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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1)

당시삼백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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錄事宅觀畫馬圖
〈위풍 녹사의 댁에서 조 장군이 그린 말 그림을 보고서〉
杜甫
두보
國初已來畫鞍馬
개국한 이래 안장 얹은 말 그림
神妙獨數
신묘하기로는 오직 江都王을 꼽는데
將軍得名三十載
曹장군이 이름 얻은 지 삼십 년에
人間又見眞
세상에서는 다시 진짜 乘黃을 보게 되었네
일찍이 先帝의 神馬 照夜白을 그렸더니
龍池의 용이 연일 천둥처럼 내달리는 듯했지
內府의 붉게 빛나는 瑪瑙盌을
婕妤가 어명 전해 才人이 찾아오니
盌賜將軍拜舞歸
마노완 받은 장군은 절하고 춤추며 돌아가는데
가볍고 가는 비단들이 뒤따라 너울너울
貴戚權門得筆跡
貴戚과 權門 세도가들 그의 그림 얻고서야
始覺屛障生光輝
병풍에서 빛이 나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네
昔日太宗
옛날 태종의 준마 拳毛騧
근래 곽씨 집의 명마 師子花
今之新圖有二馬
지금 새 그림에 이 두 마리 말이 있으니
復令識者久歎嗟
다시금 識者들로 오랫동안 찬탄케 하는구나
此皆騎戰一敵萬
이 말들 모두 전쟁터에서 一當萬이라
縞素漠漠開風沙
흰 비단 넓은 곳에서 모래 바람 헤치는 듯
其餘亦殊絶
나머지 일곱 필의 말 또한 빼어나서
逈若寒空動煙雪
멀리 찬 하늘에 날리는 안개와 눈 같아라
말발굽은 긴 가래나무 사이를 내달리고
森成列
馬官과 廝養은 빽빽하게 늘어서 있네
可憐九馬爭神駿
아름답다, 아홉 필의 말 神駿함을 다투니
顧視淸高
돌아보는 눈빛은 淸高하고 기운은 深穩하네
借問苦心愛者誰
묻노니 고심하며 이 말을 아꼈던 자 그 누구였나
後有韋諷前
후대에는 위풍이요 전대에는 지둔이었네
憶昔巡幸
그 옛날 신풍궁에 巡幸했던 때를 생각하니
拂天來向東
천자의 깃발 하늘에 닿을 듯 동쪽으로 향했고
三萬匹
뛰고 내달리는 말이 삼만 필이었는데
皆與此圖筋骨同
모두 이 그림 속 말들과 筋骨이 같았네
보배 바쳐 河伯에게 조회 간 후로는
無復江水中
다시는 강물 속 교룡을 쏘지 못하였다네
君不見
그대는 보지 못했나
堆前松柏裏
금속산 무덤 앞 松柏 속에서
去盡鳥呼風
용매는 다 가 버리고 새들만이 바람 속에 우는 것을
[通釋] 개국한 이래 鞍馬를 가장 잘 그린 이로는 江都王을 꼽는다. 그런데 曹 장군이 畫名을 누린 지 30년이 된 지금 세상에서는 다시 진정한 神馬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일찍이 玄宗皇帝의 준마였던 照夜白을 그렸는데, 그 묘사가 얼마나 핍진하였던지 마치 龍池에서 나온 용이 연일 천둥처럼 내달리는 듯하였다. 궁궐 府庫에는 붉게 빛나는 瑪瑙碗이 있었는데, 황제께서 이것을 그에게 상으로 주고자 하시니, 婕妤는 그 명을 전하였고 才人은 그것을 찾아 왔다. 조 장군은 마노완을 얻은 후 절을 하고 춤을 추며 돌아갔는데 이후에도 황제께서는 고운 비단을 잇달아 내려 그에 대한 은총을 보여주셨다. 권문세가의 귀족들이 그의 그림을 얻어 병풍으로 만들어 펼쳐 놓으면 광채가 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예전에 태종의 명마였던 拳毛騧와 근래 郭子儀가 상으로 받은 준마 獅子花, 이 두 필의 말이 지금 이 그림 속에 모두 그려져 있으니 감식안을 가진 자들은 이 그림을 보고 연신 터져 나오는 讚嘆을 금하지 못한다. 이 두 필의 말은 전쟁터에서 모두 一當萬으로 대적할 수 있으니, 지금은 비록 한 폭의 흰 비단 속에 그려져 있지만 그 씩씩한 기운은 하늘에 닿아 마치 아득하게 모래바람을 헤치고 달리는 듯하다. 그림 속의 나머지 일곱 필의 말도 역시 빼어나 차가운 공중에 흩날리는 안개나 눈처럼 매우 奇特하다. 그들의 발굽은 길게 자란 가래나무 사이의 길을 내달리고, 말을 기르는 馬官과 廝役들이 그 옆에서 줄지어 서서 시중을 들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모두가 사랑스러운 이 아홉 필의 말은 자신의 神駿함을 다투어 드러내는데, 서로 돌아보는 그 눈빛이 청고하고 그 기운은 깊고도 온건하다. 이런 말들을 가장 애써서 사랑한 이들은 누구였던가. 예전에는 支遁이 그러했고 지금은 韋諷이 그런 사람이다.
