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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1)

당시삼백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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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哀王孫〉
〈왕손을 애달파하다〉
杜甫
두보
長安城頭
장안성 머리의 흰 머리 까마귀
夜飛上呼
밤에 날아와 연추문 위에서 울고
인가를 향해 날아가 큰 집을 쪼아대니
屋底達官走避胡
집 안의 대관들은 오랑캐 피해 달아난다
금채찍 끊어지고 九馬는 죽었는데
피붙이들 함께 달아나지도 못했네
腰下寶玦靑珊瑚
허리에는 옥패와 푸른 산호를 차고서
可憐王孫泣路隅
가련하다 왕손이여, 길가에서 울고 섰네
問之不肯道姓名
누구인지 물으니 이름은 말하려하지 않고
但道困苦乞爲奴
그저 힘들고 괴로우니 종으로 삼아 달라고만 하네
已經百日竄荊棘
백일이 넘도록 가시밭길로 도망 다녀
身上無有完肌膚
몸에는 피부가 온전한 곳 없어라
子孫盡
高帝의 자손 콧마루가 높다더니
自與常人殊
왕손은 스스로 보통사람과 다르구나
이리떼는 도읍에 있고 용은 들에 있으니
王孫善保千金軀
왕손이여 천금 같은 옥체를 잘 보전하시길
不敢長語臨交衢
네거리에서 감히 길게 말하지 못하고
且爲王孫立斯須
왕손을 위하여 잠시 서있기만 하였다
昨夜東風吹血腥
“어젯밤 동풍에 피비린내 실려 불어오더니
東來滿
동쪽에서 온 낙타 옛 도읍에 가득 찼습니다
好身手
북방의 건아들은 솜씨가 좋다했는데
예전엔 용맹하더니 지금 어찌 그리 우둔한지
듣자니 천자께서 이미 왕위 물려주어
거룩한 德으로 북쪽의 남선우를 복종시켰다 하고
화문의 回紇이 얼굴 그어 설욕하길 청했답니다
愼勿出口他人狙
다른 사람 엿들을까 말조심 하소서”
哀哉王孫愼勿疏
애닯구나 왕손이여 삼가 소홀히 하지 마시길
佳氣無時無
오릉의 상서로운 기운은 없을 때가 없었으니
[通釋] 장안성 언저리에 흰 머리의 까마귀가 밤에 연추문 위로 날아와 우짖자 현종이 그 문을 통해 달아났다. 흰 머리 까마귀가 다시 큰 집으로 나아가 쪼아대자 집에 있던 고관대작들은 모두 안녹산의 반군을 피해 달아나기 바쁘다. 천자의 수레가 속력을 내며 달리니 금 채찍이 끊어지고 황제의 수레를 끌던 九馬는 모두 도주 하던 중에 죽어버렸다. 이렇게 몰래, 그리고 황급히 피난 가느라 황제의 피붙이조차 함께 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가련한 왕손이 길가에 서서 울고 있는데, 차림을 보니 허리에는 옥패와 푸른 산호 같은 寶玉을 차고 있다. 그의 성명을 물었으나 말하려 하지 않고, 단지 매우 힘드니 다른 이의 노예라도 되게 해달라는 말을 한다. 그는 매우 오랜 기간 동안 가시덤불 속에 몸을 숨기며 도망 다녀 피부가 온전한 곳 없이 모두 상처가 나 있었다. 漢高祖의 자손은 콧마루가 높다고 하더니 황제의 자손이라 그런지 보통 사람과는 다른 모습이다. 지금 이리떼와 같은 반군들은 경도에 있는데 황제께서는 타향에 유락해 있으니, 왕손께서 천금 같은 옥체를 잘 보전하시길 바랄 뿐이다.
나는 네거리에 서서 감히 왕손과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하지만 잠깐이나마 그를 모시며 함께 서있었다. 나는 왕손에게 말한다. “어젯밤 동풍이 불어올 때 안녹산의 반군이 사람들을 무수히 죽여 생긴 피비린내가 실려 오더니, 수많은 낙타들이 황실의 보물을 싣고 동쪽에서부터 長安으로 와 있습니다. 哥舒翰이 북방의 군사들을 통솔함에, 평소에는 솜씨가 좋고 용맹하여 싸움에 능하더니 이번에는 어찌된 연유로 潼關의 수비에 실패하여 이렇게 우둔함을 보이는지요. 듣건대, 현종께서는 이미 숙종에게 보위를 물려주셨다고 합니다. 天子의 聖德으로 남선우를 복종시켰고, 회흘은 얼굴을 긋는 의식으로 唐을 도와 설욕하기를 청하고 있다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말을 왕손께서는 다른 이에게 함부로 해서는 안 되니, 그들이 왕손을 해칠 기회를 염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애닯구나 왕손이여. 부디 소홀히 하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오릉의 상서로운 기운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解題] 이 시는 王孫이 安祿山의 난 때 곤액을 당한 모습을 보고 애달파 하는 내용의 紀事詩에 해당한다. 이는 至德 2년(757) 봄, 두보가 장안에 있을 때 지은 작품으로 〈哀江頭〉와 대체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다. 두보는 당시 장안에 있으면서 겨울 내내 밖으로 다니지 못하다가, 봄이 오자 曲江 등지를 몰래 다녔는데, 길가에서 우연히 왕손을 만난 것이다. 그는 왕손에게 매우 깊은 동정을 느끼고 위로해주며, 아울러 옥체를 잘 보전하라는 당부의 말을 전한다.
