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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3)

당시삼백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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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平調 其二〉
李白
借問漢宮誰得似
[集評]○ 薛司成文遇言 李太白淸平詞 一枝濃艶露凝香 雲雨巫山枉斷腸 借問漢宮誰得似 可憐飛燕倚新粧
倚者賴也 謂趙后專寵漢宮 只賴脂粉耳 可憐者嘲之之辭也 - 高麗 李齊賢, 《益齋先生文集》 卷10 《櫟翁稗說》
○ 李白淸平詞曰 一枝濃艶露凝香 雲雨巫山枉斷腸 借問漢宮誰得似 可憐飛燕倚新粧
唐汝詢云貴妃容色如花 覺襄王雲雨之夢 爲徒勞也
或者以枉斷腸屬壽王 恐非李白本意
又稗說云倚者賴也 謂趙后專寵漢宮 只賴脂粉耳
余謂倚猶恃也 如中詩依倚將軍勢之倚
蓋言其倚恃粧粉而矜夸自得之意
李詩又曰 自倚顔如花 其義亦同 - 朝鮮 李睟光, 《芝峯類說》 卷10, 文章部(三), 唐詩
○ 傳者謂 高力士指摘飛燕之事 以激怒貴妃 予謂 使力士而知書 則雲雨巫山 豈不尤甚乎
此云枉斷腸者 亦譏其曾爲壽王妃
使壽王而未能忘情 是枉斷腸矣
詩人比事以興 深切著明 特讀者以爲常事而忽之耳 - 元 蕭士贇, 《李太白集分類補註》 卷5
○ 首句承花想容來 言妃之美 惟花可比
彼巫山神女 徒成夢幻 豈非枉斷腸乎
必求其似 惟漢宮飛燕 倚其新妝 或庶幾耳 - 淸 黃生, 《唐詩摘鈔》 卷4
○ 此首 特用一枝二字 作指實之筆 緊承前首三四句作轉
言其如花之容 雖非世所常有 而今則現有此人 實如一枝名花 色香俱備 儼然在前也
兩首一氣相生 次首卽承前首作轉 如此空靈飛度之筆 非謫仙 孰能有之 - 淸 李瑛, 《詩法易簡錄》 卷13


〈청평조 두 번째 시〉
이백
한 가지 붉은 꽃, 이슬에 향기 어려 있는데
무산의 운우지정에 공연히 애만 끊었구나
묻노니 한나라 궁실엔 누가 이와 같을까
아름다운 飛燕도 새 단장 해야 하리
[集評]○ 司成 薛文遇가 말하기를 “李太白의 〈淸平詞〉에 ‘一枝仙艶露凝香 雲雨巫山枉斷腸 且問漢宮誰得似 可憐飛燕倚新粧’이라고 하였는데,
‘倚’는 ‘의지한다(賴)’의 뜻으로 趙后(조비연)가 한나라 궁실에서 총애를 독차지한 것이 오직 脂粉에 의지한 것을 말하며, ‘可憐’은 嘲笑하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 이백의 〈淸平詞〉에 “一枝濃艶露凝香 雲雨巫山枉斷腸 借問漢宮誰得似 可憐飛燕倚新粧”이라고 하였는데,
唐汝詢이 말하기를 “양귀비의 얼굴과 자태가 꽃과 같아 襄王이 꾸었던 雲雨의 꿈을 연상시키지만 헛된 수고일 뿐이다.
혹자는 ‘枉斷腸’을 壽王에 속하는 것이라고 보았으나 아마도 이백의 본의는 아닌 듯하다.” 하였고,
또 《櫟翁稗說》에 말하기를 “ ‘倚’는 ‘의지한다(賴)’의 뜻으로 趙后(조비연)가 한나라 궁실에서 총애를 독차지한 것이 오직 脂粉에 의지한 것을 말한다.”라고 하였으나,
나는 ‘倚’는 ‘믿다(恃)’의 뜻이니, 중국의 시 ‘’의 ‘倚’와 같다.
대개 그녀가 화장을 믿고 자신만만해 하였음을 말한다.
이백의 시에서 또 “라고 말한 것과 그 뜻이 같다.
○ 전하는 말에는 高力士가 趙飛燕의 일을 지적하여 양귀비를 격노시켰다고 하는데, 나는 생각건대 고역사가 글을 알았다면 ‘雲雨巫山’이 어찌 더욱 심하지 않겠는가.
이 구절에서 ‘枉斷腸’이라고 한 것은 또한 그녀가 일찍이 壽王의 妃였던 것을 기롱한 것이다.
만약 수왕이 양귀비에 대한 정을 잊지 못했다면 장차가 끊어질 듯한 슬픔을 느꼈을 것이다.
시인은 사건에 빗대어 흥을 일으킨 것이 매우 절실하고 분명한데, 다만 독자가 심상한 일로 여겨 경시하였을 뿐이다.
○ 첫 구절은 첫 번째 수의 ‘花想容’을 이어받아 妃의 아름다움은 오직 꽃만이 비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저 무산의 신녀는 한갓 꿈속의 환상일 뿐이니, 어찌 부질없이 애만 태운 것이 아니겠는가.
그 비슷한 것을 꼭 구하면 오직 한나라 궁실의 조비연일 뿐이니 오직 한나라 궁실의 비연이 새로운 화장에 의지한다면 혹 가까울 것이다.
○ 이 두 번째 수는 다만 ‘一枝’ 두 글자로 실물을 지시하는 필치를 만들어, 앞의 첫 번째 수 3‧4구를 긴밀하게 이어받아 전환시켰으니,
그 꽃과 같은 얼굴은 비록 세상에 항상 있는 것이 아니지만 지금 세상에 이러한 사람이 나타났으니, 실로 한 떨기 名花가 색과 향을 모두 갖추고 엄연히 앞에 있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두 수에 한 기운이 상생하고 다음 수가 앞의 수를 이어받아 전환시킴에, 이와 같이 참신하고 하늘을 나는 듯한 필치는 謫仙(이백)이 아니면 누가 능히 이와 같이 할 수 있겠는가.