예전에 太上皇(玄宗)께서 新豐宮에 巡幸하였을 때를 기억하니, 천자의 깃발은 하늘을 가린 채 위풍당당하게 동쪽을 향해 나아갔고 그때 약 3만 필의 말이 함께 동행하였는데 그 말들의 근육과 뼈대가 마치 지금 이 그림 속의 말들 같았다. 그러나 태상황께서 崩御하신 후 강물 속에서 교룡을 쏘아 죽이는 장대한 일은 두 번 다시 없었다. 그대는 보지 못했나, 金粟山 태상황의 무덤 가 松柏들 사이에 그 많던 준마들은 다 사라지고 그저 새들만이 남아 바람을 부르며 우는 것을.
[解題] 이 시는 그림을 묘사한 작품으로 曹霸 장군이 그린 말을 노래하고 있다. 《杜甫年譜》에 의하면 이 시는 대략 廣德 2년(764), 두보가 成都에 있을 당시에 지은 것이다.
시 전체는 의미상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단락은 曹霸가 말 그림을 잘 그려 황제가 상을 내렸고 당시 사람들은 다투어 그의 그림을 구하였다는 내용이다. 중간 단락에서는 그가 그린 〈九駿圖〉를 묘사하였는데, ‘借問苦心愛者誰 後有韋諷前支遁’은 시의 제목 가운데 ‘韋諷錄事宅’이라는 부분과 호응한다. 마지막 단락에서는 그림 속에 그려진 名馬로 인해 唐 玄宗을 연상하였는데 이는 이전의 역사를 상기시키는 言外의 뜻이 있어 깊은 감개를 느끼게 한다.
이 시의 마지막 단락은 桑田碧海, 興亡盛衰의 悲感을 담고 있는데, 이 같은 시의 흐름은 두보 詩의 특징적 면모라 할 수 있다. 두보는 당시 나그네 신세로 蜀 땅에 寓居하면서 기울어가는 나라의 형세와 그치지 않는 전란의 실상을 목도하였다. 그런데 曹霸도 당시에 皇室의 寵客에서 평범한 백성으로 전락하여 두보와 마찬가지로 떠돌다가 촉 땅에 이른 것이다. 때문에 이 시에는 畫馬와 眞馬가 조응하면서 말에 관한 탁월한 묘사가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 한 시대의 凋落을 바라보는 시인의 괴로운 심사가 드러나 있다.
[集評] ○ 絶大波瀾 無窮感慨 學者熟此 可悟開拓之法 皆與此圖筋骨同一句作鉤勒 更無奔放不收之病 味之 - 淸 施補華, 《峴傭說詩》
[集評] 거대하게 파란이 일어 감개가 무궁하니 배우는 자가 이 시를 잘 익히면 개척의 법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皆與此圖筋骨同’ 한 구는 의 수법을 썼으니 자유분방하지만 거두어들이지 못하는 병폐가 없음을 맛볼 수 있다.
○ 身歷興衰 感時撫事 惟其胸中有淚 是以言中有物 - 淸 浦起龍, 《讀杜心解》
자신이 몸소 흥망성쇠를 겪고서 시절을 느끼고 時事를 慰撫하니, 오직 그 가슴속에는 눈물이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 尤須玩其結構之妙 將江都王襯出曹霸 又將支遁襯出韋諷 便增兩人多少身分
모름지기 그 짜임새의 묘미를 음미해야 하니, 강도왕을 배경으로 조패를 드러내고, 또 지둔을 배경으로 위풍을 드러낸 것은, 두 사람(조패, 위풍)의 보잘것없는 신분을 높여준 것이다.
