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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2)

당시삼백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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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題 二首之一〉
李商隱
來是空言去絶蹤
月斜樓上
夢爲遠別啼難喚
書被催成墨未濃
蠟照半籠
已恨蓬山遠
更隔蓬山一萬重
[集評]○ 通篇一意反覆 只發揮得來是空言去絶蹤七字耳
言我一夜之間 輾轉反側 而因見夫月之斜 因聞夫鍾之動 思之亦云至矣
乃通之夢寐 而夢爲遠別 何踪跡之可尋乎
味其音書 而書被催成 寧空言之足據乎
蠟照半籠 言燈光巳淡 麝薰微度 言香氣漸消 夜將盡而天欲明之時也
言我之凄淸寂寞至此 較之蓬山迢隔 不啻倍蓰
則信乎來是空言去絶踪也 - 淸 陸昆曾, 《李義山詩解》
○ 又有隱意隱字者 曰無題格
如李商隱詩 來是空言去絶蹤 月斜樓上五更鐘 夢爲遠別啼難喚 書被催成墨未濃 蠟燭半籠金翡翠 麝香數度繡芙蓉 劉郞已恨蓬山遠 更隔蓬山一萬重 是也 - 淸 蔡鈞, 《詩法指南》 卷3
○ 極言兩人情愫之未易通
開口便將世間所謂幽期密約之醜 盡情掃去
其來也固空言 其去也已絶蹤 當此之時 眞是水窮山斷
然每到月斜鐘動之際 黯然魂銷
夢中之別 催成之書 幽憶怨亂 有非膠漆之所能喩者
乃知世間咫尺天涯之苦 正在此時
遙想翡翠燈籠 芙蓉緯幙 所謂其室則邇 其人甚遠
縱復瀝血刳腸 誰知我耶 - 淸 姚培謙, 《李義山詩集箋注》
○ 此四章 與昨夜星辰 二首判然不同
蓋恨令狐綯之不省陳情也
首章首二句謂綯來相見 僅有空言去 則更絶蹤矣
令狐爲內職 故次句點入朝時也
夢爲遠別 緊接次句 猶下云隔萬重也
書被催成 蓋令狐促義山代書而攜入朝
文集有上綯啓 可推類也
五六言留宿蓬山 唐人每以比翰林仙署
怨恨之至 故言更隔萬重也
若誤認艶體 則翡翠被中 芙蓉褥上 旣已 豈尙徒託空言而有夢別催書之情事哉 - 淸 馮浩, 《玉谿生詩集箋注》 卷2


〈무제 두 수 중 첫 번째 시〉
이상은
다시 온다는 빈말을 남긴 뒤 발길을 끊으시니
달 기운 누대 위에서 오경의 종소리를 듣는다
꿈속에서 멀리 떠나보낼 때 우느라 불러보지도 못했건만
편지도 재촉 속에 쓰자니 먹빛도 진하지 못하구나
촛불은 금비취 가리개에 반쯤 가려져 있는데
사향은 연꽃 휘장 너머로 은은히 스며온다
劉郎은 봉래산이 멀다고 한탄했지만
다시금 봉래산을 만 겹 산이 가로막네
[集評]○ 한 편 전체가 한 가지의 뜻을 반복하였으니, 다만 표명하여 얻은 것은 ‘來是空言去絶蹤’ 일곱 자일 뿐이다.
자신이 하룻밤 동안 전전반측하였고, 이로 인하여 달이 비스듬히 비추는 것을 보았고, 또 이로 인하여 종소리의 울림을 들었으니 그를 생각함 역시 지극하다 할 것이다.
이어 꿈속에서라도 소식을 듣고 싶었으나 멀리 이별하는 꿈을 꾸니 어찌 그의 종적을 찾을 수 있겠는가?
그 편지를 음미하면 재촉을 받으면서 서둘러 쓴 것이니, 어찌 공연히 한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촛불의 빛이 반만 가렸다고 한 것은 초의 불빛이 이미 흐려진 것을 말하며, 사향의 향기가 은은하게 넘어온다고 한 것은 향기가 점차 옅어져 밤이 다하고 하늘이 밝을 때임을 말한 것이다.
자신이 처량하고 적막하기가 이와 같다고 하였으니, 봉래산이 먼 것과 비교한다면 여러 곱절일 뿐만이 아니다.
‘來是空言去絶蹤’은 참으로 그러하다.
○ 또 숨겨진 뜻과 숨겨진 글자가 있는 것을 ‘無題格’이라고 한다.
예컨대 李商隱의 시에 ‘來是空言去絶蹤……更隔蓬山一萬重’이 이것이다.
○ 두 사람의 정감이 쉽게 소통하고 있지 않음을 극단적으로 말하였다.
입을 열면 세간에서 말하는바 은근한 약속이니 밀약이니 하는 누추한 설을 끌어와 시 속의 情을 모두 일소해버린다.
그가 오겠다고 한 것은 진실로 빈말이고, 그가 떠났다는 것은 이미 발길을 끊은 것이니 이때에는 진실로 물이 다하고 산이 끊어진다.
그러나 매양 달빛이 기울고, 종이 울리는 순간이면 처연하게 넋이 나간다.
꿈속에서 이별을 하고 재촉하여 편지를 쓰니, 가슴 깊은 그리움과 원망으로 혼란스러워, 이는 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몸은 지척지간에 있어도 마음은 천애지간에 있다는 고통이 바로 이때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취가 수놓인 등잔 가리개와 부용이 그려진 장막을 아득히 회상하니, 이른바 그가 있는 방은 가까이 있지만 그 사람은 멀리 있다는 것이다.
설사 다시 피를 흘리고 창자를 도려낸다 한들 누가 나를 알아줄 것인가.
○ 이 네 수와 ‘昨夜星辰’(〈無題〉), 두 작품은 판연히 다르다.
대개 영호도가 자신의 진정을 살펴보지 않음을 한탄한 것이다.
첫 수의 첫 두 구는 영호도가 찾아와 보고서는 겨우 빈말을 남기고 떠나갔다고 하였으니 발길을 완전히 끊은 것이다.
영호도가 內職에 있었으므로 다음 구에서는 입조할 때로 이어진다.
‘夢爲遠別’을 다음 구에서 바로 이어서 말하였으니 아래에서 만 겹이나 떨어져 있다고 말한 것과 같다.
‘書被催成’은 대개 영호도가 義山(李商隱)을 재촉하여 대신 글을 쓰게 하여 그것을 가지고는 입조한 것이다.
문집에 〈上綯啓〉라는 글이 있는데 이와 같은 일임을 추측할 수 있다.
5‧6구는 봉래산에서 유숙하였음을 말하였으니, 당나라 사람들은 매양 이것을 翰林院에 비유하였다.
원망이 지극하기 때문에 다시 만 겹의 산에 가로막혀 있다고 말한 것이다.
만약 艶體로 오인한다면 비취가 그려진 이불과 부용이 그려진 요 위로 이미 기꺼이 온 것이니, 어찌 한갓 ‘空言’에 의탁하여 ‘夢別’이며 ‘催書’하는 일이 있었겠는가.


