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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詩三百首(2)

당시삼백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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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 祭孔子而嘆之〉
唐 玄宗
夫子何爲者
一代中
地猶氏邑
宅卽
嗟身否
怨道窮
今看
當與夢時同
[集評]○ 三四以下俱佳 - 元 方回, 《瀛奎律髓滙評》 卷28
○ 妙之不發議論 發議論便俗 穩妥而雅 中含嘆意 見盛唐杰作 - 明 唐汝詢, 《唐詩選脈會通評林》 卷29
○ 孔子更何贊 只以喟嘆取神 最妙 - 淸 紀昀, 《瀛奎律髓滙評》 卷28
○ 孔子之道從何處贊嘆 故只就不遇立言 此卽運意高處 - 淸 沈德潛, 《唐詩別裁集》 卷9
○ 只以唱嘆 取神最妙 - 淸, 紀昀


〈鄒魯를 지나며 孔子에게 제사 드리고 탄식하다〉
당 현종
선생께서는 무슨 연유로
일생을 그리 바쁘게 보내셨는가
땅은 여전히 추씨의 고을인데
집은 魯恭王의 궁궐이 되었구나
봉황을 탄식하고 신세가 막힘을 한탄하며
기린의 죽음을 슬퍼하고 도가 없어짐을 원망했네
지금 두 기둥 사이에서 제사 지내는 것 보니
공자께서 꿈꾸던 때와 같구나


역주
역주1 鄒魯 : 魯나라 鄒邑이라는 뜻이다. 魯는 春秋시대 國名이다. 여기서는 노나라의 도읍, 즉 지금의 山東省 曲阜縣을 지칭한다. 공자가 魯나라 昌平鄕 鄒邑 출생이므로 ‘鄒魯’라 하였다. 제목에 ‘鄒’가 빠져 있는 본도 있다.
역주2 棲棲 : 棲棲는 栖栖와 같다. 《論語》 〈憲問〉편에 “미생묘가 공자에게 말하기를 ‘丘는 어찌하여 이리도 연연해하는가. 말재주를 구사하려는 것이 아닌가?’라 하니, 공자가 말하기를 ‘내 감히 말재주를 부리려는 것이 아니요, 고집불통을 미워하는 것입니다.’라 하였다.[微生畝謂孔子曰 丘何爲是栖栖者歟 無乃爲佞乎 孔子曰 非敢爲佞也 疾固也]”라는 구절이 있다. 栖栖를 朱子는 依依로 해석하여 세상을 잊지 못하는 뜻으로 풀이하였으나, 일반적으로 遑遑과 같은 뜻으로 보아 정처 없이 사방을 떠돌아다님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역주3 : 鄒와 同字이며 고을 이름이니, 山東省 曲阜縣 동남쪽이다. 일찍이 공자의 아버지 叔梁紇이 추읍의 대부였는데, 공자가 여기서 출생하였다.
역주4 魯王宮 : 魯王은 漢 景帝의 다섯 번째 아들인 魯恭王이다. 궁실을 짓기 좋아하였는데, 일찍이 공자의 古宅을 허물고, 그 궁을 넓힌 적이 있다.
역주5 嘆鳳 : 《論語》 〈子罕〉편에 “봉황새가 오지 않고, 河水에서 그림이 나오지 않으니 나는 이제 끝이다.[鳳鳥不至 河不出圖 吾已矣夫]”라 하였다.
역주6 傷麟 : 《史記》 〈孔子世家〉에 의하면, 魯 哀公 14년에 노나라 사람이 麒麟을 잡았는데, 공자가 그것을 보고는 ‘기린이 나왔으나 죽었으니, 나의 道도 이제 다했다.’고 탄식하였다고 전해진다. 공자는 《春秋》를 기록할 적에 기린을 잡은 데까지만 서술하고 그 이후는 기록하지 않았다.
역주7 兩楹奠 : 《禮記》 〈檀弓〉에 “선생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저번 밤에 두 기둥 사이에 앉아서 제사를 받는 꿈을 꾸었다. 대저 明王이 세상에 나오지 않으니, 천하의 누가 나를 받들 것인가. 나는 곧 죽을 것이다.’ 하시더니, 병으로 누우신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夫子曰 余疇昔之夜 夢坐奠于兩楹之間 夫明王不興 而天下其孰能宗余 余殆將死也 盖寢疾七日而歿]”라 하였다. 殷나라에는 사람이 죽으면 관을 두 기둥 사이에 놓는 제도가 있었다. 공자는 殷나라의 후예이기 때문에 이러한 꿈을 꾸고 자신이 곧 세상을 떠나리라 여긴 것이다. 楹은 殿堂의 기둥이며, 兩楹은 殿堂의 중간을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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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삼백수(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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