本畫九馬 先從照夜白說來 詳其寵賜之出 本結九馬 却想到三萬匹去 不勝龍媒之悲 前後波瀾亦闊
그림의 九馬는 먼저 조야백으로부터 말을 시작해서 총애를 내려준 것을 상세히 하였고, 마지막 단락의 九馬는 삼만 필의 말이 떠나간 데까지 생각이 미쳐 龍媒의 슬픔을 이기지 못하니, 전후의 파란이 또한 크다.
中敍九馬 先將拳毛獅子二馬拈出別敍 次及七馬 然後將九馬幷說 妙在一氣渾雄 了不着迹 眞屬化工之筆 - 淸 楊倫, 《杜詩鏡銓》
중간에 서술된 九馬는, 먼저 拳毛騧, 獅子花를 꼭 집어서 서술하고, 다음으로 七馬를 언급하였으며 그런 후에 九馬를 함께 설명하였으니, 하나의 기운이 渾雄한 데 묘함이 있으며 끝까지 꿰어맞춘 흔적이 없으니 참으로 조물주의 솜씨라 할 것이다.
○ 此歌先言其寵遇 篇中則追述巡幸 俯仰感慨 照應有情 而沈著可味 - 淸 胡夏客, 淸 仇兆鰲, 《杜詩詳註》에서 재인용
이 노래는 먼저 총애를 받았음을 말하였고 詩篇 가운데서는 순행하였던 일을 追述하였는데, 俯仰하는 사이에 감개하고 照應함에 마음이 담겨 있어 의 품격을 음미할 만하다.
○ 杜詩詠一物 必及時事 故能淋漓頓挫 今人不過就事塡寫 宜其興致索然耳 - 淸 張溍, 《讀書堂杜工部文集注解》
두보의 시는 하나의 사물을 읊어도 반드시 時事를 언급하기 때문에 그것들이 서로 잘 어우러져 있으면서도 필세의 변화가 강렬하다. 지금 사람들은 그저 일을 그대로 묘사하는 데 불과하니, 흥취가 거의 느껴지지 않음은 당연한 일이다.
역주
역주1 韋諷 : 閬州錄事였는데 그의 집이 成都에 있었다. 閬州는 지금의 四川省 閬中縣이다.
역주2 曹將軍 : 曹霸를 가리킨다. 《歷代名畫記》 卷9에, “조패는 魏나라 曹髦의 후손이다. 조모의 그림은 후대에 와서 유명해졌지만 조패는 開元 연간에 이미 명성을 얻었고, 天寶 말기에는 매양 부름을 받아 御馬와 功臣像을 模寫하였다. 관직이 左武衛將軍에 이르렀다.[曹霸 魏曹髦之後 髦畫稱於後代 霸在開元中已得名 天寶末 每詔寫御馬及功臣 至左武衛將軍]”라 하였다.
역주3 : 《全唐詩》에서는 이 시의 표제 아래 校註에, “어떤 본에는 끝에 歌자가 있고, 어떤 본에는 引자가 있다.”고 되어 있다.
역주4 江都王 : 唐 太宗의 조카인 李緖이다. 唐나라 张彦远의 《歷代名畫記》 卷10에, “강도왕 緖는 霍王 元軌의 아들이며 태종 황제의 조카였다. 재주가 많고 글씨를 잘 썼으며 鞍馬를 잘 그리기로 유명하였다. 垂拱 연간(685~688)에 관직이 金州刺史에 이르렀다.[江都王緖 霍王元軌之子 太宗皇帝猶子也 多才藝 善書 畫鞍馬擅名 垂拱中官至金州刺史]”고 하였다.
역주5 乘黃 : 神馬의 이름이다. 《廣川畫跋》에, “승황의 모습은 여우 같고 등에는 뿔이 있다. 曹霸가 그린 말은 한 번도 이와 같지 않았으니, 다만 그 신묘하고 빼어남을 말한 것일 뿐이다.[乘黃狀如狐 背有角 霸所畫馬 未嘗如此 特論其神駿耳]”고 하였다.
