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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記集說大全(1)

예기집설대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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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집설대전(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5. 朱子 曰 或謂禮記 이라 하나 恐不然이라.
주자朱子 : 사람들 중에 “《예기禮記》는 나라 유학자들의 이다.”라고 하는 이들이 있으나, 아마도 옳지 않은 말인 것 같다.
漢儒最純者 莫如董仲舒, 仲舒之文最純者 이나
한대漢代 최고의 순유純儒동중서董仲舒 만한 사람이 없고, 동중서의 글 중에서 가장 순수한 것은 삼책三策 만한 것이 없다.
何嘗有禮記中說話來.
如樂記所謂天高地下하며 萬物 散殊 而禮制 行矣,
이를테면 〈《예기禮記》의〉 〈악기樂記〉편에 “〈현상적으로 보면〉 하늘은 높이 위에 있고 땅은 낮게 아래에 있으며 만물은 그 사이에 흩어져 있으면서 품류品類가 다른데, 는 그 각기 다른 정도에 따라서 행해진다.
流而不息하며 合同而化 而樂 興焉이라 하니, 仲舒如何說到這裏.
〈성질에 따라서 보면〉 천지와 만물은 유행流行하여 그치지 않고 서로 화합和合하는 가운데서 변화變化하는데, 은 그 변동變動하는 실황實況에 따라서 생겨난다.” 하였으니, 동중서의 수준으로 어떻게 이 정도의 말을 할 수 있겠는가.
想必是古來流傳得此個文字如此니라.
역주
역주1 是漢儒說 : 주자의 이 조목은 바로 위의 永嘉周氏와 延平周氏가 《禮記》의 일부가 한나라 유자들의 說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는 주장(禮記 是漢儒說)에 대한 반론으로 제시된 것이다. 《禮記》는 대개 孔子의 門徒들에 의해서 纂輯된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通論이었다. 이는 《漢書》의 다음 기록 등에 근거한 것이다. “하간헌왕이 구한 책은 모두 古文으로 된 秦나라 焚書 이전의 옛 책들이었다. 그 중에 《周官》‧《尚書》‧《禮經》‧《禮記》‧《孟子》‧《老子》 등의 책은 모두 經傳 및 説記로서 공자의 제자인 칠십자의 門徒들이 論한 것이다.[獻王所得書 皆古文先秦舊書 周官尙書禮禮記孟子老子之屬 皆經傳說記 七十子之徒 所論 師古曰七十子孔子弟子也] 《漢書》 〈藝文志〉 卷53 景十三王傳 第二十三” 그러나 宋儒 중 일부는 이런 주장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위 총론의 兩周氏가 말한 것으로 《禮記》가 전적으로 孔門의 후계자들에 의해 찬집된 것이라는 통론에 대한 부정이라고 할 수 있다.
역주2 莫如三策 : 三策은 董仲舒의 天人三策을 말한다. 武帝는 즉위하자 賢良文學科로 선비를 전후로 백 여 명을 등용하였는데 董仲舒가 이 과목으로 응시하여 對策을 올렸는데 그 요지는 天人感應이었다. 모두 세 번을 올렸으므로 세상에서 天人三策이라고 불렀다. 《漢語大詞典》
관련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임금의 마음을 바로 잡아서 사방을 바르게 하고, 교화를 세워서 백성이 나쁜데로 빠지는 것을 막으며, 스승을 두어서 선비를 기르고 대신에게 어진 인재를 천거하도록 하고, 법률을 정하여 사치한 풍속을 바꾸고 사상적 통일을 통해 이단을 막는다는 것이었다.[正君心以正四方 立敎化以防萬民 置師傅以養士 責大臣以求賢 定法制以革奢侈 持一統以息邪說]” 《欽定四庫全書》 讀書紀數略 卷三十三 福建巡撫宫夢仁撰 人部
역주3 《禮記》에 나오는 말이 있는가 : 이 말의 의미는 만약 《禮記》가 漢나라 儒者의 설이라면 漢儒 중에 가장 으뜸인 동중서의 글이 《禮記》에 들어가 있어야 하는데, 동중서의 글 중에 가장 뛰어난 天人三策의 어느 한 부분도 현재의 《禮記》에 들어가 있지 않으니 漢儒說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역주4 예로부터……것이다 : 이 말은 《禮記》에 한유들의 설이 섞여 있다고 하는 것에 대하여 반론한 것이다. 즉 《禮記》의 수록된 글 중에 혹 한유들의 글과 같은 내용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이 곧 《禮記》가 한유들이 부회하거나 자신의 설을 삽입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근거가 박약하다는 것이다. 朱子는 문헌의 전래 과정에서 보면, 본래 공자의 말이지만 여러 번의 인용을 거치는 가운데 다른 사람의 말로 둔갑한 경우도 있으므로 《禮記》에도 그런 경우가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주자의 주장은 아래 편지글에 잘 나타나 있으며, 이 글 역시 이런 주자가 이런 논증을 통해서 얻은 결론을 전제로 말한 것이다. 관련 부분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楊龜山이 胡迪功 질문에 답하는 것 가운데 ‘老子의 五千言이 모두 無爲自然으로써 宗旨를 삼았으니 옛것을 기술하기만 하고 스스로 창작한 것은 없다고 해도 된다. 《龜山集》 巻十四 答胡德輝問’라고 하였는데 저도 또한 이 말을 의심하였습니다. 《論語》에 ‘옛것을 기술하기만 하고 스스로 창작하지 않으며, 옛것을 믿고 좋아함을 내가 삼가 우리 老彭에게 견주노라[子曰 述而不作 信而好古 竊比於我老彭] 《論語》 〈述而〉’라고 하였는데 〈공자가 노자를 평한 것에 대하여〉 다만 《禮記》 〈曾子問〉에 나오는 예에 관한 몇 가지 조목으로 조사하여 보면 기술하기만 하고 창작하지 않았으며 옛것을 믿고 좋아하였다는 것을 모두 알 수가 있습니다. 대개 老聃은 周나라의 史官으로서 나라의 전적과 三皇五帝의 전적을 모두 관장하고 있었으므로 능히 옛일을 기술하여 믿고 좋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五千言도 또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던 말인데 노자가 그것을 글로 남겨 전한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列子가 黃帝書의 글이라고 인용한 것은 바로 노자의 谷神不死章이니 어찌 노자의 말이 三皇五帝의 글이 되겠습니까? (즉 노자와 열자가 각각 삼황오제의 글을 전하였으되 열자는 출전을 밝히고 노자는 출전을 밝히지 않았을 뿐이라는 뜻)[龜山答胡迪功問中一叚 老子五千言 以自然爲宗 謂之不作可也 熹亦疑此語 如論語老彭之說 只以曾子問中言禮數叚證之 卽述而不作 信而好古 皆可見 盖老聃 周之史官 掌國之典籍三皇五帝之書 故能述古事而信好之 如五千言 亦或古有是語 而老子傳之 未可知也 盖列子所引黃帝書 卽老子谷神不死章也 豈所謂三皇五帝之書]” 《晦庵集》 卷30 〈答汪尚書〉

예기집설대전(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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