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禮記集說大全(2)

예기집설대전(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예기집설대전(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45001 陳乾昔 寢疾하야 屬其兄弟而命其子尊己曰 如我死어든 則必大爲我棺하야 使吾二婢子夾我하라하더니
陳乾昔커늘 其子曰 以殉葬 非禮也어든 況又同棺乎아하고 弗果殺하니라
集說
≪集說≫ 屬 如周禮屬民讀法之屬이니 猶合也 聚也
記者善尊己 守正而不從其父之亂命이라
大全
≪大全≫ 長樂陳氏曰 君子將死 不忘乎利人하고 小人將死 不忘乎利己
하고 陳乾昔之病 欲以婢夾己하니 此不忘乎利己者也
乾昔之子終不從其亂命하니 其過秦康公遠矣


진간석陳乾昔이 병으로 몸져 눕자 그 형제간을 모아놓고서 아들인 존기尊己에게 유명遺命하기를 “만약 내가 죽게 되면 반드시 나의 을 크게 만들어서 나의 두 첩으로 하여금 내 좌우에 있게 하라.”라고 하였다.
진간석이 죽자 그 아들이 말하기를 “산 사람을 써서 순장殉葬하는 것도 가 아닌데, 더구나 또 첩으로 하여금 관을 함께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고는, 과연 결국 첩을 죽이지 않았다.
集說
은 ≪주례周禮≫ 〈지관地官 당정黨正〉의 “백성들을 모아놓고 법령을 읽는다.”고 할 때의 과 같으니, 회합함[]과 같고 모임[]과 같다.
기록한 사람이 존기尊己정도正道를 지켜 그 아버지가 정신이 혼미할 때 한 유명遺命을 따르지 않은 것을 좋게 여긴 것이다.
大全
장락진씨長樂陳氏:군자가 장차 죽으려 할 때에는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을 잊지 않고, 소인이 장차 죽으려 할 때에는 자기를 이롭게 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자고成子高가 병으로 몸져 누워 있을 때에는 농사지어 먹지 않는 땅을 가려 자기를 장례하게 하였고, 맹희자孟僖子가 장차 죽으려 할 적에는 중니仲尼의 도를 밝혀서 자식을 가르치게 하였으며, 증자曾子가 장차 죽으려 할 때에는 군자의 도를 칭하여 남을 가르쳤으니, 이는 남을 이롭게 함을 잊지 않은 것이다.
위과魏顆가 병이 위독할 적에는 을 순장하게 하고자 하였고, 진간석陳乾昔이 위독할 적에는 첩을 순장하여 자기 좌우에 있게 하고자 하였으니, 이것은 자기를 이롭게 함을 잊지 못한 것이다.
진간석의 아들이 끝내 그가 정신이 혼미할 때 한 유명遺命을 따르지 않았으니, 나라 강공康公보다 나은 점이 많다.


역주
역주1 成子高之寢疾……以自葬 : ≪禮記≫ 〈檀弓 上〉 039302에 “子高가 말하였다. ‘내 들으니, 살아서는 남에게 유익함이 있어야 하고 죽어서는 남에게 폐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고 하였으니, 내 비록 살아서 남에게 유익함이 없었으나, 내 죽어서 남에게 폐해를 끼칠 수야 있겠는가? 내가 죽거든 경작하지 않을 땅을 가려서 나를 葬事지내다오.’[子高曰 吾聞之也 生有益於人 死不害於人 吾縱生無益於人 吾可以死害於人乎哉 我死則擇不食之地而葬我焉]”라고 하였다.
역주2 孟僖子之將死……以敎子 : ≪春秋左氏傳≫ 昭公 7년에 “孟僖子는 禮를 잘 보좌하지 못한 것을 수치로 여겨 禮를 學習하였는데, 예에 능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를 찾아가서 배웠다. 그러다가 죽을 때에 미쳐 手下의 大夫를 불러놓고 말하기를 ‘예는 사람이 되는 근본이니, 예가 없으면 立身할 수가 없다. 내 듣건대 장차 顯達할 자로 孔丘라는 사람이 있는데,……내가 만약 壽命을 다하고 죽는다면 반드시 說(南宮敬叔)과 何忌(孟懿子)를 孔子에게 맡겨, 공자를 師事하여 예를 배워 그 地位를 안정시켜 공고하게 하라.’고 하였다.[孟僖子病不能相禮 乃講學之 苟能禮者 從之 及其將死也 召其大夫曰 禮人之幹也 無禮 無以立 吾聞將有達者曰孔丘 聖人之後也 而滅於宋……我若獲没 必屬說與何忌於夫子 使事之 而學禮焉 以定其位]”라고 하였다.
역주3 曾子之將死……以敎人 : ≪禮記≫ 〈檀弓 上〉 031802에 “童子가 말하기를 ‘화려하고 고우니 대부가 사용하는 대자리일 것입니다.’라고 하자, 樂正子春이 말하기를 ‘그만 말하라.’라고 하였다. 증자가 듣고 눈이 휘둥그레지며 ‘아!’ 하고 탄식하였다. 동자가 말하기를 ‘화려하고 고우니 대부가 사용하는 대자리일 것입니다.’라고 하자, 증자가 말하기를 ‘그러하다. 이는 季孫氏가 준 것인데 내가 바꾸지 못하였으니, 曾元은 일어나 대자리를 바꾸라.’라고 하였다. 증원이 대답하기를 ‘아버님의 병이 심하여 바꿀 수가 없으니, 바라건대 내일 아침이 되면 공경히 바꾸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증자가 말하기를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저 동자만도 못하구나. 군자가 사람을 사랑함은 덕으로써 하고 소인이 사람을 사랑함은 姑息으로써 하니, 내 무엇을 바라겠는가? 내 바름을 얻고 죽으면 그만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몸을 들어 부축하여 자리를 바꾸었는데, 자리로 돌아와 편안해지기도 전에 별세하였다.[童子曰 華而睆 大夫之簀與 子春曰 止 曾子聞之 瞿然曰 呼 曰 華而睆 大夫之簀與 曾子曰 然 斯季孫之賜也 我未之能易也 元起易簀 曾元曰 夫子之病革矣 不可以變 幸而至於旦 請敬易之 曾子曰 爾之愛我也 不如彼 君子之愛人也 以德 細人之愛人也 以姑息 吾何求哉 吾得正而斃焉 斯已矣 擧扶而易之 反席未安而沒]”라고 하였다.
역주4 魏顆之病 欲以妾爲殉 : ≪春秋左氏傳≫ 宣公 15년에 “과거에 魏武子에게 자식이 없는 嬖妾이 하나 있었는데, 위무자가 처음 病이 들었을 때는 魏顆에게 命하기를 ‘내가 죽거든 이 사람을 반드시 改嫁시켜라.’라고 하더니, 병이 위독해지자 ‘반드시 이 사람을 殉葬시켜라.’라고 하였다.[初魏武子有嬖妾 無子 武子疾 命顆曰 必嫁是 疾病則曰 必以爲殉]”라고 하였다.

예기집설대전(2) 책은 2022.12.2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