역주6 先帝 : 唐 玄宗을 가리킨다.
역주7 照夜白 : 玄宗이 타고 다녔다는 駿馬의 이름이다. 《明皇雜錄》에, “임금이 타는 말로는 玉花驄, 照夜白이 있다.[上所乘馬 有玉花驄照夜白]”고 하였다.
역주8 龍池十日飛霹靂 : ‘龍池’는 못 이름인데, 長安의 南內[唐代 長安의 興慶宮을 가리키는 말이다. 원래는 玄宗이 藩王으로 있을 때의 故宅이었는데, 나중에 宮이 되었다. 그 위치가 大明宮(東內)의 남쪽에 있으므로 ‘남내’라 이름하였다.] 南薰殿의 북쪽에 있다. 《唐六典》 注에, “흥경궁은 今上(玄宗)이 潛邸에 있을 때 살던 옛 집이다. 집 동쪽 우물이 있었는데 갑자기 물이 솟아올라 작은 연못이 되었다. 항상 그곳에는 雲氣가 서려 있고 간혹 黃龍이 그 안에서 나왔는데 못의 물이 점점 불어나더니 마침내 물이 솟아나와 龍池가 되었다.[興慶宮 今上潛龍舊宅也 宅東有井 忽湧爲小池 常有雲氣 或黃龍出其中 其沼浸廣 遂澒洞爲龍池]”고 하였다. 十日은 連日 이어진다는 뜻이다. 飛霹靂은 뛰어오르는 것의 빠르기가 천둥과 같음을 형용한 것이다.
역주9 內府 : 皇室의 창고이다.
역주10 瑪瑙盌 : ‘盌’은 주발[碗]이다. 盤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瑪瑙’는 보석의 일종이다.
역주11 婕妤傳詔才人索 : ‘婕妤’는 궁중의 女官이며, ‘傳詔’는 황제의 명령을 전달하는 것이다. ‘才人’ 역시 궁중의 여관이다. 《新唐書》 〈百官志〉에, “內官으로는 婕妤가 아홉 명인데 정3품이요, 才人이 일곱 명인데 정4품이다.[內官有婕妤九人 正三品 才人七人 正四品]”라고 하였다.
역주12 輕紈細綺相追飛 : ‘紈’과 ‘綺’는 모두 결이 가늘고 섬세한 비단이다. ‘相追飛’는 황제가 상을 내리는 데 마노완 이외에도 紈綺를 더 주어서 은총을 표시하였음을 말한다.
역주13 拳毛騧 : 唐 太宗이 타던 여섯 마리 준마 중의 하나이다. 《長安志》에, “태종의 여섯 마리 준마가 소릉 북궐의 아래쪽에 돌로 조각되어 있는데, 다섯 번째 말이 권모과이다.[太宗六駿刻石於昭陵北闕之下 五曰拳毛騧]”고 하였다. 黃馬인데 검은 주둥이를 가졌다.
역주14 郭家師子花 : ‘郭家’는 郭子儀이다. ‘師子花’는 곧 九花虯로서 代宗 李豫의 준마의 이름인데 훗날 功勳을 세운 곽자의에게 하사하였다. 《杜陽雜編》에, “대종이 陝西에서 돌아와 御馬인 구화규와 紫玉으로 된 채찍과 고삐를 곽자의에게 하사하도록 명하였다. 구화규는 곧 范陽節度使 李懷仙이 바친 것인데, 이마의 높이가 9촌이고 앞발굽이 기린과 같다. 또 獅子驄이 있는데 모두 그 부류이다.[代宗自陝還 命以御馬九花虯幷紫玉鞭轡賜郭子儀 九花虯 卽范陽節度使李懷仙所貢 額高九寸 拳如麟 亦有獅子驄 皆其類]”라고 하였다.
역주15 七匹 : 조장군이 그린 그림은 ‘九駿圖’이다.
역주16 霜蹄 : 말발굽을 가리킨다. 《莊子》 〈馬蹄〉에, “말은 발굽이 있어 서리나 눈을 밟을 수 있다.[馬蹄可以踐霜雪]”라고 했다.
역주17 長楸間 : 大路의 道上을 말한다. 曹植의 시에, “긴 가래나무 사이로 말을 달린다.[走馬長楸間]”고 했는데, 그 注에, “옛날 사람들은 길가에 가래나무를 심었다. 그래서 長楸라 한 것이다.[古人種楸於道 故曰長楸]”라고 하였다.
