다. ‘別駕’는 관직명으로 刺史의 보좌직이다. ‘元持’는 기주부 별가를 맡고 있던 사람인데 生平은 未詳이다.
역주3 臨潁李十二娘 : 臨潁사람으로 공손대랑의 제자다. 臨潁은 河南省 臨潁縣을 말한다.
역주4 劍器 : 健舞 곡명의 일종으로 서역에서 전해진 武舞이다. 唐나라 敎坊樂舞에는 춤추는 자세가 剛健하고 많은 현악기와 빠른 관악을 사용하는 健舞와 이와 상대되는 軟舞가 있었다. 건무에는 劍器‧稜大‧胡旋 등이 있고, 연무에는 涼州‧綠腰‧甘州 등이 있다. 劍器에 대한 기록은 《文獻通考》 〈舞部〉에, “고대 武舞의 曲名으로 이 춤은 여자 기생이 성대하게 화장을 하고 빈손으로 춘다.[古武舞之曲名 其舞用女妓雄妝 空手而舞]”라고 하였다.
역주5 蔚跂 : 웅건하고 호탕한 모양을 말한다.
역주6 開元三載 : 《全唐詩》 注에, “다른 본에는 5년으로 되어 있다.[一作五年]”고 하였는데, 개원 5년이면 두보가 5살 때이다.
역주7 郾城 : 지금 河南省 臨潁縣 남쪽의 郾城縣을 말한다. 두보가 어렸을 때 여기 산 적이 있다. 臨潁과 함께 郾城은 당나라 때 모두 許州에 속했다.
역주8 公孫氏 : 여기서는 公孫大娘을 가리킨다.
역주9 劍器渾脫 : 武舞의 일종으로 唐代에 유행하던 渾脫舞와 劍器舞가 융합되어 새롭게 만들어진 武舞를 말한다. 혹자는 劍器와 渾脫을 각각 다른 춤으로 보기도 한다.
역주10 瀏灕 : 춤추는 자태가 활발한 모양을 형용한 것이다.
역주11 高頭 : ‘前頭‘를 가리키는 말인 듯하다. 항상 황제 앞에서 춤추고 노래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역주12 宜春梨園 : 옛 터가 지금의 陝西省 長安縣에 있다. 宜春園은 당 현종 때 歌舞에 종사하는 궁녀들이 있던 곳이다. 현종이 직접 才人들을 가르치던 곳은 梨園이라 하고 여기에 속한 藝人들을 梨園弟子라 하였다. 梨園弟子 가운데는 궁녀 數百人은 宜春園에 살았다고 한다.
역주13 伎坊內人 : 伎坊은 敎坊을 말하며 노래와 춤을 가르치던 곳이다. 妓女가 宜春園에 들어오면 內人(나인) 혹은 前頭人이라 불렀다.
역주14 外供奉 : 궁전 밖에 살면서 일이 있을 때마다 궁전에 들어와 재주를 보여줬던 남녀 藝人들을 말한다.
역주15 聖文神武皇帝 : 聖文神武는 현종의 尊號를 말한다.
역주16 波瀾 : 여기서 波瀾은 춤추는 자태와 변화의 法度를 가리킨다.
역주17 張旭 : 蘇州人으로 당나라 때 유명한 草書의 名人이다. 字는 伯高로 ‘草聖’으로 불렸다. 머리에 먹을 적셔 글씨를 쓰기도 해서 세상에서는 張顚이라 불렀다. 顚은 미치광이라는 뜻이다.
역주18 鄴縣 : 지금의 河南省 臨潁縣 서남쪽의 安陽縣을 가리킨다.
역주19 西河劍器 : 劍器舞의 일종이다.
역주20 沮喪 : 낯빛이 변하는 것으로 솜씨가 기특하고 비범해 놀랐다는 뜻이다.