시는 의미상 세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단락은 ‘興’의 작법을 사용하여 당시 혼란했던 世事를 암시하고 다음 단락을 이끌어낸다. 둘째 단락은 왕손이 피난하며 流落한 신세가 된 것을 묘사하였다. 셋째 단락은 작자가 傳聞한 내용을 통해 왕손을 위로하고, 시대를 걱정하는 작자 자신의 심회를 표출하였다.
[集評] ○ 結語反覆以中興望之 一韻到底 詩易而平直 此獨波瀾變化 層出不窮 似逐段轉韻者 七古能事已極 - 淸 沈德潛, 《唐詩別載》 卷6
[集評] 결어에서는 말을 뒤집어 (왕조가) 중흥하기를 바랐다. 하나의 韻으로 일관하였으며 시가 쉬우면서도 平直한데, 이 부분에서 유독 파란만장하게 변화를 일으키며 끊임없이 솟아 나와 다함이 없으니 단락을 따라 운을 바꾼 것과 같아서, 칠언 고시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한 것이다.
역주
역주1 頭白烏 : 흰 머리 까마귀를 말한다. 예전에는 까마귀를 상서롭지 못한 새로 여겼는데 특히 흰 머리 까마귀는 더더욱 그러했다고 전한다. 이 시에서는 安祿山의 반란을 암시하는 不吉한 징조로 사용되었다.
역주2 延秋門 : 唐 宮苑의 西門으로, 咸陽橋가 있어 그 아래로 渭水가 흐른다. 천보 15년(756) 6월에 潼關을 지켜내지 못해, 唐 玄宗이 이 문을 통해 도망하였다.
역주3 又向人家啄大屋 屋底達官走避胡 : 이 구절은 머리 하얀 까마귀가 먼저 연추문 위에서 우니, 현종이 곧 연추문을 통해 달아났고, 이후에 까마귀가 고관대작들의 집을 쪼아대자 그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주했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胡’는 安祿山의 반군들을 의미한다.
역주4 金鞭斷折九馬死 : 당 현종이 탄 수레가 금채찍을 휘둘러 빨리 달렸던 까닭에 채찍이 모두 끊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九馬’는 황제의 말인데, 이들 역시 미친 듯 달리다 모두 죽었다고 전한다.
역주5 骨肉不待同馳驅 : ‘骨肉’은 王孫을 뜻한다. 현종이 창망하게 도주함에, 왕손들을 일일이 챙기지 못하였던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단지 자신의 생명만을 보전하려 했던 황제에 대한 풍자가 깃들어 있다. ‘不待’가 ‘不得’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6 高帝 : 漢 高祖 劉邦이다.
역주7 隆準 : 콧마루가 높이 솟아있는 것이다. 《史記》 〈高祖本紀〉에, “한 고조는 그 모습이 콧마루가 높아서 용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高祖 爲人隆準而龍顔]”라 하였다. 여기서는 漢에 唐을 비유하여 황족들의 특징을 설명하려 하였다.
역주8 龍種 : 용을 君主에 비유하여, 그 자손을 龍種 즉 龍의 種子라 지칭하였다. 여기서도 왕손을 지칭한다.
역주9 豺狼在邑龍在野 : 이 구절은 안녹산이 이미 東都인 洛陽을 점령하고 황제로 칭하였던 일을 말한 것이다. ‘龍在野’는 현종이 촉 땅으로 도주한 것을 의미한다.
역주10 橐駝 : 낙타이다. 《唐書》 〈史思明傳〉에, “안녹산이 兩京을 함락하여 낙타로 御府의 진귀한 보화들을 范陽으로 옮긴 것이 그 끝을 알지 못할 정도였다.[祿山陷兩京 以駱駝運御府珍寶于范陽 不知紀極]”고 하였다.
역주11 舊都 : 여기서는 長安을 지칭한다.
역주12 朔方健兒 : 哥舒翰이 거느리던 삭방의 군사들을 지칭한다.
역주13 昔何勇銳今何愚 : 이는 천보 15년에 哥舒翰이 潼關을 지키다 안녹산에게 크게 패배한 일을 말한다.
역주14 天子已傳位 : 안녹산의 난이 일어난 이듬해에 玄宗이 肅宗에게 황위를 물려주었음을 말한다. 천보 15년 7월에 숙종이 靈武에서 황제의 지위에 올랐다.
역주15 聖德北服南單于 : ‘南單于’는 回紇인데, 숙종이 즉위한 후 사신을 파견하여 화친을 청하니 그 이듬해에 首領이 入朝하여 반란의 평정을 도왔다.
역주16 花門剺面請雪恥 : 花門山堡는 延海(지금의 甘肅省) 북쪽 300 리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서 ‘花門’이라 함은 花門山堡에 거주하는 回紇을 의미한다. ‘剺面’은 고대 흉노 풍속 가운데 얼굴을 칼로 그어 피를 내는 의식이다. 이는 충성과 통분을 표시하는 것인데, 여기서는 회흘이 병사를 내어 당이 안녹산의 반란을 평정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한 일을 지칭한다.
역주17 五陵 : 본래는 長安 부근에 있던 漢朝의 다섯 기의 陵墓를 일컫는 것으로, 高帝의 長陵, 惠帝의 安陵, 景帝의 陽陵, 武帝의 茂陵, 昭帝의 平陵이다. 현종 이전에 唐室 역시 다섯 기의 先帝의 陵墓가 있었으니, 高祖의 獻陵, 太宗의 昭陵, 高宗의 乾陵, 中宗의 定陵, 睿宗의 橋陵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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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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