역주18 馬官廝養 : 마관은 말을 관리하는 관원이고, 시양은 군중에서 나무를 하거나 밥을 짓는 천한 일을 하는 자를 이른다. 《漢書》 〈路溫舒傳〉에, “시양을 공급해 주길 원한다.[願給廝養]”라 했는데, 韋昭가 말하기를, “땔나무 쪼개는 자를 廝라 하고 불을 때서 밥을 짓는 자를 養이라 한다.[析薪爲廝 炊烹爲養]” 하였다.
역주19 氣深穩 : 말의 기운과 도량이 깊이 沈潛해 있으면서도 穩重하여 아름다운 기품을 지녔음을 가리킨다.
역주20 支遁 : 晉나라 高僧이다. 《世說新語》 〈言語篇〉에, “支道林(지둔의 字)은 일찍이 몇 마리의 말을 키웠는데, 혹자가 이르기를 ‘道人이 말을 키우는 것은 운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하니, 지도림이 ‘나는 그 神駿함을 중히 여길 뿐이다.’ 하였다.[支道林 嘗養數匹馬 或謂道人畜馬不韻 支曰 貧道重其神駿耳]”는 기록이 보인다.
역주21 新豐宮 : 華淸宮이다. 《元和郡縣志》에, “漢나라 7년에 고조가 태상황이 되어 동쪽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 이곳에 縣을 설치하고 豐 땅 사람들을 이주시켜 그곳을 채웠기 때문에 新豐이라 한다. 화청궁은 여산 위에 있는데, 개원 11년에 처음 온천궁을 지었고 천보 6년에 改名하여 화청궁이라 하였다.[漢七年 高祖以太上皇思東歸 於此置縣 徙豐人以實之 故曰新豐 華淸宮在驪山上 開元十一年初置溫泉宮 天寶六年 改爲華淸宮]”고 되어 있다. 여기서는 玄宗이 화청궁에 거둥한 것을 가리킨다.
역주22 翠華 : 황제가 巡幸을 나갈 때 사용하였던 깃발로 翠鳥의 깃털로 장식하였다.
역주23 騰驤磊落 : ‘騰驤’은 뛰어오르고 내달린다는 뜻이다. 말이 내달리고 뛰어오르는 그 모습이 대단함을 말한 것이다.
역주24 獻寶朝河宗 : 《穆天子傳》에 의하면, 목천자가 서쪽으로 가다가 陽紆의 산에 이르러 물의 신 河伯을 만났다. 그는 하백에게 절을 하고 보물을 바친 후 돌아왔는데, 그로부터 오래지않아 죽었다. 여기에서는 이 故事를 들어 唐 玄宗의 죽음을 말하였다.
역주25 射蛟 : 《漢書》 〈武帝紀〉에, “원봉 5년 겨울에 남쪽으로 巡狩를 떠났다. 심양에서부터 강에 배를 띄워 가다가 강 가운데서 직접 교룡을 쏘아 잡았다.[元封五年冬行南巡狩 自尋陽浮江 親射蛟江中 獲之]”고 하였다. “다시 교룡을 쏘지 못하였다.”는 말 또한 玄宗의 죽음을 의미한다.
역주26 金粟 : 산이름이다. 玄宗을 金粟山에 장사지내고 泰陵이라 하였다.
역주27 龍媒 : 말 이름이다. 《漢書》 〈禮樂志〉에, “천마가 오니 용이 오게 될 매개이다.[天馬徠兮龍之媒]” 했다. 후에 이로 인하여 준마를 龍媒라 부르게 되었다.
역주28 鉤勒 : 摹寫하는 방법의 한 가지로, 모사할 글씨의 가장자리를 선으로 가늘게 그리는 것을 말한다.
역주29 말에 실체가 있다 : 《周易》 家人卦 〈象傳〉에서 “바람이 불로부터 나옴이 家人이니, 君子가 이것을 보고서 말에 진실함이 있고 行實에 항상함이 있게 한다.[風自火出家人 君子以言有物而行有恒]”고 하였다.
역주30 沈著 : 着實하면서도 가볍거나 浮薄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품격 용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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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60 위풍록사택관조… 779

당시삼백수(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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