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集評]○ 通篇一意反覆 只發揮得來是空言去絶蹤七字耳
言我一夜之間 輾轉反側 而因見夫月之斜 因聞夫鍾之動 思之亦云至矣
蠟照半籠 言燈光巳淡 麝薰微度 言香氣漸消 夜將盡而天欲明之時也
則信乎來是空言去絶踪也 - 淸 陸昆曾, 《李義山詩解》
如李商隱詩 來是空言去絶蹤 月斜樓上五更鐘 夢爲遠別啼難喚 書被催成墨未濃 蠟燭半籠金翡翠 麝香數度繡芙蓉 劉郞已恨蓬山遠 更隔蓬山一萬重 是也 - 淸 蔡鈞, 《詩法指南》 卷3
其來也固空言 其去也已絶蹤 當此之時 眞是水窮山斷
縱復瀝血刳腸 誰知我耶 - 淸 姚培謙, 《李義山詩集箋注》
若誤認艶體 則翡翠被中 芙蓉褥上 旣已
豈尙徒託空言而有夢別催書之情事哉 - 淸 馮浩, 《玉谿生詩集箋注》 卷2
꿈속에서 멀리 떠나보낼 때 우느라 불러보지도 못했건만
편지도 재촉 속에 쓰자니 먹빛도 진하지 못하구나
[集評]○ 한 편 전체가 한 가지의 뜻을 반복하였으니, 다만 표명하여 얻은 것은 ‘來是空言去絶蹤’ 일곱 자일 뿐이다.
자신이 하룻밤 동안 전전반측하였고, 이로 인하여 달이 비스듬히 비추는 것을 보았고, 또 이로 인하여 종소리의 울림을 들었으니 그를 생각함 역시 지극하다 할 것이다.
이어 꿈속에서라도 소식을 듣고 싶었으나 멀리 이별하는 꿈을 꾸니 어찌 그의 종적을 찾을 수 있겠는가?
그 편지를 음미하면 재촉을 받으면서 서둘러 쓴 것이니, 어찌 공연히 한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촛불의 빛이 반만 가렸다고 한 것은 초의 불빛이 이미 흐려진 것을 말하며, 사향의 향기가 은은하게 넘어온다고 한 것은 향기가 점차 옅어져 밤이 다하고 하늘이 밝을 때임을 말한 것이다.
자신이 처량하고 적막하기가 이와 같다고 하였으니, 봉래산이 먼 것과 비교한다면 여러 곱절일 뿐만이 아니다.
○ 또 숨겨진 뜻과 숨겨진 글자가 있는 것을 ‘無題格’이라고 한다.
예컨대 李商隱의 시에 ‘來是空言去絶蹤……更隔蓬山一萬重’이 이것이다.
○ 두 사람의 정감이 쉽게 소통하고 있지 않음을 극단적으로 말하였다.
입을 열면 세간에서 말하는바 은근한 약속이니 밀약이니 하는 누추한 설을 끌어와 시 속의 情을 모두 일소해버린다.
그가 오겠다고 한 것은 진실로 빈말이고, 그가 떠났다는 것은 이미 발길을 끊은 것이니 이때에는 진실로 물이 다하고 산이 끊어진다.
그러나 매양 달빛이 기울고, 종이 울리는 순간이면 처연하게 넋이 나간다.
꿈속에서 이별을 하고 재촉하여 편지를 쓰니, 가슴 깊은 그리움과 원망으로 혼란스러워, 이는
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몸은 지척지간에 있어도 마음은 천애지간에 있다는 고통이 바로 이때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취가 수놓인 등잔 가리개와 부용이 그려진 장막을 아득히 회상하니, 이른바 그가 있는 방은 가까이 있지만 그 사람은 멀리 있다는 것이다.
설사 다시 피를 흘리고 창자를 도려낸다 한들 누가 나를 알아줄 것인가.
○ 이 네 수와 ‘昨夜星辰’(〈無題〉), 두 작품은 판연히 다르다.
대개 영호도가 자신의 진정을 살펴보지 않음을 한탄한 것이다.
첫 수의 첫 두 구는 영호도가 찾아와 보고서는 겨우 빈말을 남기고 떠나갔다고 하였으니 발길을 완전히 끊은 것이다.
영호도가 內職에 있었으므로 다음 구에서는 입조할 때로 이어진다.
‘夢爲遠別’을 다음 구에서 바로 이어서 말하였으니 아래에서 만 겹이나 떨어져 있다고 말한 것과 같다.
‘書被催成’은 대개 영호도가 義山(李商隱)을 재촉하여 대신 글을 쓰게 하여 그것을 가지고는 입조한 것이다.
문집에 〈上綯啓〉라는 글이 있는데 이와 같은 일임을 추측할 수 있다.
5‧6구는 봉래산에서 유숙하였음을 말하였으니, 당나라 사람들은 매양 이것을 翰林院에 비유하였다.
원망이 지극하기 때문에 다시 만 겹의 산에 가로막혀 있다고 말한 것이다.
만약 艶體로 오인한다면 비취가 그려진 이불과 부용이 그려진 요 위로 이미 기꺼이 온 것이니, 어찌 한갓 ‘空言’에 의탁하여 ‘夢別’이며 ‘催書’하는 일이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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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무제 이수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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