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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3)

당시삼백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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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逢
〈강남에서 李龜年을 만나다〉
杜甫
두보
기왕의 댁에서 자주 만났었고
최구의 집 앞에서도 몇 번이나 들었었지
正是江南好風景
바로 여기 강남에서 가장 풍경 좋을 때
꽃잎 지는 시절에 또 그대를 만났구려
[通釋] 예전에 나는 기왕의 공관에서 자주 李龜年 그대를 만났었고, 崔九의 옛집에서 역시 몇 번이나 그대의 연주를 들은 적이 있었다. 지금처럼 강남의 풍경이 너무나 좋을 때, 저물어가는 봄, 꽃잎 떨어지는 계절 속에, 또 이곳에서 그대를 만나는구나.
[解題] 이 시는 두보가 세상을 떠난 해인 59세에 지은 작품이다. 즉, 이 시는 그의 생애에서 마지막 작품이 되는 셈이며, 그로 인해 인구에 회자되었다. 당시 그는 가족을 데리고 長江에서 船上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潭州에서 우연히 唐代 제일의 가객이었던 이귀년을 만났다.
1, 2구는 두보가 젊은 시절 낙양의 문인과 명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귀년을 자주 만나 그의 노래를 여러 번 감상한 일을 회상한 것이다. 두보와 이귀년이 만났던 때는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40년 후에 安史의 난을 거치면서 두 사람은 처량하게 강남 땅에서 유랑하는 처지가 되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귀년을 40년 만에 만나면서 두보가 남다른 悲感을 느꼈을 것은 당연하다. 3‧4구에서는 그러한 상황을 그려내었는데, 이러한 비감을 슬프고 처절하게 묘사한 것이 아니라 너무나 淡淡하게 묘사하고 있다. ‘正是江南好風景’에서 보이듯 비애를 나타내는 글자는 하나도 없으며, 오히려 만난 장소와 시기가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을 뿐이다. 또한 4구의 ‘又’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기왕과 최구의 저택에서 만난 이래 40여 년 만에 ‘또’ 만났다는 것은 그 사이 일어난 전란, 그로 인한 영락한 신세 등을 모두 담아내는 역할을 한다.
시에서는 두 사람의 처지를 비통하게 만든 전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으며, 직접적으로 현재의 처지를 통탄해하는 표현도 전혀 없다. 그러면서도 많은 사연과 슬픔을 28자 속에 담담히 담아내었으니, 두보의 예술적 경지가 바로 여기에서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후대의 평자들이 이 시를 두고 두보의 七言絶句 가운데 단연 壓卷이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集評]○ 此與劍器行同意 今昔盛衰之感 言外黯然欲絶 見風韻於行間 寓感慨於字裏
[集評]○ 이 시는 〈劍器行〉과 뜻이 같으니, 고금의 성쇠에 대한 감개를 言外에서 비통하게 끊어내려 하였으나, 風韻은 행간에 보이고 감개는 글자 속에 기탁하였다.
卽使龍標 供奉(李白)操筆 亦無以過 乃知公於此體 非不能爲正聲 直不屑耳
만약 龍標(王昌齡)와 이백이 함께 붓을 잡게 한다 해도 이보다 더하지는 못할 것이니, 이제야 공이 이 體格에서 正聲을 사용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단지 개의치 않았을 뿐이라는 것을 알겠다.
有目公七言絶句爲別調者 亦可持此解嘲矣 - 明 黃生, 《杜工部詩說》
공의 칠언절구가 別調로 이루어졌다고 지목하는 자들은 또한 이것을 가지고 조롱할 것이다.
○ 落花時節又逢君 多少盛衰今昔之思
○ ‘꽃잎 지는 시절에 또 그대를 만났구려.[落花時節又逢君]’라는 구절은 고금의 성쇠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들어 있다.
上二句是追舊 下二句是感今 却不說盡 偏着好風景三字 而意含在正是字又字內 - 淸 黃叔燦, 《唐詩箋注》
위의 두 구절은 옛일을 추억하는 것이요, 아래 두 구절은 지금에 대한 감회이지만 오히려 다 말하지 않았으니, 단지 ‘好風景’ 세 글자에 착안하여 그 의미를 ‘正是’와 ‘又’자 속에 포함시켰다.
○ 少陵七絶多類竹枝體 殊失正宗 此詩純用正鋒藏鋒 深得絶句之味 - 淸 李鍈, 《詩法易簡錄》
○ 소릉(두보)의 칠언절구는 대부분 竹枝體와 비슷하여, 특히 正宗을 잃었다. 하지만 이 시는 순전히 正鋒과 을 사용하여 절구의 묘미를 깊이 얻었다.
○ 世運之治亂 年華之盛衰 彼此之凄涼流落 俱在其中 少陵七絶 此爲壓卷 - 淸 孫洙, 《唐詩三百首》
○ 世運의 治亂과 세월의 흥망성쇠, 피차간의 처량함과 영락함이 모두 그 안에 갖추어져 있으니, 소릉(두보)의 칠언절구는 이 때문에 압권이다.
○ 上二句極言其寵遇之隆 下二句陡一轉 以見盛衰不同 傷龜年亦所以自傷也 - 淸 王文濡, 《唐詩評注讀本》
○ 앞의 두 구절은 恩遇의 융성함을 지극하게 말했고, 뒤의 두 구절은 갑자기 한 번 전환하였으니, 이로써 盛衰의 다름을 볼 수 있다. 이귀년을 아파한 것은 또한 스스로를 아파했기 때문이다.
역주
역주1 李龜年 : 唐 玄宗 때의 유명한 樂工이다. 당시 李龜年, 李彭年, 李鶴年 삼 형제는 모두 藝術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이들이었는데, 李彭年은 舞에 능하였고, 李龜年과 李鶴年은 唱歌에 능했다고 한다. 그들이 창작한 〈渭川曲〉은 특히 당 현종의 인정을 받았다.
역주2 岐王宅裏尋常見 : ‘岐王’은 睿宗의 第4子인 隆範을 말한다. 예종이 즉위하자 융범을 岐王에 봉했다. 문장을 사랑하는 好學之士로서, 선비들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극진한 예로써 대접하였다. 이 구절은 杜甫가 기왕의 집에서 자주 李龜年을 만났던 풍경을 묘사한 것이다.
역주3 崔九堂前幾度聞 : ‘崔九’는 崔滌으로, 당 현종 때의 사람이다. 형제들 가운데 排行이 아홉 번째이므로 ‘崔九’라 부른 것이다. 中書令 崔湜의 동생이다. 현종 때 殿中監을 역임하여 궁에 드나들면서 현종의 총애를 받았다. ‘崔九堂前’은 최구의 옛집을 일컫는 말이다. 일설에는 연대를 상고하여 같이 보기도 한다. 즉 岐王과 崔九는 모두 開元 14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그때는 梨園弟子가 없을 때였다. 때문에 두보가 이귀년을 만났던 때는 天寶 10년 후일 것으로 추정하여 시 속에서 일컬은 ‘岐王’은 기왕의 後嗣인 것으로 보기도 한다.
역주4 落花時節又逢君 : ‘落花時節’은 重意的인 말로 해석된다. 즉 봄이 저물어 꽃잎이 떨어지는 시절의 풍경을 아쉬워하는 모습과, ‘亂世’를 암시하는 것이다.
역주5 藏鋒 : 원래는 書法 용어의 하나이다. 즉 필봉을 숨기고 드러내지 않는 것을 말하는데, 引伸하여 才華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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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71 강남봉이귀년 600

당시삼백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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