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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2)

당시삼백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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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綸
雲開遠見
猶是孤帆一日程
晝眠知浪靜
舟人夜語覺潮生
愁鬢逢秋色
對月明
已隨征戰盡
更堪江上
[集評]○ 估客一聯 曲盡江行之景 眞善寫物也 - 宋 曾季狸, 《艇齋詩話》
○ 言前途雖不遠 而舟行則已久矣
是以習知估客舟人之事 而我之客懷 可勝道哉
愁鬢逢秋而越凋 歸心對月明 而彌切也
況舊業蕩盡 兵戈不息 歸期詎有耶 - 明 唐汝詢, 《唐詩解》 卷44
○ 第六句中歸心二字 是一篇之眼 前五句寫歸心之急 後二句寫歸心所以如此之急故 - 淸 趙臣瑗, 《山滿樓箋注唐詩七言律》 卷3
○ 讀三四語 如身在江舟間矣 詩不貴景象也 - 淸 沈德潛, 《唐詩別裁集》 卷14
○ 起句點題 次句縮轉 用筆轉折有勢 三四興在象外 卓然名句 五六亦兼情景 而平平無奇 收切鄂州 有遠想 - 淸 方東樹, 《昭昧詹言》 卷18
○ 前解 寫盡急歸神理
言望見漢陽 便欲如隼疾飛 立抵漢陽而無奈 計其遠近 尙必再須一日也
三四承之 言雖明知再須一日 而又心頭眼底不覺忽忽欲去
於是厭他估客 胡故晝眠 喜他舟人斗地夜語
蓋晝眠便是不思速歸之人 夜語便有可以速去之理也
若只作寫景讀之 則旣云浪靜 又云潮生 此成何等文法哉 - 淸 金聖嘆, 《金聖嘆選批唐詩》 卷4
○ 漢陽城在武昌江北 卽今之漢陽府也
覺潮生 潮海潮也
海潮上不至潯陽 今云潮者 鼓吹注 以爲江水漲也 夜語謂江漲時舟人皆起 緩其繫舟之索而話也
舊案征職盡
本集題下自注云 至德中作
綸河中人 時安史方亂 三河淪陷於賊
鼓鼙說文騎鼓也
呂氏春秋帝嚳令人作鼙鼓之禁
禮月令修鞞鼓 注鼓廊也
張羊皮冒之鞞裨也 助鼓節也
鞞鼙通 - 元 楊士宏, 《唐音》 卷5