역주21 㸌如羿射九日落 : 㸌은 번쩍 빛나는 모양으로 劍光을 가리킨다. 羿는 后羿를 말한다. 고대 전설에, 요임금 때 해 열 개가 함께 떠 곡식을 태우고 초목이 죽자 요임금이 활을 잘 쏘는 예에게 해를 쏘아 없애게 하니, 예가 아홉 개를 쏘아 떨어뜨렸다고 한다. 《淮南子》 〈本經訓〉에 보인다.
역주22 來如雷霆收震怒 : 劍舞를 시작하는 모습을 형용한 것으로 크게 음악이 시작되고 나서 조금씩 음악소리가 잦아들 때 격렬하게 춤을 시작하므로 이렇게 표현하였다.
역주23 罷如江海凝淸光 : 춤을 마칠 때의 모습으로, 음악이 끝나고 동작을 멈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역주24 絳唇珠袖兩寂寞 : ‘絳唇’은 공손대랑의 美貌를, ‘珠袖’는 공손대랑의 춤추는 모습을 나타낸다. ‘兩寂寞’의 兩은 絳唇과 珠袖를 가리키고 ‘寂寞’은 공손대랑이 죽고 없어 그 모습도 춤도 볼 수 없어 적막하다 한 것이다.
역주25 芬芳 : 원뜻은 짙은 향기, 고운 향기를 말하나 여기서는 공손대랑의 뛰어난 예술을 가리킨다.
역주26 臨潁美人在白帝 : 臨潁美人은 공손대랑의 제자인 李十二娘을 가리킨다. 白帝는 지명으로 지금 四川省 奉節縣 동쪽의 白帝山이다. 蘷州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역주27 先帝 : 당 현종을 가리킨다.
역주28 五十年間 : 당 현종 開元 5년(717) 두보가 처음 춤을 보았을 때부터 지금 두보가 이 시를 쓰는 代宗 大曆 2년(767) 사이를 말한다.
역주29 澒洞 : ‘傾動’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모양을 말한다.
역주30 女樂餘姿映寒日 : ‘女樂’은 李十二娘을 가리킨다. ‘餘姿’는 李十二娘의 춤에 개원 연간 盛世의 모습이 남아 있음을 말하고 있다. ‘寒日’은 이 시가 씌어진 10월, 초겨울을 나타내지만 해 저물어 갈 곳 없는 고단함을 암시하고 있다.
역주31 金粟堆前木已拱 : ‘金粟堆’는 현종의 泰陵이 있는 金粟山으로 지금 陝西省 蒲城의 동북쪽이다. ‘木已拱’라 한 것은 당 현종이 세상을 떠난 때가 대종 보응 원년(762)이니, 이미 5년이 지났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하였다. ‘拱’은 양손으로 합쳐 잡을 수 있는 굵기를 말한다.
역주32 瞿塘石城 : 지명으로 蘷州를 가리킨다. 蘷州가 瞿塘峽에 가깝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石城’은 白帝山에 있는 白帝城을 가리킨다.
역주33 玳筵 : 瓊筵(호화로운 宴席)과 같다.
역주34 樂極哀來 : 일반적인 서술이 아니라 ‘樂’은 연회의 歌舞가 사람을 즐겁게 해줌을, ‘哀’는 자신의 영락한 신세와 국가의 盛衰가 슬픔을 낳는 것을 말한다.
역주35 老夫 : 작자 두보의 겸칭이다.
역주36 足繭荒山轉愁疾 : ‘足繭’은 발바닥에 생긴 굳은살이다. 청나라 仇兆鰲는 《杜詩詳註》에서 이 구절을 두고, “발에 굳은살이 박혀 갈 길 더딘데 도리어 근심은 가장 빠르다. 길 떠나려는데 차마 떠날 수가 없다.[足繭行遲 反愁太疾 臨去而不忍其去也]”라고 하였다.
참고자료
[참고자료]도곡陶谷 이의현李宜顯의 시에 〈觀劍舞有感 次杜甫舞劍器行韻〉가 《도곡집陶谷集》에 보이며, 유한준兪漢雋의 시에 〈後劒器行 戊戌○用杜詩公孫大娘釰器行韻〉라는 작품이 《금릉집金陵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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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64 관공손대랑제자… 505

당시삼백수(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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