역주
역주1 一枝紅艶露凝香 : ‘一枝紅艶’은 모란의 아름다운 자태로 양귀비를 비유한 것이다. ‘露凝香’은 모란에 이슬이 맺혀 향기를 머금고 있다는 뜻으로 이 역시 양귀비의 농염한 자태를 표현한 것이다. 모란과 양귀비에 얽힌 이야기에 대하여 《靑瑣記》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明皇(현종) 때 모란을 바친 자가 있는데, ‘楊家紅’이라고 불렀으니 楊勉家의 꽃이기 때문이다. 고역사에게 명하여 이 꽃을 가져다 양귀비에게 바치게 하였는데, 양귀비가 막 화장을 하려고 할 때여서 양귀비가 손으로 꽃잎을 집자, 얼굴을 매끄럽게 하는 지분이 손에 묻어 있다가 꽃잎 위에 찍혔다. 현종이 그 꽃을 보고 까닭을 묻자 양귀비가 이 사실을 말하니 현종이 명하여 仙春館에 심게 하였는데, 다음해 꽃이 필 때 윗면에 손가락 자국이 붉게 찍혀 있었다. 현종이 꽃을 감상하다 이 꽃을 보고 놀라 기이하게 여겨 ‘一捻紅’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뒷날 악부 중에 〈一捻紅曲〉이 있다.[明皇時 有獻牡丹者 謂之楊家紅 乃楊勉家花也 命力士 將花上貴妃 妃方對粧 妃用手拈花時 勻面脂在手 卽印於花上 帝見之問其故 妃以狀對 上詔於僊春館栽 來歲花開 上有手印紅迹 帝賞花 驚異其事 乃名爲一捻紅 後樂府中 有一捻紅曲]”라고 하였다.
역주2 雲雨巫山枉斷腸 : 춘추전국시대 楚나라 懷王이 高唐에 놀러갔다 꿈에서 巫山의 神女와 만나 사랑을 나누었다는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雲雨’는 신녀가 자신을 소개하며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밤에는 비가 된다고 말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후대에는 회왕과 신녀가 나눈 사랑을 뜻하여 남녀간의 교합을 의미하는 말로 쓰게 되었다. 이에 대하여 宋玉의 〈高唐賦〉에는 “옛날에 선왕(懷王)께서 高唐에 놀다가 피곤하여 낮잠을 잤는데, 꿈에 한 부인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첩은 巫山의 여인으로 고당에 들렀는데 군왕께서 고당에 놀러왔다는 소리를 듣고 枕席을 모시고자 하였습니다.’라고 하고 사랑을 나누었다. 그녀가 떠나면서 말하기를 ‘첩은 무산의 남쪽 높은 언덕의 돌산에 사는데, 다만 아침에 구름이 되고 저녁엔 비가 되어 아침마다 밤마다 陽臺의 아래에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과연 아침에 보니 그녀의 말과 같았다. 그러므로 사당을 세우고 ‘朝雲’이라 칭하였다.[昔者先王嘗游高唐 怠而晝寢 夢見一婦人 曰 妾巫山之女也 爲高唐之客 聞君遊高唐 願薦枕席 王因幸之 去而辭曰 妾在巫山之陽 高丘之岨 旦爲朝雲暮爲行雨 朝朝暮暮 陽臺之下 旦朝視之如言 故爲立廟 號曰朝雲]”라고 하였다. 枉斷腸은, 楚王과 巫山神女가 사랑을 나누었지만 끝내 하룻밤의 허망한 꿈에 지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에 비하면 양비귀가 허황된 꿈속의 신녀가 아니라 현실 속에 존재하는 절세가인임을 강조한 구절이다.
역주3 可憐飛燕倚新妝 : ‘飛燕’은 漢나라 成帝의 총애를 받아 왕후가 된 趙飛燕을 지칭한다. 절세미인으로 歌舞에 뛰어났는데, 성제가 微行할 때 그녀를 발견하고 입궁시킨 뒤 許皇后를 폐위시키고, 그녀의 동생인 合德과 함께 총애하여 후궁으로 삼았다. 이 자매는 이후 십여 년간 영화를 누리다 성제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합덕이 자살하고, 후에 庶人으로 강등된 조비연 또한 자살하였다. 자매가 함께 제왕의 총애를 받고 사치와 영화를 누리다 모두 정변에 휩싸여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는 점에서 양비귀는 조비연에 비유되기도 하였다.
역주4 장군의 세도에 의지하여 : 後漢 莘延年의 〈羽林郞〉 중 제3구이다.
역주5 스스로……믿었다 : 이백의 〈邯鄲才人嫁爲廝養卒婦〉 중 제3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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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18 청평조 기2

당시삼백수(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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