역주
역주1 五更鐘 : ‘五更’은 황혼부터 새벽까지의 저녁을 5등분하여 甲夜, 乙夜, 丙夜, 丁夜, 戊夜 또는 一更, 二更, 三更, 四更, 五更 등으로 지칭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막 동이 틀 무렵을 뜻한다. 一更이 지날 때마다 종이나 북 등을 쳐서 시간을 알렸으므로, ‘오경종’은 저녁의 마지막 종소리, 즉 밤을 꼬박 새웠음을 뜻한다.
역주2 金翡翠 : 비취새가 그려진 장막을 뜻한다. 금색 실로 비취새 문양을 수놓은 장막의 일종으로, 잠잘 때 촛불의 빛을 가리기 위해서 사용하였다.
역주3 麝熏微度繡芙蓉 : ‘麝熏’은 사향을, ‘繡芙蓉’은 부용꽃을 수놓은 장막을 지칭한다. ‘微度’는 장막을 통과하여 향기가 은은하게 넘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역주4 劉郎 : 당나라 때 남자를 ‘郎’이라고 불렀다. 東漢 永平 年間에 劉晨이 阮肇와 함께 天台山에서 약초를 캐다가 우연히 桃源洞의 仙境에 들어가 선녀를 만나서, 반년을 살다 돌아오니 자손이 七世代가 지난 후였다. 그 뒤 다시 도원동을 찾아가려 했으나 종전의 길이 묘연하여 찾을 수 없었다는 전설이 전하는데, 南朝시대 宋나라의 劉義慶이 지은 《幽明錄》에 실려 있다. 이 시에서는 桃源洞을 蓬萊山으로 표현했다. 혹은 漢 武帝 劉徹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한 무제는 不老不死의 도교술을 숭상하여 方士의 말을 믿고 동해로 신선을 구하러 보냈으며, 建章宮 북쪽 못에 蓬萊, 方丈, 瀛洲의 삼신산을 본떠 만들어놓기도 하였다. 《唐詩鼓吹》 卷7에는 “유랑과 봉래산은 한 무제가 신선을 구한 일을 인용한 것이다.[劉郞蓬山 用漢武帝求神仙事]”라고 하였다.
역주5 惠然肯來 : 즐거운 마음으로 온다는 뜻으로, 《詩經》 〈邶風 終風〉의 ‘하루내내 바람불고 또 흙비가 내리지만 순순히 즐겨 오기도 한다.[終風且霾 惠然肯來]’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후대에 손님의 내방을 환영하는 말로 쓰였다.
역주6 膠漆 : 아교와 옻칠로 우애가 두터움을 일컫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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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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