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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記集說大全(2)

예기집설대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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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804 孔子之喪 公西赤 爲志焉호대 飾棺牆하고 置翣하며 設披하니 周也 設崇하니 殷也 綢練設旐하니 夏也
集說
≪集說≫ 公西이요 子華 孔子弟子也
集說
○疏曰 孔子之喪 公西赤 以飾棺榮夫子 故爲盛禮 備三王之制하야 以章明志識焉이라
於是以素爲褚하고 褚外加牆하며 車邊置翣하고 恐柩車傾虧하야 而以繩左右維持之하니 此皆周之制也
其送葬 所建旌旗 刻繒爲崇牙之飾하니 此則殷制 又綢盛旌旗之竿以素錦하고 於杠首 設長之旐하니 此則夏禮也
集說
○詩 虡業維樅이라하니 疏云 懸鐘磬之處 以采色爲大牙하야 其狀隆然하니 謂之崇牙
素錦也 緇布 廣終幅이요 長八尺이니 旐之制也
大全
門人之葬孔子 則飾牆置翣하고 以至周披殷崇夏旐하야 而二代之禮莫不兼用하니 豈孔子之心乎리오
蓋門人以孔子有所不可及之道 故報之以人所不可行之禮하니 是雖禮兼於三代 蓋亦稱情以爲文而已
하시고 門人三代之厚葬 君子不以爲過


공자孔子공서적公西赤이 예를 갖추어 표지를 하되, (상여를 덮는 장식용 휘장)을 장식하고 운삽雲翣불삽黻翣을 세우고 을 당기는 줄[]을 설치하였으니 이것은 나라의 제도이고, 깃봉[숭아崇牙]을 설치하였으니 이것은 나라의 제도이며, 흰 비단[]으로 깃대를 감싸고 거북과 뱀을 그린 기[]를 설치하였으니 이것은 나라의 제도이다.
雲翣雲翣
黻翣黻翣
集說
공서公西이고 은 이름이며 자화子華인데, 공자孔子의 제자이다.
旐
集說
공자孔子공서적公西赤을 장식해서 공자를 영화롭게 하였다. 그러므로 성대한 예를 행할 때에는 삼왕三王의 제도를 구비해서 밝히고 표지하였다.
이에 흰 비단으로 덮개[]를 만들고, 덮개 밖에 을 더하였으며, 상여 옆에 운삽雲翣불삽黻翣을 세우고, 상여가 기울어질까 염려스러워 끈으로 좌우를 동여매었으니, 이는 모두 나라의 제도이다.
송장送葬할 때에 승거乘車에 세우는 깃발[정기旌旗]은 비단에 그림을 그려서[] 숭아崇牙를 만들어 장식을 했으니 이는 나라의 제도이고, 또 깃발의 장대를 흰 비단으로 동여서 싸고 깃대 꼭대기에 길이가 여덟 자 되는 깃발을 설치하였으니 이는 나라의 이다.
集說
○≪시경詩經≫ 〈대아大雅영대靈臺〉에 “종틀 설주에 종을 매다는 널과 들쭉날쭉한 숭아崇牙가 있다”고 했는데, 에 이르기를 “쇠북과 경쇠를 매다는 곳에 채색하여 대아大牙를 만들어 그 형상이 우뚝 솟아 있으니 그것을 일러 숭아崇牙라 한다.
은 흰 비단이다. 치포緇布는 넓이가 온폭(2)이고 길이가 여덟 자이니 깃발의 제도이다.”라고 했다.
大全
장락진씨長樂陳氏안연顔淵이 죽었을 때 문인들은 후하게 장례葬禮를 치르고자 하였으나 공자孔子께서 안 된다고 하셨고, 공자의 병이 위독하자 자로子路가 문인으로 하여금 가신이 되게 하니 공자께서 하늘을 속였다고 하셨다.
문인들이 공자를 장사葬事지낼 때 덮개 밖에 으로 장식하고 상여 옆에 운삽雲翣불삽黻翣을 세우고, 심지어 나라의 제도인 을 당기는 줄[]과 나라의 제도인 숭아崇牙나라의 제도인 거북과 뱀을 그린 기[]까지도 설치하여 하나라와 은나라 2까지도 함께 사용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어찌 공자의 마음이었겠는가?
아마도 문인들이 공자는 누구도 미칠 수 없는 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남이 행할 수 없는 예로 보답한 것인 듯하니, 이를 보면 비록 예는 삼대三代를 겸하더라도 또한 인정人情에 걸맞게 예문禮文을 만들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공子貢이 공자의 에서 6년 동안 여묘廬墓를 함에 맹자孟子께서 잘못이라고 여기지 않으셨으며, 문인들이 삼대三代의 제도로 후하게 장사를 지냈음에도 군자君子가 허물로 여기지 않은 것이다.


역주
역주1 乘車 : 葬禮 때 사용하던 수레로 魂車라고도 부른다. 죽은 자의 옷과 冠 등을 실어서 마치 죽은 자가 생전에 수레를 타던 것처럼 형상화하는 것이다.
역주2 : 8尺이다.
역주3 顔淵之死……孔子以爲不可 : ≪論語≫ 〈先進〉에 “顔淵이 죽자 門人들이 후하게 장사지내려 하니, 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불가하다.’ 하였다. 문인들이 후하게 장사를 지내 주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回는 나 보기를 어버이같이 하였는데, 나는 아들같이 보지 못하였으니 내 탓이 아니다. 제자들의 탓이다.’ 하였다.[顔淵死 門人欲厚葬之 子曰 不可 門人厚葬之 子曰 回也視予猶父也 予不得視猶子也 非我也 夫二三子也]”라고 하였다.
역주4 子疾病……孔子以爲欺天 : ≪論語≫ 〈子罕〉 “孔子께서 병이 심해지자, 子路가 門人으로 家臣을 삼았다. 공자께서 병이 차도가 있고 나서 〈이 사실을 알고〉 말씀하시기를 ‘오래되었구나, 由(자로)가 거짓을 행함이여! 나는 가신이 없어야 하는데 가신을 두었으니, 내 누구를 속였는가? 하늘을 속였구나!’라고 하셨다.[子疾病 子路使門人爲臣 病間曰 久矣哉 由之行詐也 無臣而爲有臣 吾誰欺 欺天乎]”라고 하였다.
역주5 子貢六年於其墓 孟子不以爲非 : ≪孟子≫ 〈滕文公 上〉에 “옛적에 孔子께서 별세하시자, 3년이 지난 다음 門人들이 짐을 챙겨 장차 돌아갈 적에 들어가서 子貢에게 읍하고 서로 향하여 통곡하여 모두 목이 쉰 뒤에 돌아가거늘, 자공은 다시 돌아와 묘 마당에 집을 짓고서 홀로 3년을 거처한 뒤에 돌아갔다.[昔者孔子沒 三年之外 門人治任將歸 入揖於子貢 相嚮而哭 皆失聲 然後歸 子貢反 築室於場 獨居三年 然後歸]”라고 하였다.

예기집설대전(2) 책은 2022.12.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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