〈저물녘 鄂州에 머물며〉
노륜
구름이 열리자 멀리 한양성이 보이는데
한 척의 돛단배로 하루면 닿을 수 있을 듯
장사꾼이 낮잠을 자니 물결이 고요한 줄 알겠고
뱃사공이 밤에 떠들썩하니 조수가 밀려오는 줄 알겠다
三湘에서 수심에 센 귀밑머리로 가을 경물을 만나고
만리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으로 밝은 달을 바라본다
옛 家産은 이미 전쟁으로 인해 모두 사라졌는데
강가 전장의 북 소리 어이 다시 견디랴
[集評]○ ‘估客’ 一聯은 뱃길의 경관을 곡진하게 표현하였으니 진실로 대상을 잘 묘사하였다.
○ 앞의 여정이 비록 멀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배로 돌아다닌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이 때문에 ‘估客’과 ‘舟人’의 일을 익숙하게 알지만 자신의 객수를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수심에 센 귀밑머리는 가을을 만나 더욱 세고,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은 밝은 달을 만나니’ 더욱 절실하다.
하물며 ‘舊業’이 모두 사라졌는데 兵火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돌아갈 날을 어찌 기약할 수 있겠는가.
○ 제6구 중 ‘歸心’ 두 글자가 이 한 편의 詩眼이다. 앞의 다섯 구는 ‘歸心’이 급함을 썼고, 뒤의 두 구는 ‘歸心’이 이와 같이 급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썼다.
○ 제3‧4구를 읽으면 내 몸이 마치 강 위의 배에 있는 듯하다. 시는 경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 起句는 제목을 풀어 쓴 것이고, 다음 구는 축소하여 전환시킨 것인데, 필치의 전환에 힘이 있다. 제3‧4구는 흥이 형상 밖에 있어 뛰어난 명구이다. 제5‧6구 역시 情과 景을 겸하였는데 범범하여 특별한 것이 없지만 ‘鄂州’를 절실하게 담아내어 심원한 생각이 있다.
○ 전반부 풀이: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神理를 모두 썼다.
한양성이 바라보이니, 새처럼 빨리 날아서, 바로 한양에 도달하고 싶지만 어찌할 수가 없으니, 원근의 거리를 계산해 보면 아직도 하루를 더 기다려야 한다.
3‧4구는 이를 받아서 비록 다시 하루를 더 가야 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지만, 또 가슴속과 안중에는 저도 모르게 훌훌 떠나가고 싶음을 말하였다.
이때 그를 싫어하는 상인은 무슨 까닭인지 낮잠을 자고 있고, 그를 좋아하는 뱃사람은 밤새도록 이야기를 다하였다.
대개 ‘晝眼’이라고 한 것은 빨리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며, ‘夜語’라고 한 것은 곧 빨리 돌아갈 수 있는 이치가 있다는 것이다.
만약 다만 경물을 그려놓은 것으로만 읽는다면 ‘물결이 고요하다.[浪靜]’라고 말하고, 또다시 ‘조수가 일어난다.[潮生]’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어떤 문법을 이루겠는가.
○ 漢陽城은 武昌의 강북에 있으니 지금의 漢陽府이다.
‘覺潮生’이라고 하였으니, ‘潮’는 海潮이다.
해조는 위로 潯陽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못하는데, 여기서 ‘潮’라고 한 것에 대하여 《唐詩鼓吹》의 注에는 강물이 불러났기 때문이라고 하였고, ‘夜語’는 강물이 불어나서 그때 뱃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배를 묶어놓은 줄을 풀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옛 〈주석의〉 견해는 식견을 모두 거둬들인 것이다.
본 시집의 제목 아래 붙여놓은 自註에는 ‘至德 年間에 지었다.’고 밝혀놓았다.
노륜은 河中 사람인데, 당시에 안녹산과 사사명이 난을 일으켜 三河 지역이 모두 적의 수중에 들어갔다.
‘鼓鼙’는 《說文解字》에 ‘騎鼓’라고 되어 있다.
《呂氏春秋》에 의하면 帝嚳이 사람들로 하여금 鼓鼙를 금하도록 하였다.
《禮記》 〈月令〉에서 修鞞鼓에 대한 주석에 ‘鼓廊’이라고 하였다.
양가죽을 늘려서 씌운 것을 鞞裨라고 하는데, 북의 박자를 돕는다.
‘鞞’와 ‘鼙’는 통하는 글자이다.


역주
역주1 晩次鄂州 : ‘鄂州’는 지금의 湖北省 武漢市 武昌이다. ‘次’는 여행 중 留宿하는 것을 뜻한다.
역주2 漢陽城 : 지금의 武漢市 漢陽이다. 漢水 北岸으로 악주의 서쪽이다.
역주3 估客 : 장사꾼을 뜻한다.
역주4 三湘 : ‘三湘’은 湖南省의 湘鄕, 湘潭, 湘陰(或 湘源)인데, 호남성을 관통하는 상수의 지류인 沅湘, 瀟湘, 資湘을 지칭한다는 설이 있다. 여기서는 호남성의 山水를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역주5 萬里歸心 : 盧綸의 고향은 蒲州(현재 山西省 永濟縣)이고, 당시 荊楚 지역을 여행하고 있어 거리가 매우 멀었으므로, ‘萬里’라고 표현한 것이다.
역주6 舊業 : 자기 집안의 莊園과 家産을 뜻한다.
역주7 鼓鼙 : ‘鼙’는 군대에서 사용하는 작은 북을 지칭하는데, 전쟁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전장의 북 소리라는 뜻으로 쓰였다. 《史記》 〈樂書〉에 “군자는 고비 소리를 들으면 병사를 이끄는 신하를 생각한다.[君子聽鼓鼙之聲 則思將帥之臣]”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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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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