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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記集說大全(2)

예기집설대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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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집설대전(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45101 仲遂卒于垂어늘 壬午猶繹호대 萬入去籥한대 仲尼曰 非禮也 卿卒不繹이라하시니라
集說
≪集說≫ 仲遂 魯莊公子東門襄仲也 爲魯卿이라 齊地名이라 祭宗廟之明日 又設祭禮하야 以尋繹昨日之祭 謂之繹이니 殷謂之肜이라
言壬午則正祭辛巳日也
萬舞 執干以舞也 籥舞 吹籥以舞也 萬入去籥者 言此繹祭時 以仲遂之卒 但用無聲之干舞以入하고 去有聲之籥舞而不用也
集說
○陳氏曰 春秋之法 當祭而卿卒이면 則不用樂하고 明日則不繹이라 故叔弓之卒 昭公 去樂卒事하니 君子以爲禮라하고 仲遂之卒 宣公猶繹而萬入去籥하니 聖人以爲非禮라하시니라
集說
○詩記曰 萬舞 二舞之總名也 干舞者 武舞之別名이요 籥舞者 文舞之別名이니 文舞 又謂之羽舞라하니라
鄭氏據公羊하야 以萬舞爲干舞하니 誤也
春秋書이라하니 言文武二舞皆入호대 去其有聲者 故去籥焉이라
公羊乃以萬舞爲武舞하야 與籥舞對言之하니 失經意矣
若萬舞止爲武舞 則此詩何爲獨言萬舞而不及文舞리오
이라하니 婦人之廟 亦不應獨用武舞也
然則萬舞爲二舞之總名 明矣 出詩緝簡兮註하니라
大全
≪大全≫ 嚴陵方氏曰 正祭之明日又祭 謂之繹이니 繹者 如繹絲然하야 以其續之而不絶故也
祭禮爲吉이로대 卿卒爲凶이라
然正祭不可廢也 故卿卒不繹而已
猶者 可以已之辭


중수仲遂땅에서 죽었는데, 임오일壬午日에 〈나라 선공宣公이〉 오히려 역제繹祭를 지내되 만무萬舞만을 추게 하고 약무籥舞는 버리고 쓰지 않자, 중니仲尼께서 말씀하시기를 “가 아니다. 이 죽으면 역제繹祭를 지내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集說
중수仲遂나라 장공莊公의 아들 동문양중東門襄仲인데, 나라 이 되었다. 나라의 지명地名이다. 종묘에 제사지낸 이튿날 또 제례祭禮를 베풀어서 전날 지낸 제사를 연이어서 지내는 제사를 역제繹祭라고 하는데, 나라에서는 그것을 융제肜祭라고 하였다.
임오일壬午日이라고 말하였으니, 정시의 제사는 신사일辛巳日이다.
만무萬舞는 방패를 가지고 추는 춤이고, 약무籥舞는 피리를 불면서 추는 춤이니, ‘만무萬舞만을 추게 하고 약무籥舞는 버리고 쓰지 않았다.’는 것은 이번 역제繹祭를 지낼 때에 중수仲遂가 죽은 까닭에 다만 소리가 없는 간무干舞(무무武舞)만을 사용해서 들이고 소리가 있는 약무籥舞는 제거하여 쓰지 않았다는 말이다.
集說
진씨陳氏:≪춘추春秋≫의 법에 따르면 제사지낼 때를 당해서 이 죽게 되면 음악을 사용하지 않고, 이튿날에는 역제繹祭를 지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숙궁叔弓이 죽었을 때 소공昭公이 음악을 중지하고 제사를 마치니 군자君子라고 하였고, 중수仲遂가 죽었을 때에는 선공宣公이 오히려 역제繹祭를 지내면서 만무萬舞만을 추게 하고 약무籥舞는 버리고 쓰지 않으니 성인聖人이 예가 아니라고 하였다.
集說
○≪여씨가숙독시기呂氏家塾讀詩記≫:만무萬舞문무文舞무무武舞 두 가지 춤의 총칭이니 간무干舞라는 것은 무무武舞의 별칭이고, 약무籥舞문무文舞의 별칭인데 문무文舞는 또 우무羽舞라고도 한다.
정씨鄭氏(정현鄭玄)가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을 근거로 만무를 간무라고 했는데, 잘못이다.
춘추春秋≫에 “만무만을 추고 약무는 버리고 쓰지 않았다.”고 기록했으니, 문무와 무무 두 가지 춤을 모두 쓰되, 그 소리가 나는 것을 없앴기 때문에 약무를 버리고 쓰지 않았다는 말이다.
≪춘추공양전≫에서는 이에 만무를 무무라고 해서 약무와 상대적으로 말하였으니, 의 뜻을 상실한 것이다.
만약 만무가 단지 무무일 뿐이라면 이 (≪시경詩經≫ 〈패풍邶風 간혜簡兮〉)에서 무엇 때문에 유독 만무만을 말하고 문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겠는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중자仲子의 사당이 낙성됨에 장차 만무를 추게 하려 했다.”고 하였으니, 부인의 사당에서도 응당 무무만을 추게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만무가 문무와 무무 두 가지 춤의 총칭이라는 것이 분명하니, 이 내용은 ≪시즙詩緝≫ 〈간혜簡兮〉의 에 나온다.
集說
○내(진호陳澔)가 살펴보건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라 영윤令尹자원子元문부인文夫人을 유혹하고자 하여 문부인의 궁전 옆에 집을 지어놓고서 만무萬舞를 추게 하니, 부인이 그 소리를 듣고 소리 없이 울면서 말하기를 ‘선군先君은 이 춤을 가지고 전쟁 준비[융비戎備]를 익혔는데, 지금 영윤은 이것을 원수에게서 찾으려 하지 않고 미망인의 곁에서 찾고 있으니, 괴이하지 않은가.’라고 했다.”고 하였으니, 이것을 근거해보면 만무는 참으로 무무武舞인데, 여씨呂氏가 아마도 우연히 그걸 잊었는가 보다.
大全
엄릉방씨嚴陵方氏정제正祭를 지낸 다음날 또 지내는 제사를 역제繹祭라 하는데, 이라고 한 것은 실을 자아내는 것과 같이 연속되어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제례祭禮길사吉事이지만 의 죽음은 흉사凶事가 된다.
그러나 정제正祭는 폐지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죽었을 때 역제를 지내지 않는 것일 뿐이다.
는 그만둘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역주
역주1 萬入去籥 : ≪春秋≫ 宣公 8년에 “壬午日에 오히려 繹祭를 지내면서 萬舞만을 추고 籥舞는 버리고 쓰지 않았다.[壬午 猶繹 萬入去籥]”라고 하였다.
역주2 左傳考仲子之宮 將萬焉 : ≪春秋左氏傳≫ 隱公 5년에 “9월에 仲子의 宮을 落成하고 萬舞를 추고자 하여 은공이 衆仲에게 羽數를 물었다.[九月 考仲子之宮 將萬焉 公問羽數於衆仲]”라고 하였다.
역주3 左傳……不亦異乎 : 이 내용은 ≪春秋左氏傳≫ 莊公 28년에 보인다.

예기집설대전(2) 책은 2022.12.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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